이제 내가 십대 청소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이 때의 우리는 얼마나 외롭고 약했던지. 피부가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아리고 아프게 했다. 그때 나의 사랑과 패악질을 받았던 ‘단짝‘들아. 너희는 무사히 어른이 되었니?
우리 고전 속에 영웅이 있었다고?그럴리가. 바리데기 공주가 겪은 수난과 지긋지긋한 친부모의 요구들에 치를 떤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데. 피를 토하며 죽는 며느리, 의붓딸, 굶어죽고, 강간당하고, 버려지고, 핍박받는 여성들이 아니라 영웅이라고요?책은 나같은 이가 무수히 많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침착하게 신화와 이야기들 속의 ‘영웅 서사‘가 얼마나 여성배타적인지를 이야기한다. 심지어 ‘영웅‘이란 말의 ‘웅‘이 ‘수컷 웅雄‘이라는데 말 다했지. 그러니까 ‘남성인 영웅‘의 모습만 상상하니까 여성인 영웅이 안보인다는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눈에 덮인 장막 하나가 조금 걷힌듯 시원해졌다.
이 책을 읽다가 코를 풀며 울다 웃었다. 장애인이 쓴 글이라니 무겁기만 할 거라고 안읽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만 손해다. 우리의 인생은 흐리거나 맑거나 안개가 끼거나 하는 것이니 누군들 아프기만 할까.... 물론 누군가에게는 토네이도나 쓰나미가 오기도 하지만. 하여간 대단한 이야기꾼이 등장하셨다! 어서 다음 책이 나와주면 좋겠다.
나는 그동안 ‘잘 죽기‘에만 몰입하느라 인간존재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잊고 있었다. 노화와 죽음에 대해 정답지를 찾으려고 안달했다. 심지어 깔끔한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듯이 오만방자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나는 개인적으로는 내 생의 내리막길을 성심껏 내려갈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안심하고 혼자 늙고 죽을 수 있도록 하는데 힘을 보탤 것이다. 우에노 지즈코 선생님, 계속 이렇게 잘 늙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