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는 별 생각 없다가 sns에서 추천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읽게 되었던 책이었습니다. 조각조각 보이는 글쓴이의 생각이 부드러운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곳을 찔러 이런 글을 쓰시는 분이라면 어떤 분일까 궁금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와의 만남을 신청하고 찾아가는 내내 어떤 분일지 생각했는데 이미지가 예상과 많이 다르시더군요. 40대의 글쓴이라고 하면 짧은 머리에 뭔가 글 쓰는 사람다운 날카로운 이미지이지 않을가 싶었는데 전혀 다른, 긴 머리에 책 읽으면서 아이가 둘이나 있으시다는 걸 앎에도 불구하고, 글 속에서 바깥일과 집안일을 하는 이의 고단함이 묻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는 그런 생활의 냄새가 묻어나시는 분이 아니셨거든요.

저는 이번 산문집으로 은유선생님을 처음 알았지만 원래 이 책은 그 날 들은 말에 의하면 올드걸의 시집이라는 전작의 글과 새로 쓴 글을 덧붙인 책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블로그에 자신의 글을 조금씩 업로드 하셨고, 자신의 글을 읽는 손님들에게 방문 선물로 드릴 만한 걸 찾다가 끝에 시를 덧붙이셨다고 합니다. 본인은 그 당시에 읽은 시 중 적절한걸 끝에 달았을 뿐이라고 하셨지만 오랜만에 접하는 시구들을 보면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창 그 시구를 새기게 된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 크게 남은 선물이었습니다.

읽는 내내 제 역할인 일하는 여자 직장인,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딸의 생각 뿐 아니라 제가잘 모르는(혹은 알면서 외면하는)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고단한 며느리, 답답한 남편의 아내의 이야기가 들려와 저도 모르게 자꾸 넘기는 책장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 글들이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 아니라 쌓인 감정들을 풀기 위해 쓴 글이라는걸 믿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날 오셨던 많은 분들이 글 쓰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셨었는데, 작가이자 글쓰기를 알려주시는 선생님으로써 정말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 글을 잘 쓰기 위해선 우선 쓰는 것이 중요하다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다른 분들도 글을 많이 쓰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요, 쓰다보면 저도 제가 살면서 느끼는 심난함이 조금씩 정리가 될까 싶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정말 글이 쓰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글쓰기의 장점은 내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단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을 꼽으셨습니다. 사는데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는 말에 정말 동의합니다. 전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돈 많이 번 사람, 인생에 극적인 드라마를 겪은 사람의 목소리만 듣곤 했습니다. 하지만 은유 선생님을 통해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잠시 멈춰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뭔가 쫓기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도 자기계발이나 사회과학 분야만 읽었는데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뭔가 그 동안 안 쓰던 뇌근육을 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읽던 책에서 보지 못한 사람들을 은유 선생님의 책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출판사와 은유 선생님이 그렇게 사람이 많이 올거라고는 예상을 못하셨는지 장소를 작은 곳으로 빌리신거 같은데(사실 그렇게 작은 곳은 아니었던거 같습니다) 북토크를 진행했던 까페가 가득 차서 즐거운 당황을 하시던 그 분이 설마 은유 선생님이실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오늘은 내 이야기 뿐 아니라 여기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던 그 시간동안 정말 재미있는, 예상치 못한 생활의 지혜를 많이 들었던거 같습니다. 우선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내 이야기를 어설프게 나마 조금씩 써 보는 걸로 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일반 사람들이 자신의 일반적인, 하지만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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