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존경하면서 그 대상을 이상화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요.
요즘
논어를 다시 읽고 있는데 유난히 맘에 걸리는 구절이 있습니다.
공자의
14년간의 천하주유 중, 고생에 비하여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제자들 사이에서 공자를 향한 불만 어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공자는 자로, 자공
그리고 안회를 불러 물어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저 들판에서 헤매고 있구나,’라고 하였으니, 나의 도가 잘 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무엇을 어찌해야겠느냐?”
자로와
자공은 자신의 이상이었던 공자도 실패와 좌절을 겪는 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로는 선생님의
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고 대답하며 자공은 선생님의 도가 어려워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어째서 도를 낮추지 않냐고
반문합니다. 공자와 그렇게 오래 함께하고 가까이서 지켜본 자로와 자공이지만 자신의 스승을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고서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에 그만 스승의 모습을 부정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안회의 대답은 다릅니다. 세상이 공자의 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치욕인 것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다음에 더욱
군자는 세상에 드러나는 법이라고.
당연히
공자는 안회의 대답에 기뻐합니다. 이는 단순히 자기를 위로하는 답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이상화 하고서
그것을 강요하는 제자들과 달리 인간적인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이해하는 안회가 고마웠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절을 곱씹으며 저는 요즘 다시 부쩍 생각하게 되는 그분을 떠올렸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제가 너무너무
존경하는 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을 제 이상에 끼워 맞추고 맘에 드는 부분만을 보고 있는건 아닐까요. 제가 본받고 싶은 건 그분의 성찰하는 자세와 많이 회자되는 인품입니다. 하지만
전에도 너무 거대하신 분이셨고 이제는 너무 멀어지시기까지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그 분을 제대로 본받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처음처럼’의 개정판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짧게 남은 글귀
만으로도 압도되고 마는데 어떻게 하면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한 그 분을 알 수 있을까요.
주인공이
없는 북콘서트인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 기억은 변형되기 쉬운 법이죠. 하지만 책이 아닌 다른 기회로도 선생님을 알아보고 싶었던 저에겐 정말 기꺼운 자리였습니다.
그
중 심실 선생님이 ‘신영복 함께읽기’에서 본인이 쓴 부분을
기억과 함께 읽어 주셨습니다.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쇼’를 하며 들어오던, 어렸던 형제들과 함께 놀아주던, 운전기사 아저씨를 위해 차고 문을 열어주던, 그리고 너무너무 화가
많던 본인에게 따뜻한 바람이 되라며 열심히 생각한 답을 주던 그러한 신영복 선생님을 기억과 함께 읽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에서 마음대로 덧붙여지고 마음대로 삭제될 자신의 모습을 선생님께서는 미리 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제 마음속에서 마음대로 우상화를 하던 저는 마지막에 들은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찔끔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순서인 더숲트리오분들이 노래 ‘등불’을 부르기 전에 신영복
선생님과의 이야기 하나를 말해주셨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우산 같다고 하자 선생님은 자신은 우산보다
등불이 되고 싶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길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산은 비가 오더라도
사람이 비에 젖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우산 아래서 사람들은 비에 젖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우산 아래서 수동적인 존재들이 됩니다. 하지만 등불은
다릅니다. 사람을 어둠에 속에 젖도록 그냥 둡니다. 어둠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방향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앞에 빛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등불의 존재는 우리를 적극적이게 만들어줍니다.
선생님은
시대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을 구하시는 분이 아니셨고 사람들은 아직도 어두운
세상을 헤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으로 시대의 등불이 되어주셨습니다. 어두워서 뭐가 먼지 알 수 없어 헤매는 세상에서 ‘신영복’이라는 등불이 되어 스스로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의 마찰에서도 등불이 되어 주시려 노력하신 분을 저 마음대로 우산 삼아 우산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은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우리의 우산이 아니기에 비 한 방울 젖지 않게 막아 주실 순 없으십니다. 어둠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해주시지도 못하십니다. 하지만 등불이 되어 우리가 길을 찾는 것을 기다려주십니다. 기다리는 분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분을 예쁘게 포장해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신영복을 이해하고
제대로 받아들이고 그보다 더 성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세상이 많이 어둡습니다. 앞으로도 더 어두워 질 듯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 사라진 하나의 등불이 너무나도 아쉽고 그립습니다. 그래도 다시 또 앞사람의 불을 받아 더 커진
불이 앞을 밝혀주리라 믿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또 처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