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쌀쌀한 12월 11일, 독립영화를 보여준다길래 <인생, 인권 영화제>가 무엇인지 잘 모른채 망원역으로 무작정 갔다.
새로 지어진 건물인지 새건물 냄새를 맡으며 창비 서교빌딩으로 들어갔다.
지하2층 대형홀에서 오늘 상영될 <얼음강>과 <자전거도둑>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먼저 시작된 <얼음강>엔 익숙한 길혜연 배우가 나와 반가웠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엄마에게 소중한 아들 선재.
카센터에서 일하는 선재를 좋아하는 연주가 집 앞에서 선재에게 선물을 주는 걸 본 엄마는 아들지갑에 용돈을 몰래 넣어주려다 하루 남은 입대영장을 발견하게 된다.
맙소사. 하루라니...언제나 자상한 아들인 선재는 입대를 앞두고 왜 엄마에게 입대사실을 비밀로 했을까. 궁금해졌다. 선재와 엄마의 특별한 사이만큼 선재의 생각이 말이다.
길혜연 배우가 SBS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보여준 비서실장 연기는 실로 놀라웠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녀는 그냥 선재엄마였다. 선재를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선재의 비밀은 바로 종교 때문에 병역의 의무를 저버리려한다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왜 하필 여호와의 증인이었을까. 궁금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질문시간에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민용근 감독이 조사한바로는 병역거부자의 90%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라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선재는 총을 들 수 없다는 종교적 신념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세상 어떤 엄마가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겠다는 아들의 결심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선재엄마는 분노했고 아들의 머리를 군대를 보내기위해 짧게 깎아버린다.
그 마음이 어떠했으냐. 알고보니 큰형도 병역거부자여서 감옥에 다녀온터라 엄마의 결정은 완고했다.
그런데, 입대당일 사라진 선재. 선재를 찾아다니는 엄마. 카센터 사장님과 연주..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의 편견과 남과 다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엄마는 선재에게 너만은 감옥에 보내지않겠다고 큰형 면회갔을 때 결심했다며 군대를 안가면 엄마는 죽어버릴거라고 엄포를 놓고, 무릎꿇고 빌기까지 했다. 엄마라면 당연히 그런거다. 아들의 신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인게 아들의 미래요. 아들의 장래가 아니었을까.
우여곡절 끝에 훈련소로 온 선재와 엄마...그런데, 선재가 들어가지않고 버티고 있다.
그들의 앞에는 어떤 결론이 날 지는 숨겨둔 채, 감독은 훈련소 바깥을 걷고 있는 모자의 모습을 쓸쓸히 보여준다.
그리고 자막에 나타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 병역거부자가 현재 1700명이 넘으며 해마다 500여명이 감옥에 간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안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거부하는 사람의 고통과 그들의 가족이 겪는 살얼음판이야말로 얼음강처럼 딱딱하게 변해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영화 <얼음감>은 병역거부자의 사연을 통해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독자에게 편견을 조금이나마 깨어보잔 취지에 제작된 영화였다.
<자전거도둑> 주인공 연주는 자전거를 잘 타는 열혈알바생이다. 그녀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급 자전거의 안장을 훔쳐 팔고 있다. 어느 날 전단지를 붙이는 알바를 하던 중 누군가 그녀의 자전거 안장을 누군가 훔쳐가버리고 이젠 도둑이 도둑을 쫓아다니는 상황이 벌어진다. 안장을 빼간 자리에 꼽여있는 브로콜리가 연주를 약올리고 있는 거 같았다.
안장 도둑을 잡으려다 지쳐버린 연주는 우연히 브로콜리를 사가는 소녀와 마주치는데, 이상하게 소녀의 자전거 안장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비닐봉지를 벗겨보니 그건 연주의 안장임에 틀림없는데, 소녀의 안장을 빼가는 걸 수상히 여긴 술고래 아빠는 연주를 불러세우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합의를 요구한다. 이렇게 사건이 꼬여간다 싶을 때 영화의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스포일러라 말해주기는 힘들지만, 연주와 소녀의 대화에서 누가 범인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영화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조연 브로콜리가 회자되고 있었다. ^^; 브로콜리를 빈 안장자리에 끼워둔 장면은 어떻게 넣게 되었을까 했는데, 일본에서 자전거 안장에 장식한 브로콜리 사진을 우연히 보고 그 사진에서 착안한 장면이었다고 했다.
<자전거도둑>에서 감독의 연출의도는 소녀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길 바라는 데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죄를 지은 자가 어떻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되는지 알고싶다면, <자전거도둑> 을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살펴본 <인생, 인권 영화제> 영화 <얼음강>, <자전거도둑>은 임팩트있는 독립영화였다. 이 날엔 민용근 감독님과 연주 역을 맡은 배우 박주희 님이 와 주셨다. 감독님 인상도 좋으시고 박주희님도 아름다웠다.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두 분이었다. 좋은 영화로 다시 만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