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자리가 모자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작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강의실에 도착한 터라 나도 처음에는 서있다가 북드라망 관계자분들의 "급 의자공수" 덕분에 한 자리 차지하여 앉을 수 있었다. 강의 시작 후에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서서 강연을 듣는 것을 보고 고미숙 선생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1. 박지원, <열하일기>
'길 위에서 길 찾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만큼, 고미숙 선생님은 본인의 인생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열하일기>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열하일기>를 통해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고, 그것은 '이렇게 어렵고 힘든 여정 속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신체란 도대체 무엇인가'로의 확장을 통해 몸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동의보감에 대한 깊은 탐독, 그리고 그에 관한 글쓰기로 이어지며 선생님에게 새로운 인생의 국면을 맞이하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전평론가로 자리매김하고 국내 및 해외 강연을 통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또 그 여행에서 맺은 인연을 통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몸을 움직이고 세상과 부딪히는 과정 안에서 발현하는 것으로, "운"이라는 단어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운이 제발로 걸어오지 않듯이, 끊임없이 활동하고 세상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길이 열린다는 고미숙 선생님의 기본적인 생각에 감탄하게 된 도입부였다.
2. 현장스님, <서유기>
서유기의 주인공들인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를 흥미롭게 파헤치며 그들의 성격과 행동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에 대해서 재미있게 설명해주셨다. 청중은 중년이 대다수를 이루었는데 고미숙 선생님의 유머와 말솜씨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에게 제일 흥미롭게 다가온 인물은 손오공이었는데, 인간이 터득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터득한 그지만 '세상을 뒤집는 것밖에 하지 못함'으로써 '능력'이라는 것의 허무함,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재능'이 나를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셨다.
또한, 저팔계는 욕망과 악덕의 화신이지만 구법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 이것은 추하고 더러운 저팔계의 외모 덕에 아무도 그를 유혹하지 않아 욕망에 무릎꿇는 일이 없었고, 그덕에 끝까지 가능했던 것으로 모두의 거부를 받는 점이 '나의 존재의 무게중심'일 수 있다는 새로운 생각을 제시해주었다.
이 외에도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끼호테>,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길 위에서 우리는 어떻게 길을 찾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해준 소중한 강연이었다.
특히, 신체의 유연성을 통해 매순간 삶의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순간의 삶을 온전히 누리는 "도의 경지"에 도달한 조르바가 다시 한번 생각나며 조르바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감동이 또다시 밀려왔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길 위의 여정을 통해 낯선 시·공간과 조우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 여러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길이 열리고 인생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 바로 고미숙 선생님이 말하는 로드클래식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