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공경희선생님을 번역가로서 처음으로 인지했던 것은 (팬으로써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은) <부엌신의 아내>라는 책이었답니다. 에이미 탄의 이 소설을 한글로 처음 읽고 나중에 영어로 다시 읽었는데 참 신기하게 말이죠... 한글로 읽던 그 느낌과 영어로 읽던 그 느낌이 똑같았어요! 어떤 책들은 말이죠... 원문의 느낌과 번역문의 느낌이 너무 달라서 당황할 때가 있지 않나요? 하지만 공경희선생님의 책들은 신기하게도 원문과 번역문의 느낌이 같아서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하답니다.
오랫동안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선생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답니다.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공경희선생님과의 만남이 있었지요. 10분쯤 늦게 도착하고 말았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더군요. 끄트머리 자리에 앉았기에 앞에 앉으신 분들의 뒷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는데요... 고개의 끄덕거림들, 고정된 시선들... 한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들이 잠깐의 흐트러짐도 없이 선생님의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답니다. 선생님의 말씀도 좋았지만 집중하고 있는 독자분들의 열정을 보는 것도 저는 참 좋았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선생님의 번역은 신기하게도 원문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었지요...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조이스 캐럴 오츠의 책을 읽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답니다. 그래서 선생님 안에 혹시 오츠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요... 아니다 다를까 선생님께서 자신안의 ‘다중이’를 말씀해주시기도 하셨는데... 많은 분들이 그 말에 크게 공감한 걸 보면 다들 선생님이 번역하신 문장들 안에서 원문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오츠... 오츠라는 작가의 다중성을 선생님이 풀어내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혹은 얼마나 즐거우셨을지요? ^^
저는 개인적으로 오츠를 좋아하는지라 선생님이 오츠를 번역하던 이야기를 하실 때 가장 귀가 솔깃(ㅎㅎ) 해지기도 했었지요... 편집자도 공경희선생님의 그간 번역했던 책들을 알았기에 너무도 다른 오츠를 제안하기가 많이 조심스러웠나봐요. 하지만 좀비류를 싫어하시던 선생님도 곧 조이스 캐럴 오츠의 세계에 풍덩하고 말았다능! (물론 풍덩이라는 표현은 쓰시질 않으셨지만...^^;)
문학동네에서 선생님이 번역한 오츠의 책들은 <좀비>, <대디 러브>, <이블 아이>입니다. 이 책들 모두 내용이 매우...아주 매우... 후덜덜 하지요^^;
저는 읽으면서 제 손톱을 물어뜯다 생살이 뜯겨져나갈 뻔 하기도 했답니다. 읽기만 하면서도 심장이 마구 터질 듯이 펌프질을 했던 그 글들을 우리말로 풀어내는 과정은 대체 어떠했을까요?
잘은 모르지만 아, 무서웠겠다, 외로웠겠다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답니다. 선생님도 번역은 고독한 작업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선생님은 당신의 장기가 바로 혼자놀기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쌓인 내공이 선생님의 무서움과 외로움을 극복하게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선생님은 번역이라는 것이 반드시 ‘실수를 줄이고 스토리를 잘 옮기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세요. 거기에 더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마음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원작자의 글을 읽는 일은 진심을 다해 ‘남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는’ 행위와도 같다는 말...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소설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소설 자체와 communication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선생님이 가진 번역에의 진심을 저도 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
읽기란 독자에게 있어서 ‘이해’의 과정 아닐까요? 번역도 마찬가지로 이해하는 과정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석하는 작업이 아니라 말이지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도 그 내용의 엽기를 목격하기를 바라지 않고, 엽기를 저지르는 마음을 이해하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오츠의 글을 읽으면서 존재의 이유를 새삼 존중하게 되었다는 선생님은 글들을 통해 ‘인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번역이란 어쩌면 창작보다 더 힘든 작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선생님이 번역을 하신 지 벌써 25년이라고 하셨나요? 선생님의 앞으로의 꿈은 일흔이 훨씬 넘은 오츠의 여전히 날 선 글들처럼, 선생님도 ‘벼린 칼로 사회의 본성들을 툭 자르는’ 그런 번역을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번역자의 일이란 최전선에서의 작업과도 같다는 말씀도 하셨지요. 번역이란 독자들에 앞서 제일 앞에서 원작을 만나는 작업이지요. 원작에 공감하는 것-그것은 공포와도 닮은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답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공감한 것을 만나게 다리를 놓아주는 것, 아니 독자들로 하여금 다리 위에서 원작과 만나게 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번역하는 행위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앞으로 어떤 번역서를 읽건 되새기며 읽게 될 것 같아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원작자를 직접 만나는 것도 행복하겠지만, 독자와 원작자를 이어주는 번역자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절대 지지 않을 즐거움이었답니다. 다시 한번 더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부탁드리고 싶어요! ^^
PS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도 많이 말씀해주셨지만 제가 아직 읽지 못했기에... 잘 옮기지는 못하겠더군요... 그 책들도 얼른 읽고 그날의 선생님 말씀들을 다시 곱씹고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