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굴함을 강요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학등록금 마련의 압박감으로 손님의 무릎 꿇으란 소리에 꿇어야 하는 시대. 오너가의 횡포에도 아무런 소리조차 하지 않길 강요받는 시대.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박노자 교수는 이러한 지금의 시대를 바로 '비굴의 시대'라고 명명지었다.

 

 

  비굴함을 강요하는 시대.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해야 하는 시대. 이 과정에서 주변부의 아픔은 내 아픔이 아니기에 쉽게 외면할 수 있는 시대.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 "지금 어떤 일하세요?" 만큼 폐부를 찌르는 질문이 있는가. 우리 모두 안다. 그 순간의 무안의 아픔을. 나도 그러한 시기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공백기라고 명명지을 수 밖에 없는 그 시기. 나도 한참 위축되어 다녔다.

 

   그 시기는 나를 비굴의 시대의 한 인간으로 만들었던 엄혹한 시기였다. 그 시기를 거쳤기 때문일까. 지금도 무의식중에도 책잡히려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도덕적 완성이라기보다는 또 다시 그러한 엄혹한 시기로 내딛혀지게 될까봐 두려운 나머지 하는 행동이리라. 나는 비굴한 시대에 살아가는 비굴한 인간의 표본이었다.

 

 책 출판과 함께 들려온 대담회 소식. 박노자 선생님과 홍세화 선생님의 대담은 놓칠 수 없었다. 알라딘을 통해 서둘러 신청했고, 이윽고 초대 메일과 문자를 받게 되었다.

 

 

 

 시기는 2015년 1월 16일(금).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대강당이었다. 평소 자주 찾는 홍대입구 주변이었기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올까 싶었는데. 부쩍지껄한 모습에 참 놀랬다 ^^;;

 

             

대담회의 시작. 먼저 박노자 선생님의 짧은 강연이 이어졌다. 비굴의 시대라 이름 지은 이유. 비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서 언급하셨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에둘러가는 것 없이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며, 비굴의 시대에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이어진 대담회. 사회를 맡으신 김민하 기자님과 홍세화 선생님, 박노자 선생님께서 다양한 주제를 두고 많은 말씀을 하셨다. 또한 중간중간에 참석자들의 질문을 수합한 종이를 보고, 김민하 기자님께서 질문을 통해 대담회를 이끌어 나가셨다. 참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세'였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들의 파편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파편화된 소수의 힘 없는 개인들이 그 속에서 서로 다투고, 병드는 관계가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약자라는 의식을 갖고, 함께 연대해나가야 한다. 연대라고 해서 딱히 무엇을 꼭 같이 해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연민의 감정을 갖고, 공동체 의식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또한 사회적 강자, 지배층의 논리에 함몰되지 말고, 비판 의식을 갖고 다양한 사건과 사안들을 접해나가야 한다. 주변에 이러한 비판의식없이 맹목적인 논리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일깨워줄 수 있도록 노력도 불사해야 한다. 파편화된 우리가 가져야할 기본 자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또 하나. 참석자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갑질"을 해본적이 있냐는 질문. 이에 대해 박노자 선생님과 홍세화 선생님의 답변은 (어쩌면) 뜻밖이었다. 텔레마케터들의 전화에 불친절하게 응대했던 모습, 임금 착취를 하는 기업의 서비스를 비판의식 없이 애용했던 모습 등등 우리가 흔히 '갑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범위를 확장지었다. 그뿐인가. '중국인'들에 대해서 '짱깨'라고 칭하는 것 또한, 그 소리를 듣는 중국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 등등에게는 또 다른 갑질의 일환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힘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힘 없는 우리 자신들도 무심결에 행하는 수 많은 갑질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유익한 수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준비한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만큼 꿈 같은 시간이었다. 이윽고 이어진 사인회 시간. '비굴의 시대' 출간 기념 답게 박노자 선생님으로부터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섰다.

 

       

 나도 서둘러 사인을 받고자 줄을 섰다. 박노자 선생님께서 내 앞 줄의 사람들까지는 ㅇㅇㅇ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싸인을 해주셨다. 그런데 내 차례에선 ㅇㅇㅇ님이라고만 써주셨다. 아무래도 나의 연배가 상대적으로 어린 탓인듯 싶었다. 교직에 있는터라 지겹게 듣는 '선생님'이란 호칭에 대해서 새삼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였다. ^^;; 학교에서 듣는 그 호칭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느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홍세화 선생님과는 싸인도 받고 기념 촬영도 하는 영광의 순간을 누렸다. 또한 어줍잖은 나에게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교사로서 가져야 하는 자세,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것들 등등. 많은 것들을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학생 스스로도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비굴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듣고, 많은 것들을 새겼다. 많은 말씀을 들려준 박노자 선생님, 홍세화 선생님, 김민하 기자님에게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또한,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준 한겨례출판과 알라딘 등 여러 분들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2015년 새해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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