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시인이 북토크를 시작하며 이제니 시인의 <코끼리 그늘로부터 잔디>라는 시를 말했다. 미안합니다를 두 번, 괜찮습니다를 두 번 말한다는 이 시. 후기를 쓰려다가 이 시를 먼저 찾아보았다. 시 전문을 구할 순 없었고 트위터에 누군가 올려놓은 시 한 토막만 겨우 찾았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속으로 속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나아갔다가 되돌아갔다가 코끼리는 간다 (코끼리 그늘로부터 잔디, 이제니)

 

김훈작가의 미안합니다를 한 번, 김연수작가의 미안합니다를 한 번. 그들 각자의 괜찮습니다를 한 번, 괜찮습니다를 한 번 더. 두 사람의 미안합니다와 괜찮습니다 사이를 나아갔다가 되돌아갔다가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말들은 북토크의 어느 언저리를 낮게 맴돌았다. 그리하여 북토크의 어느 순간 김훈 작가의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어느 순간 튀어나왔던 청춘이라는 말들이 이제니의 시와 함께 왠지 모르게 공명하였다.

 

문태준시인은 코끼리의 몸집을 시간의 몸집에 비유했었던가? 비좁은 회사에서 이제니시인의 이 시를 읽었다는 문태준시인.  코끼리라는 시간의 거대한 몸집이 그의 좁은 사무실을 얼마나 크게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을까? 그는 우리의 시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의 시간이라는 코끼리라는 시의 말로 문을 연 북토크.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훈, 김연수 작가들과의 만남, 게다가 서프라이즈 선물같은 문태준시인이라니. 덕분에 모처럼 코끼리처럼 묵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노란색 스카프를 두른 모습이 예전 어느 사진 속 프랑소와 트뤼포를 문득 연상시키던 김훈 작가. 작가님은 요즘 선감도에 계셨단다. 아득한 갯벌이 보이는 그곳의 방에는 한 권의 책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있는 것이라곤 책상, 원고지, 연필, 그리고 냉장고 안 감자, 우유, 소금, 옥수수 같은 오로지 연명을 위한 기초식품들만. 

 

책을 왜 놓지 않는지 누군가 질문하자 작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책을 놓고 일하면 정신이 산란해진다, 책이 유령처럼 머릿속을 얼씬거린다, .  

 

그리고 사전도 있단다. 사전은 책이라고 하기 보다는 연장으로써 구비하고 있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국어사전, 한문사전, 영어사전이라는 은유로서의 연장 이외에도 진짜 연장들인 립빠, 망치, 뻰치, 도라이바(드라이버 아니다, ‘도라이바)를 아끼신다는 작가. 문태준 시인이 립빠, 뻰치라는 말에 쿠사리를 주기도. (쿠사리도대체 적당한 대체어가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는다ㅎㅎ;) 

 

하루에 3시간을 집필하면 그 외의 시간들은 혼자 노신단다. , 밀물 때의 먼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새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철새는 어떻게 그룹을 만드는지, 도착할 때의 그룹구성원이 출발할 때의 구성원들과는 다를지 같을 지도 궁금해 한다고 했다. 조류학자에게도 물어보기도 한단다. 그런데 조류학자도 모른다고 할 때가 많다고. 때로는 농부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늙은 부부 농부가 살고 있는데 하루 종일 말도 없이 따로 앉아 밭일을 한단다. 그걸 지켜보며 저 관계에는 말이란 게 필요 없는 것이로구나 그걸 깨달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언어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관계라는 것을.

 

자신이 쓴 글을 다시 보는 건 너무 지겨운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전거여행도 다시 펼쳐보지 못한다는 김훈작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노출시켜야 하는 이러한 에세이는 이제 다시는 못쓸 것 같다고 말했다(맞지요?). 에세이를 얘기하다 어느덧 소설쓰기의 어려움을 얘기하였다. 그러면서, 소설은 이렇게 쓰면 안되다는 것을 잘 써놓았기는 했지만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는 써놓지 않았다는 책이 바로 김연수작가의 이번 책이라며 기습적인 책소개까지^^

 

김연수작가는 <소설가의 일>이라는 새로 나온 자신의 책을, 소설 쓰는 작가들에게는 차마 주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 권도 주지 않았는데결국 대선배인 김훈작가가 읽고야 마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고.

 

김연수작가는 나는 가벼운 사람! 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우스개를 하기 힘들지만 에세이는 재밌게 쓸 수가 있다고 한다. 소설 쓰는 일을 이야기하는데 진지하게 쓰면 혹시나 오글거릴까봐 일부러 더 우습게 일부러 더 가볍게? ㅋ 우습고 가벼운 건 어쩌면 김연수작가가의 궁극의 꿈이 아닐까. 소설가의 일 118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무라까미 하루끼가 63세에 쓴 에세이들을 이야기하며,

 

지바 현에서 굿럭이라는 이름의 러브호텔을 보았습니다. 애쓰십시오.” , 이분도 내가 너무나 꿈꾸는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소원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농담을 잘하는 노인이 되는 일이 됐다.

 

(, 작가님 농담 너무 재밌으세요^^ 소원을 이루셨습니다. 노인이 되지 않으셨는데도 이미 너무 웃기고 재미나시니 조금 걱정도 되요. 앞으로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는 꼭 배꼽을 부여잡고 읽도록 하겠습니다!)

 

문태준시인은 김연수작가가 책에서 스스로를 황희 정승 스타일이라고 한 부분을 인용하며 (오빤 정승 스타일) 그렇다면 김훈작가는 과연 어떤 스타일의 작가인지 물었더니 김연수작가는 다윈이라고 대답했다. (김훈선생님은 다윈 스타일) 왜냐하면 다윈이 그랬듯, 김훈작가 또한 동물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을 구분 지어 바라보지 않으므로. 김연수작가는 김훈작가를 보면 생물학자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아니다 다를까 김훈작가는 김연수작가가 다윈을 얘기해서 깜짝 놀랐다는 말과 함께 (김훈작가는 자신에 대한 김연수 작가의 평가가 맞다고 했다) 그때부터 다윈과 비글호, 피츠로이선장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어제 읽은 책을 얘기하듯 들려주기 시작했다.

 

비글호는 27미터의 범선이었다. 21살의 지질학자였던 다윈은 이 배를 타고 5년 동안 피츠로이 선장과 함께 세계를 항해했다. 출항일은 그야말로 청춘은 아름다워’. 청춘의 출항이 결국 인류의 역사를 뒤집어놓았다. 그야말로 청춘은 위대한 것! 김훈작가는 자신이 신뢰하는 것이 바로 다윈이 하는 일 같은 것이라 했다.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하는 것. 그래서 김훈작가는 실록과 연구보고서, 현장 보고서를 좋아한다고 한다.

 

예전에 문태준 시인이 김연수 작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소설을 한번 써볼까?

 

그랬더니 김연수 작가의 대답은,

 

힘들다. 쓰지 마라. (소설은) 글자수가 많다.

 

<소설가의 일>을 읽고 문태준시인이 행여나 소설을 쓸까봐 김연수작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읽고 그대로 바로 따라 한다고 해서 바로 소설이 될 리는 만무하므로. 소설가가 되는 길이란 쓰고 또 쓰고 또 또 쓰는 것이라고 고통스럽게 강조하는 김연수 작가의 말에 김훈선생이 동종업계 사람으로써 그의 고통에 심히 공감하였다.  말하자면 이 책은 소설쓰기의 영업기밀을 직접 말하지는 않으나 마음으로 전하는 책. 쓰고 또 쓰고  쓰고 또 또 써야 한다는 그러한 영업기밀... 그것을 말로 간략히 표현해보자면 무진장 써야 한다!’. 쓴다는 것은 고통의 체험이었다.  왜 이런 영업 기밀-쓰기의 고통을 책에 쓰지 않았느냐는 말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힘들다는 얘기는 굳이 안 써도 될 거 같아서요ㅎㅎ

 

소설가는 쓰고 또 쓴다면 시인은 쓴다, 떠난다라는 믿을 수 없는 창작의 비밀을 문태준시인은 털어놓고 말았는데…(이건 왠지 안 믿고 싶어요)

김훈작가는 하루에 원고지 5장을 쓰기로 하고 있다고 한다. 김훈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규율이란다. 규율을 상실하게 될까 두렵다. 왜냐 규율을 잃어버리면 건달이나 매한가지. 스스로를 단속하기 위해 이러한 규율을 정해놓았다는 김훈작가는 자율에 도달하기 어려운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북토크의 마지막에 이르러 세월호를 이야기하였다.

 

팽목항의 그분들을 특별한 재난을 당한 소수자로 만들어서 문제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행태들을 비난하였다. 세월호참사는 이 세상을 무엇이 지배하는지 보여주는 사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며 그 질서를 벗어나게 되면 어떤 참극을 맞게 되는 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했다.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찬반양론으로 나누는 행태를 비탄하였다. 찬과 반이 서로를 증오하게 되자 원래의 문제는 정작 사그러들고 만 남았다.

 

모두가 공감을 느끼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남의 슬픔이 지겹다라고 말까지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이곳은 공감을 금지하는 사회, 약자에게 동조하지 말라고 유도하는 사회이다. 여기에 맞서고 싶다. 측은지심은 인간 고유의 자질이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이 곳. 커다란 분노를 느낀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귀 기울여 들었지만 제대로 옮겨쓰기는 힘들었다. 단어 하나 잘못 받아 쓰면 작가 두 분은 물론 세월호의 그 분들에게까지 누를 끼칠까 걱정이 들었다. 최대한 조심해서 두 분의 이야기를 옮기려고 했는데 잘 옮긴 건지는 모르겠다.

 

북토크의 마지막에는 독자들이 인상적인 질문들을 많이 던져주었다. 김훈 선생님의 디테일과 김연수 작가님의 핍진성에 대해 심층 복습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디테일이라는 김훈작가의 강조. 그 디테일들 안에서 취사 선택한 후 그것들을 논리적으로 배열해야 한다고 했다. 관념과 추상에 빠져 수사를 남발하는 것은 좋은 글이 아니다라는 작가님 말씀! ^^ 질문자들의 질문과 답들을 내가 전하는 건 왠지 나의 몫이 아닐 것 같기에 패스하자. 간략하게 전하자면예전에 김훈 선생님을 글을 편집하기도 했다는 분은 김훈 선생님의 글 쓰는 프로세스를 물으셨고(말하자면 영업비밀을!), 글 쓰는 내공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게다가 소설도 쓰고 있다는 분이 했던 나약함에 대한 질문도 좋았다. 작가님들의 답들도 좋았다. 일주일에 4편의 꽁트를 쓰고 있다는 소설가 지망생인 16살 소녀독자님의 질문도 좋았다. 글쓰기에 회의감이 든다는 소녀독자님의 질문에 대한 김연수작가의 답이 인상적이었으므로 조금 옮겨볼까?   

 

4편은 너무 많아요. 그러니 회의감이 들 수 밖에. 좀 쉬세요. 작가들은 하루에 3매 쓰고 5매 쓰잖아요

 

인생에는 다른 기회, 다른 문도 열릴 거라는 걸 알고 계세요. 마음을 닫아두지 말고, 자기 앞에 다가오는 모든 것을 해보려고 노력해보세요.

 

삶에 대한 어떤 질문도 있었고 김훈 작가는 이런 답을 해주었다. 인생에 도움을 줄만한 답변을 작가는 준비해놓고 있지 않다. 작가는 실용적 질문에는 무력한 인간이다. 통속적인 대답을 해주겠다. 사람은 밥벌이를 해야 한다. 건전하고 자신의 꿈에 맞는 일을 찾도록 해야 한다. 현실적인 조언이나 답변은 해 줄 수 없다. 김훈작가는 답변의 끝에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를 덧붙였다. 그때 갑자기 절실하게 김훈작가의 책들을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글들을 아구아구 읽어 먹어삼키고 싶던 순간!

 

마지막으로 김연수 작가님의 어느 답변 하나. 평생 절대 물리지 않는 빵은? 바로 소보로빵. 소보로빵에 대한 오해를 하나 깨고 싶다. 소보로빵은 절대 빵찌꺼기를 모아 만드는 빵이 아니다! 절대 오해하지 말아달라. 그리고 오해 하나 더. 빵집 아들이라고 해서 맘껏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지막 말에 왠지 인생의 진리가 숨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빵집 아들도 맘껏 빵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런 게 인생. 혹은 그런 게 바로 글쓰기..? ^^

 

북토크의 맨 처음에 문태준시인이 시간을 얘기했었다. ‘시간하니 생각나는 게 또 있다. 김연수 작가가 얘기해 준 시간’. <소설가의 일> 14쪽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렇게 나는 소설가가 됐다. 소설가의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하면서. (…) 결국 비밀은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그들의 이야기로 시간을 경험하며, 그렇게 나는 다시 독자가 되었다. 북토크의 시간은 코끼리처럼 몸집 큰 시간이었다. 묵직하고 은근하게 도장 찍듯 걷던 그 시간의 발걸음! 김훈, 김연수, 문태준. 세 분께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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