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내 버킷리스트에는 강연회에 참가한다는 것이 새롭게 추가되었었다. 2012년도 이미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다이어리를 펼쳐 보니 이번 달에는 모두 세 번의 강연회에 참석했었다.  6월 첫날 모 대학에서 열렸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마이클 샌델 교수,『사랑의 기초』의 정이현 작가, 그리고 『그럼 너머 그대에게』 저자 이주향 교수님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참가자만 1만 명이 넘어 토론 열기로 뜨거웠던 강연으로부터 홍상수 감독의 미개봉 신작도 덤으로 볼 수 있었던 자리도 그랬거니와  예전에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애청자의 입장에서 독자의 입장으로 만남까지 하나하나가 내겐 다채로운 체험이었다. 6월을 정리하며 그 가운데서도 『그럼 너머 그대에게』 저자와의 만남을 후기로 기록해두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미술에 대한 문외한으로서 느꼈던 새로움 뿐만 아니라 중년이 되어 관심을 갖게 된 '치유’라는 것 두 가지가 모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낯선 곳을 처음 찾아갈때 그랬듯이 모임장소(홍대 B+)를 살짝 지나쳐가긴 했지만 어렵지않게 찾을 수 있었다. 홍대거리하면 떠오르는 선입견(?)이 있었으나 의외로 그곳은 번잡한 거리와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출석체크를 하고 구석자리에 앉아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랄까, 몇몇 사람들이 함께 독서모임 같은 걸 하기에 더없이 좋을듯 편안하고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었다. 북카페답게 벽장엔 꽤 많은 책들이 꽂혀있었고 넉넉하면서도 두터운 나무탁자에선 안정감이 묻어났다. 담소를 나누거나 책에 몰입 중인 이들이 있었고 일찍 도착해 강연을 준비 중인 저자의 모습도 보였다. 원하는 음료와 함께 가볍게 저녁을 대신할 수 있을만한 간식까지 무료로 제공되었으며 질문을 미리 작성할 수 있는 쪽지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이래저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마치 <TV 미술관>의 한 코너인 '미술관 가는 길'처럼, 책에 담긴 그림들이 하나씩 벽 한 켠 하얀 스크린 위에 펼쳐졌고 해설이 이어졌다.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귀스타브 모로의 <오르페우스>, 앙리 마티스의 <원무>,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조르주 드 라 투르의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등등.. 참석 문자를 받고선 급하게나마 어쨌든 책을 읽고 갔기에 교수님의 이야기가 한결 쉽게 이해되고 또 공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림에 대한 해설에 더해 해인사 템플스테이 체험이라든지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도 곁들여져 한층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오붓했던 시간 속에서도 놓칠 수 없던 것은, 교수님이 들려주시던 삶에 대한 철학과 그림을 통해서 본 다채로운 인생의 모습이였던 것 같다. 아무튼 책 속 그림들을 커다란 화면으로 보면서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체험은 분명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어 나갈 때의 내밀한 시간과는 색다른 것이었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른 이는 그 그림을 보고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기도 할 것이라고.(아쉽게도 현장에선 다뤄지지 않았지만 이 책 3부에 실린 귀스타브 쿠르베의 <상처 입은 남자>같은 그림이 내겐 그러했다) 운명이란 단어가 너무 거창하다면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같은 풍경은 어떠한가, 밤조차 너무 환하기에 도시를 벗어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그런 밤하늘은 아마 누구라도 한 번쯤 탄성을 자아내며 바라봤을 풍경일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오래 간직되어 각박한 도시의 삷을 견디어 나가는데 힘이 되어주는 자연의 풍경, 마치 알랭 드 보통이『여행의 기술』에서 언급했던 워즈워스의 '시간의 점'처럼 말이다.


 

 

  이 세상은 매일매일 변하는 주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투자자의 시선으로도 볼 수 있지만, 한 송이 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소녀의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조지 클라우센의 <들판의 작은 꽃>에서 작은 꽃이 아름다운 건 소녀가 응시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디 꽃만이 그러할까 책이 그렇고 그림이 그렇고 누군가와의 만남이 그러하리라. 그림에 대한 소양이 전무한 나조차도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너머 뒷이야기를 읽는 재미에 푹 빠졌고, 그림을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책 48개의 꼭지에 실린 많은 그림 중 어느 하나도 내가 소유하기란 꿈 조차 꿀 수 없는 것들이지만 현자들은 한결같이 말하지 않던가. 소유나 성취에서 오는 행복이란 오래 가지 못하며 진정한 행복이란 관계에서, 체험에서 오는 거라고. 그렇기에 오랜만에 마음이 치유되는 좋은 책을 읽고, 자신의 시선을 끄는 그림을 응시해보고, 저자와의 만남에 참가하여 마음 한 켠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것, 이렇듯 소소한 일상의 경험들 또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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