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이 한국 경제에 신고전주의 경제학과는 다른 대안을 제시해보겠다며 시리즈를 낸 지 어언 4년째다. 이번에 그가 과감하게 파고 든 주제는 문화경제학이다. 과거 개별연대 시대에는 그저 먹고 살게 해준다면 어떤 직업이라도 선택했다. 하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직업을 통해 자신들의 자아를 실현하기를 원하며, 문화 관련 직종은 그 중에서도 특히 선호된다. 하지만 문화 산업의 화려한 외양 속에 숨겨져 있는 건 무대 뒤에서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우석훈은 이러한 상태로는 문화 산업의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과감하게 구조개혁을 제안한다. 이날 강연회는 문화산업 중에서도 방송을 다루는 자리였다. 우석훈 박사와 더불어 CBS 정혜윤 피디와 EBS 김진혁 피디가 자리를 함께 해 문화로 먹고 살기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나중에 방청객으로 온 지승호 작가도 무대로 올라 자리를 빛내주었다.) 본래 각자 20분 정도 강연하고 질의를 받았으나, 질의 응답 부분 까지 다 개인파트로 편집했다.

우석훈 박사는 보통 선진국이 되면 문화비 지출이 늘어나는데, 한국가 같은 경우에는 2003년 이후 식비가 늘어나고, 문화비가 줄어드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에 따르면 기본적인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를 해결하고 나면, 탈물질적 욕구들이 생겨나는 법인데 오히려 한국은 문화비 지출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가정의 경제적 형편이 좋아지지 않아서 가처분 소득 중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거나, (각종 문화상품을 인터넷을 통해 다운 받거나, 그 자체의 질의 하락으로)문화적 가치의 상품성이 떨어졌을 것이다. 어느 쪽이 사실에 가까운지는 몰라도 문화산업의 사정이 겉으로 보이는 한류 열풍과 달리 내실이 초라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는 배용준이나 그런 탑스타들은 돈을 벌었어도, 사실 한류를 통해서 벌어들인 돈은 많지 않을 것으로 얘기했다. 한류를 통해 돈을 벌어들였어도, 주로 소수의 대자본 손에 들어가지 한류를 만드는데 있어서 밑바닥에서 고생했던 이들에게 소득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작품에서 배우들에게 지급되는 돈이 제작비의 40~60%에 달하는데 외국에서는 20%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배우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부족한 비용은 스탭들을 비정규직화해서 인건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한국의 모든 산업이 그렇다. 스타 몇몇만 빛나고 무대 뒤의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된다. 또한 다들 하드웨어만 크게 만들고 정작 그 하드웨어 속에서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홀대한다. 그는 이를 일종의 토건주의로 풀이한다. 몇 년 전에 정부가 오페라 하우스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우석훈 박사는 당시 오페라 하우스 만들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수요가 얼마나 있겠느냐, 그러지 말고 지역의 작은 공연장을 만들어서 청소년들이 공연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결국 정부는 큰 돈을 들여 오페라 하우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정작 돈이 없다며 오페라 하우스에서 노래할 서울시 합창단 단원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었다. 슬픈 현실이다.

영화산업은 2006년부터 위기라고 한다. TV는 꾸준하게 4시간 시청하는 것으로 드러나는데(이 부분에서 주당인지, 일당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주중에는 주로 노인과 주부의 시청률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케이블과 위성TV로 다양한 채널들이 생기면서 공중파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공중파 드라마들이 50% 시청률을 곧잘 넘겼는데 최근에 50% 시청률을 마지막으로 넘긴 드라마는 주몽이라고 한다. 작년 시크릿 가든과 자이언트가 마지막 회 즈음에 가서 40%에 근접했을 뿐이라고 한다. 요즈음 선전하는 건 예능 프로그램이다. 우석훈 박사는 ‘강호동 쑈’라고 이를 지칭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과거 국민 두 명 중 한 명이 봤던 서세원 쇼에 비하면 낮은 시청률을 기록한다. 가장 어려워진 건 시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1%의 시청률을 애국가 시청률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TV 프로그램이 다 끝나서 애국가가 나올 때에도, 그냥 끄기 귀찮아서든, 잠이 들었든 1% 정도의 사람은 TV를 시청한다고 한다. 하지만 시사, 다큐가 나오면 그냥 바로 돌려버린다. 청중석에서 애국가 시청률 얘기에 큰 웃음이 터졌지만, 사실 뒷맛은 굉장히 씁쓸했다.

그는 방송사에서 PD들을 거의 뽑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과거에는 피디들이 다 운동하다가, 놀다가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 삼사 통틀어 1년에 10여명 밖에 뽑지 않기 때문에 경쟁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 들어 대졸 초입 연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 직장에 대해서 매우 만족하고 프라이드가 높다고 한다. 우석훈 박사는 새로운 PD들이 충원되지 않는 현실을 걱정하며 새로운 발상의 제작물들이 나오지 않고, 기성세대의 시각이 고정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는 이러한 현실에서 문화산업이 살아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국가의 지원을 얘기했다. 물론, 무조건적인 지원은 아니고 지역적 컨텐츠를 제작하는 한에서 지원을 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너무 서울 집중적이기 때문에 모든 문화를 서울이 빨아들이게 되고, 지방 사람들은 스스로를 타자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 주도의 대형 프로젝트보다는, 지방에서 스스로 문화를 생산할 수 있을 때 지방의 문화가 살아날 것이다. 그는 사회적 기업 모델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지금까지 성공한 사회적 기업 모델은 경주빵이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데, 이건 경주빵이 특별히 맛있다기 보다 휴게소에서 위치를 잘 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 부처에서 조금만 더 섬세하게 지원해준다면 사회적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는 또 다른 예로 서울시 발레단 얘기를 했는데, 서울시 발레단은 이름은 서울이지만 사실 과천에 있다. 현재 수도권에서 3개 정도의 발레단이 있고 서울시 발레단은 그 중 3번째 규모인데 과천시와 잘 연계를 맺어서 지역적으로 운영을 잘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정혜윤 PD가 마이크를 이어 받았다. 그는 우석훈 박사의 책을 보며 세가지 책을 떠올렸다고 한다. ‘감정노동’, ‘열정노동’(아마도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를 잘못 말하신 듯 하다), ‘25일’이 그것이다. 감정노동은 없는 감정을 가짜로 만들어내어 이를 노동으로 만든 것이다. 감사합니다. 고객님을 되풀이 하는 114 직원이나, 판매대에서 항상 미소를 보이며 고객을 대하는 안내 직원 같은 직종이 이에 해당한다. 그들은 연신 “고객님 사랑합니다”를 외치지만, 그들은 실제로 당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는 강조했다. 열정노동은 열정을 노동으로 만든 것이다.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갖고 영화판, 연예판에 진출하여서 열심히 일하지만, 돌아오는 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이다. 그들이 힘들다고 할 때 세상은 그들에게 “너희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자나”라고 싸늘하게 대답한다. 25일은 현대 자동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철폐 투쟁을 그린 책이다. 비정규직 비율이 5~60%에 달하는 비정규직 천국 대한민국에서도 유독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문화 산업 분야이기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그녀는 CBS 라디오 피디인데 CBS의 다른 점은 몰라도 비정규직을 일정기간 이상 쓰면 꼭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점은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얘기했다. 이는 CBS 정규직 사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회사와 타협을 본 결과라고 한다. 이러한 정규직의 양보가 비정규직을, 더 나아가 더 안정적인 사회적 삶을 위한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화산업 종사자는 다른 직종과 다르게 표현욕구와 장인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표현욕구와 장인정신을 안정적으로 발휘하도록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문화생산자들은 창의적인 컨텐츠를 생산해내지 못할 것이다. 한편, 그는 사르트르의 “라디오는 사회적 긴장이 풀어지는 시간”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각종 화려한 시각적 효과가 더해지는 시대에도 라디오는 긴장이 풀어지는 시간에 필요할 것이라며 그의 직업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문화산업 종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문화에 대한 사랑을 놓지 말라고 조언해줬다.

마지막 차례인 김진혁 피디는 방송국 스탭들의 현실을 이야기 했다. PD들은 노동량에 비해서 월급이 좀 짜도 안정적으로 돈이 나오는데, 작가들은 편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생활이 불안정하다고 한다. 그리고 임금도 많지 않은데,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메인 작가의 경우에도 대부분 작업수당을 일년 수입으로 환산하면 일반 직장인과 비교해 적은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10년의 경력이 안 되는 다른 작가들은 어떠하겠는가. 조연출들은 비정규직으로 계약되는데 그나마도 비정규직 법에 따르면 2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2년을 일하면 전부 교체된다고 한다. CBS 같이 정규직 전환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KBS와 같은 공영 방송들도 비정규직 비율에 있어 사기업들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려면 그는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는 모두 뭉쳐서 일어나서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명의 학자와 두 명의 현장 실무자로 구성된 강연회는 결국 문화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죽이는 한국 문화산업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데에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런 식으로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을 죽이다가는 좋은 컨텐츠도 나올 수 없고, 컨텐츠를 팔아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문화산업 자본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동력을 어디서 마련하느냐는 건데, 결국 문화산업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파편화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나서 활동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는 활동비를 받으면서 상근을 하면서 일하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고되고 박봉에 시달리는 문화산업 비정규직 본인들이 초반에 주도적으로 나서기가 힘들다면, 기존 사회 세력이나 지식인들이 무언가 발판을 마련해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석훈 박사의 말대로 문화로 세끼 밥 먹고사는 날이 언제 올 것인가. 그 날의 도래는 모두가 문화 소비자인 사회구성원들의 폭넓은 관심과, 전문가들의 조력,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단결과 결의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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