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과의 만남 후기



일단 장소 느무 좋고,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 직원분이 다가오더니,

아메리카노/아이스아메리카노/맥주/스프라이트/콜라 중에

아무거나 골라 드시라고 안내해주시고 갔다.



사실 타는 목에 맥주가 그립긴 하였으나,

커피를 홀짝이시는 분들 옆에서 맥주를 삼킬 순 없어서,

그래서 나도 교양있는 척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작가님이 제일 잘 보일 자리에 앉자

뒤에 앉으신 분이 말을 걸어주셨다.



서로 잠시 관심있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몇번 간 작가와의 만남에서 좀 실망을 했었다고 말씀드리자,

(순전히 내 욕심과 환상 때문에)

그 분은 정호승님과의 만남에 한번 간 적이 있다고 하시며,

저분은 정말 시 그대로인 분이라고, 정말 그럴거라고 말씀하셔서

내심 기대를 잔뜩 하고 대기했다.



시인님 등장.



정말 사람좋게 생기시고 :)

소파에 장식해놓은 강아지 인형을 보시더니

갑자기, 17살의 나이로 이번 여름에 죽은 시인님의 개

'정바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인형의 귀를 만지작 거리면서 말씀하시는 눈빛이 애틋했다.



그리고 누구나 상상력은 있다. 화장실에 있는 조약돌도, 길가에 버려진 항아리에도. 그래서 그 연고를 상상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며 자신을 낯추신다. 사물마다 마음이 있다며, 시는 그 마음을 읽는 일이라고 하셨다.



"시란, 사랑도, 뭐도 아니다. 그저 잠깐의 위안이 될 뿐이다."라는 말씀을 언급하시며 조병하 시인님을 회상하고, 시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도 말씀해주셨고.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수 있을까, 즐거움을 넘어서 고통으로 글을 쓰면서까지 연습을 해야하나,라는 질문에 고통없는 좋은 결과는 없다. 소설은 노력으로 되지만 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만 된다란 말은 옳지 않다, 시 또한 노력과 고통의 결과이라고 말씀하시며 양질의 책을 최대한 많이 읽으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쓰게 된 이유, 친구와의 만남에서 위로의 말로 썼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 시의 한 구절로 바뀌게 된 이야기, 긴 꽃대 위에 연약한 한 송이 꽃을 피워올리던 수선화를 바라보며, 제목을 정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시인님 목소리로 그 시를 듣는데ㅠㅠ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이 분의 목소리로 이 시를 들을 수 있다니!



과거 사회 참여적인 시에서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시로 변화해 간 과정에서, 당신이 시대의 눈물을 닦아주려 생각했던 것은 오만이었다며, 시란 자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내가 여전히 그 과거와 똑같은 생각만을 가지고 살아가고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란 말로 끝을 맺으셨다.



그리고 이런 작은 모임(한 스무명안팎이었던 듯)은 10여년 만이라며, 보통 이런 곳에는 잘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신다고, 주방장은 주방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최인호님의 말씀을 언급하시며 웃으시는데, 독자들은, 미식가들은 솔직히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낸 주방장의 얼굴을, 이야기를 당연히 듣고싶지 않겠느냔 말이다ㅠㅠ. 욕심이 과한가?ㅠㅠ 어찌저찌하였든 이런 자리에 나와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좋은 시는 책의 가장자리에서 침묵의 향기가 난다.'라는 말을 음미하며, 이번에도 그분의 책에서 따뜻한 다독임와 침묵의 향기로 위로받고 싶다. 너무나 좋았던 분, 좋았던 만남이었다. 언젠가 또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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