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또 뽑혔다. 마음산책에서 나온 <우리가 보낸 순간> 출간 기념 강연회였다. 금요일 밤, 다들 춥다지만 그리 춥지 않은 날씨를 뚫고 홍대 살롱 드 팩토리에 도착했다. 처음 가보는 공간. 책장에 꽂힌 책들이 반가워 사진을 찍으려다 말았다. 참가한 사람이 40명이라고 들었는데 그만큼 많았고, 남자는 적었다. 대부분이 20대 말에서 30대 초로 보였고, 이게 팬층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나는 김연수를 좋아하지만 팬이냐고 묻는다면 그 말은 거부하는 사람이다. 김연수 작가 근처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소녀처럼 밝히던 그녀들과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연수는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파란색으로 몸을 감싸고 들어왔다. 목도리도 남색, 청바지, 파란색 뉴발란스, 그리고 청록색에 가까운, 크리스마스때는 빨간색이었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한 해가 바뀌어 색이 청록색으로 바뀐 것 같은 무늬가 들어간 니트를 남방위에 덧입고 들어왔다. 김연수도 처음보는 공간에 낯설어 했고, 준비했던 말들을 공간에 붓기엔 그 분위기와 장소가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 준비성이 많은 작가라는 걸 알기에, 이번 강연회를 위해 그가 작업실 가까이 있는 호수를 보며(그는 이번엔 봤을까? 날이 추워 근처 메타세콰이어 길은 걷지 않았을텐데) 내용을 준비했다는 건 자명한 듯 했다. 왜냐하면 그는 낭독회를 위해 조명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고 음악까지 선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조금이라도 멋있어 보이기 위해 카페 혹은 관계자들이 마련한 조명때문에 그는 얘기하는 내내 땀을 뻘뻘 흘렸다. 내 뒷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손수건을 건네기엔 거리가 멀었다. 사실 이 날 느낀 낭독회와 나의 거리감은 딱 이 정도의 거리감 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이야기 진행을 조금 힘들어 하는 듯 보였다. 집중된 참가자들의 눈은 그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얀머그를 남들에 비해 특이하게 잡는 모습까지도 하나하나 살폈고, 그 순간엔 너무나 적막했고 마치 '눈으로 말해요'를 실행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예의 그 말투, 지방색을 가졌지만 억지로 '난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 라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나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요' 라는 느낌을 주는 말투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글을 쓸 마음이 없었던(그는 이 마음과 환경을 어렸을 때 부터 가지는 것을 글 쓰는 '재능'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이야기, 그리고 '글을 계속 써라'라는 <우리가 보낸 순간> 소설편 마지막에 담긴 것과 비슷한 내용까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그는 순간 순간 말하는 내용이 의도와 다르게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 특유의 어색해 하는 말들, 그가 말하고도 반응이 없을 때 혼잣말 처럼 '아닌가 보죠...?' 라는 듯한 뉘앙스는 언제나처럼 웃음을 짓도록 했다. 화기애애 하진 않지만, 은은한 웃음이 감도는 강연회였다.

  그는 사실 버거워했다. 이건 사실이다. 아무리 늦게 시작한들, 글쓰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글을 써온 내용을 40~50분 만에 다 끝낼 수 있을까. 단지 이 자리는 김연수라는 작가를 직접 만나고 실제로 그는 어떤 사람이고, 책으로만 봐오고 이 글을 쓴 사람의 모습은 어떠할까, 라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자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김연수라는 사람에 의해서 그 공간에 있었던 사람중 몇 명은 이미 글을 쓰고 있거나 혹은 앞으로 자신의 글을 꾸준히 쓸 사람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글을 재능을 가지고 쓰는 게 아니라 재능을 발견할 때 까지 쓰는 삶,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을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는 그 진심을 조금 더 보여주려고 추운 날 푸른색을 바탕으로 옷을 입고 "미장원(맞다, 그는 미용실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분명 미장원이라고 했다)"까지 가서 머리 손질을 받고 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난 낭독회에서 자신은 더이상 에세이를 칭찬하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그가 꾸준히 내는 에세이와 작가라는 존재로서의 소설은 어쩜 그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작품을 만들어 이를 판매한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글을 꾸준히 쓰고 이를 통해 자신은 글쓰기 재능을 만들었고 점점 더 나은 자신이 되어간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는 올해 또 나올 책들과 퍼포먼스(아마 공연인데 단순한 공연은 아닐테다) 얘기를 하면서 조금 부끄러워했다. 그가 "가요계에는 윤종신이 있고, 영화계에는 홍상수가 있으며, 문학에는 김연수가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다작을 민망해하지만, 그가 작년 연말에 출간했던 두 권(실제로는 세 권)의 책이 독자들에게 선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처럼, 선물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김연수의 말대로 책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그가 했던 말들을 '지키는', 약속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와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며, 그가 글쓰는 모습을 생각해봤다. 그의 책상엔 예전만큼 글을 쓰기 위한 수많은 자료들이 없을 것이고, 작년 한해 열심히 마라톤을 연습했고, 이를 바탕으로 올해 그가 뛰게 될 두 개의 큰 마라톤 대회를 상상했다. '마라톤 대회에서 만나자'라는 말조차도 그는 조금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그 말은 그는 이제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나길 바라는 '작가'라는 생각이 이제 확실히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것일까. 그가 시인의 삶이라며 살았던 1년여의 삶과 지금은 아마 많이 다를 것이다. 그때만큼 꾸준히 쓰는 건 사실일테지만, 그가 말한 것처럼 시인으로서 보는 삶(이때 본다는 것은 상투적인게 아니라 현상적인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나는 그런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그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과 소설작가로서 보는 삶은 충분히 다를 것이다. 매정할 지 모르지만, 그가 이제 어떤 글을 쓸지 나는 궁금하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그는 계속 쓸테고, 가끔 마라톤을 할테고, 더욱 가끔 퍼포먼스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지속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그의 글을 읽고, 그가 마라톤에 참가했다는 얘길 듣고, 그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조하면, 그는 분명 더 나아지고 있을테니까. 그리고 문단에 존재하는 '재능'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흥' 하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니까(아니 어쩜 지금도 그럴 수 있을지도). 그의 그런 코웃음 치는 모습이 애초에 재능을 만들 환경이 존재하지 않았던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줄 수 있는지,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누군가들이 있다는 게 그에겐 부담이 되진 않을 것이란 걸 나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런것에 상관없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여전히 "읽Go 듣Go 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덧. 그는 제임스라는 이름을 보고 조금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지난 낭독회 때 나에게 보여준 모습과 똑같았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의 눈빛. 이 사람은 대체 뭔가라고 말하는 느낌. 그리고 그 당황한 마음은 날짜를 쓸 때 2011. 2라고 무의식적으로 쓰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3초간의 기다림 혹은 머뭇거림. 천문학과를 가고 싶었던 그의 청소년기의 마음처럼, 별들을 보고 별자리를 찾아내듯이, 그는 2속에서 1을 발견하고 1월로 다시 고쳐썼다. 나는 알라딘에서 이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한 덧글을 달 때, 인간적인 글을 쓰는 그를 만나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글을 썼었는데, 이 순간이 그런 모습을 자명하게 확인하는 찰나가 아니었을까.


  덧2. 사실 이번 강연회는 아쉬움이 있었다. 먼저 예고치 않게 각자 커피나 맥주 등을 주문해야 하는 시스템이 조금 불쾌했던 게 사실이다. 차라리 이전에 공지라도 있었으면 나았을텐데, 하루종일 커피를 마시고 들어간 상태에서 또 무언가를 사야 하는 그 느낌, 그를 만나기 위해선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상했던 걸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이런 강연회나 작가와의 만남은 '관객과의 대화'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건 참가자들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진행자가 질문자들의 질문 횟수를 제한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많이는 아니지만, 이런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할 때 마다, 관객의 질문 시간이 넉넉했던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언제나 '시간이 부족해서..' 라는 얘길 들어야 했다. 그렇다면 직접적인 내용의 질은 차치하고서라도,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방향의 질문을 하도록 유도해야 했지 않을까(특히, 한 사람이 연속으로 여러 질문을 하도록 놔두는 건 정말 아쉬웠다). 가령 특정한 방향에 대한 질문을 유도해서 참가한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켰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답변보다는, 그 답변과 관련된 여러가지 사항을 아울러 설명하는 작가 특유의 설명 때문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던 것도 사실이다.

  덧3. 그래서 내가 강연회 전 준비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작가가 이번 책 뒤에 쓰신대로 '5+1'의 법칙에 따라 다섯가지 정도 작가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을 먼저 밝히고 이 질문을 해야 하는데, 시간 관계상 직접적으로 질문하겠다. 시는 이러한 형태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소설에 관해서 생각해보면, 작가가 이 글들을 책이란 형태로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즉 여기에 담긴 글을 쓸때가 아니라 책으로 출판하기로 결정했을 때 독자들이 이 책을 받고 어떤 느낌을 받을 지 혹시 예상을 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이 책을 알라딘에 접속해서 구입을 하게 된 이유는 딱 세가지다. 먼저 '김연수'라는 사람이 내 속에서 지배하는 생각, 그리고 <그저 좋은 사람>을 펴냈던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가 내게서 위치하는 무게감, 그리고 이번 책 <우리가 보낸 순간>의 소설 분야에 제일 처음으로 들어간 작품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점이다. 이 책을 사면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 믿을 수 없게 좋아하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너무 들뜨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알라딘에서 이 책을 구입하면 아름다운 액자까지 준다는 말에 19000원 하는 가격에 10% 할인을 받고, 그 가격에 10%의 적립금을 받은 후, 이것만 구입하지 않고 5만원 이상 주문하면 적립금을 2천원 더 준다는 유혹에 언제나 그렇듯이 5만원 정도 장바구니에 담아 주문을 클릭했다.
  하지만 내가 택배를 받은 늦은 밤, 따뜻한 침대에 누워 이 책을 펼쳤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속았다' 라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렇게 실제 작품들의 일부가 인쇄되어 들어가 있을 줄은 몰랐고(이건 사실 크게 상관 없다), 단지 김연수 작가가 쓴 작품소개 조금과 그에 대한 김연수 작가의 '긴' 에세이가 들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작가의 글은 전체 책의 일부를 차지할 뿐이었다(이건 크게 상관있다). 그래서 알라딘에 다시 들어가 이 책 판매 페이지를 아무리 살펴도, 이러한 형태로 만들어 졌다는 직접적인 책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정말 작가 혹은 출판사는 인터넷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인터넷을 통한 소비로 인한 부작용 및 폐해를 독자들이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상상하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그렇지만 나는 작가의 마지막 글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원문 : http://rockermin.egloos.com/546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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