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신경숙 작가님을 실제로 뵙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전율을 가다듬으며 읽어나갔던 구절 구절을 두 분의 생생한 음성과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경외롭게 지켜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알라딘 담당분들께 모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에 어쩌면 한번도 만나지 못 할수도, 한번도 경험을 못해볼 수도 , 한번도, 한번이라도 만날수도,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를 상황속에서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소규모의 극장을 꽉 메워 빙 둘러싸인 독자들 사이에 신경숙 작가님과 신형철 평론가님을 뵙고 유쾌하면서도 엄숙한, 때로는 얼룩덜룩한 영혼을 씻어주는 듯한 따스한 손길을 느낀 것 같아 너무나 좋은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난생 처음 낭독회라는 다소 낯설면서도 생소한 단어 속에 너무나 친밀하고 생생한 감동 속 , 따사로운 햇살에 서서히 익어가는 붉으스름한 감나무의 새초롬한 과실같은 신경숙님의 음성과 책 구절의 어우림을 느껴 볼 기회를 맛보게 되다니!! 정말 즐거운 발걸음으로! 퇴근하자마자 청주발 서울행 티켓을 끊고 근 2년 간 못 만난 친구와 함께 산울림 소극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서울이 아직까지 낯설기만 해서 시간에 대해서도 무개념 일색이었던 저는 30분 정도 친구를 기다리게 하는 실수를 비롯하여 약 20분정도 작가님 낭독회에 지각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부끄럽지만 -_-..그래도 이해해주시리라 믿고 철면피를 깔고 좌석을 자리잡았죠.
관객과 배우와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거리만큼 가까이 얼굴을 뵐 수 있었던 작가님의 단아한 자태를 보면서 연신 작가님의 소소한 행동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종이컵이 두개로 포개진 채로 물을 조금조금씩 음미하시곤 했던 모습, 깨끗하고 깔끔해보이는 파우치와 볼펜, 노트, 작가님의 개나리 빛 신간에 펼쳐져 보일 구절들을 이어줄 텝들과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준 마이크을 손에 쥔 다소 무덤덤한 표정의 작가님의 깨끗한 모습.
책을 들고 읽고 싶어하셔서 마이크가 어색하셨던 작가님, 차분하면서도 살랑이는 실바람을 몰고 오는 듯 검묽은 먹으로 한국화를 청아하게 그리는 듯한 또랑또랑한 목소리, 눈을 감으면 단단하고 안전하게 지켜줄 것만 같은 명서가 업히라며 내게 말하는 것 같고, 상처투성이인 채로 망설이는 정윤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또렷히 쳐다보는 것 같고, 서로의 밥위에 깻잎을 올려주는 따뜻한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저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부분들을 제시하면서 순조로운 진행을 도와주셨던 신형철 평론가님... 목소리도 멋있으시고 박식하시고 유머도 있으시고 상당히 내공이 느껴지셨던 분이셨습니다.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문학적인 도구로 자리잡은 마이크, 어쩌면 책 안의 에밀리가 모두를 연결시켜 준 매개체가 되어 준 것처럼, 마이크도 너도 나도 허물을 벗겨버리듯 친밀하게 만들어 준 고마운 매개체이며 연결체가 되어 준 것 같습니다. 마이크 하나로 큰 웃음을 만들수도 있었네요. (마이크 고정대에 끼워보려고 문학동네 관계자분이 왔다갔다 몇 번을 하셨지만 결국 원하는 높이만큼 제대로 꽂히지 않아 무산되어 작가님이 볼멘소리를 하시기도 했죠^^)
독자들의 낭독회도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목소리도 너무 예쁘고 단아해보이셨던 여자분, 자진해서 낭독을 하고 싶어하셨던 우람한 남자독자 분...겨울 구절을 좋아하셨다는데 떨리는 음성속에서도 신경숙 작가님의 소설에 애정이 듬뿍 느껴졌습니다. 원래 한 분만 하기로 했었는데 ^^ 작가님의 아량이 넓으셔서 남자분도 구절을 읽게 해주셨는데 역시나 따뜻한 분이심을 다시한번 상기시키게 되었어요.
독자의 질문시간에도 작가님의 답변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고3수험생 저리 갈 정도로 열렬히 메모하셨던 분, 군대시절부터 쭈욱 작가님의 책을 애독했던 분, 캐릭터 간 이름을 설정하는 방법, 줄거리에 대한 내용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속에서 열렬하게, 때로는 간단히 한 줄로 요약할 만큼 멋지게 답변해주신 신경숙 작가님, 다시한번 그 분의 팬임을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아니, 자랑스럽다기보다는 그 분과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갈 수 있어서, 그 분의 책을 읽으면서 청춘을 곱씹을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열정없이 그저 살아온 내게 크리스토프의 구원과도 같은 업힘을 받게 해준 신경숙 작가님은 제게 큰 힘을 주셨습니다. 짋어진 짐이 너무나 많다며 한을 토로하기만 하고 눈물만 흘렸던 매 순간의 삶에서...그래도 그 짐을 지탱할 발이 있음에 새 희망을 다시금 잡아봅니다.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현재는 청춘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청춘은 형체없이 흩날리는 벚꽃이 어느새 저버려 봄을 보내버리는 허무함을 동반하는 것처럼 저역시 그 허무함을 느낄 30대를 맞이 할 것이고 지나간 청춘을 생각할 고독을 알아가겠지만 지금의 고난, 지금의 사랑, 지금의 복잡다난함을 피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다시 일어날거라며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전율하고 자리에 일어났습니다.
청주행 막차시간이 조급해져 신경숙 작가님의 사인을 받지 못한게 너무나 서운하고 가슴아팠지만, 그 분을 뵐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음 신간도 기다리겠습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또 언젠가 내 앞에 10년이든 20년이든 언젠가는...
꼭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 사랑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작가님을 위해서 준비된 책이 펼쳐진 모양의 큰 케이크와 독자들 편지의 깜짝 이벤트!도 준비하신 관계자 분의 센스,신간이 나올적마다 초를 꽂고 케익을 준비한다는 작가님의 정보도 얻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