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늦게 부산에 내려와서 쓰는, 첫 글이 되어버렸다. 목요일 저녁은 조용히 보냈고, 금요일에는 서면에서 오랜만에 아이온시티 스타벅스를 들려 커피를 마시고 부산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김연수 작가 낭독회'를 다녀왔다.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대는 거의 세 번 정도 밖에 가보질 못했는데, 내가 다니는 학교에 비해 엄청나게 큰 사이즈에, 엄청나게 압도되어 버렸다. 하긴, 내가 특히 다른 대학은 거의 가보질 않았으니. 제 2도서관 이란 곳을 찾아가야 했는데, 한참을 올라 갔고 중간에 그 학교 학생인듯 한 사람에게 세 번이나 물어봐야 했다. 그리고 학교에 굉장히 큰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 영화관과 옷가게, 그리고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제외한 수많은 카페가 밀집해 있었다. 아마 여기에선 커피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어찌되었든 힘들게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김연수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다. 역시 스크린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 영화배우 느낌이 났다. 낭독회는 정말 김연수 작가가 단편 하나를 다 읽었다. 과연 가능할까 싶었는데, 정말 다 읽었다. 시나리오의 느낌을 내듯이, 작가가 글을 쓸때 상상했던 대사와 간격을 그대로 지키려 노력하며 조명도 조절하고 음악도 틀며 낭독회를 이어 나갔다.

  역시 제일 기대했던 질문 시간에는 기본적인 질문이 오갔고, 작가의 말처럼 질문과 한발을 걸친 듯한 답변이 길어져, 시간 관계상 질문을 많이 하질 못했다. 나도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 영문과를 나왔는데 글을 쓴다는 게 쉽게 연관이 잘 되지 않는데, 작가에게 있어 번역이라는 역할 외에 영어가 글 쓰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내가 볼 때 이번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서 첫 작품인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가 한국어와 영어의 접목을 약간 연관시키려는 시도로 보이는데 내가 오버한 것인지. 내가 기대하기에, 김연수 작가의 작품에서는 한국어에 영어적 요소 혹은 연관성을 가미시키거나(용어가 아니라 언어적 측면에서), 아니면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글을 기대하는데 그것에 관한 생각은 어떤지, 였다. 말로 풀어쓰니 질문이 명쾌하지 않은데, 어찌되었든 이번 낭독회에서는 이런 질문하기가 좀 힘든 분위기여서 난 뒷줄에 앉아 작가의 답변만 유심히 들었다.

  낭독회가 끝나고 사인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난 내 이름을 한글로 '제임스'라고 적었다. 혹시나 이글루를 하는 김연수씨가 날 알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내 차례가 되어서 이름을 보더니, 이름이 제임스에요? 라는 평범한 말이 올 뿐이었다. 난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는데, 사인을 다 하고 이상하게 날 뚫어지게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그 전부터 독자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것 같긴 했는데,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내가 사인받고 돌아오는데도 날 계속 쳐다보셨다는. 궁금하셨을까.
 

 

  그리고 나 스스로 정리한 낭독회 내용들. 

 김연수 작가는 다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웃으면서 말하긴 했지만 질보다는 양에 치우치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무조건 일 년에 한 권은 내는 작가고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하길, 작가의 위치가 굉장히 협소해졌다고 한다. 예전만큼의 영향력도 없어 작가가 사회적 발언을 해도 크게 공감을 일으킨다거나 사회적 파장이 일지 않는단다. 대신에 그 몫을 요즘은 연예인이 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인지 작가 자신은 사회적 발언이나 사회를 바꾸기 위한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자신은 그런 태도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작가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 모두를 알고 있을 때 그것에 대해 작가가 쓰는 것이지 아직 끝나지도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건 작가로서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독자가 자신은 <청춘의 문장들>처럼 작가의 산문을 더 좋아하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소설가로서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이제 김연수 작가 자신은 그런 말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단다. 이 때 정말 웃겼는데, 어느 날 한 평론가가 자신이 쓴 산문들, <청춘의 문장들>이나 <여행할 권리>같은 것을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고 칭찬하더란다. 근데 그 평론가가 주로 소설을 비평하는 사람이라서 절망했다고. 그러면서 그 비평가가 하는 말이, 소설을 산문처럼 써보지 않겠냐고, 그런 말도 들었는데 이제 더이상 흔들릴 게 없다고.

  또한 자신은 단편같은 것을 쓸 때 중간에 바뀌는 내용이 있다거나 퇴고할 경우에 쓴 것을 손 보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새로 다 쓴단다. 그렇게 10번 정도 쓰는 게 소설인데, 2 주일에 단편 하나 정도를 쓴다고 했다. 근데 그렇게 열심히 쓰고 나서 메일을 확인해보면, 잡지사나 이런 데서 예전에 청탁한 원고 독촉 메일이 와 있다고 한다. 지금은 그게 '씨네21'에서 연재하는 것이고(이것도 격주로 연재되는데, 2 주 라는 게 굉장히 빨리 돌아온단다). 여튼 그렇게 온 심혈을 기울여 소설을 쓰고 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쓰는 게 그런 산문 같은 것들인데,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서 책으로 나오는 것인데 그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니 얼마나 힘이 빠질까. 이 때 굉장히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가령, 어떤 밴드가 정규음반은 평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피쳐링해준 곡이나, EP 형식으로 음반을 낸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의 기분일라까.

  실제로 모든 내용들이 있는 그대로이진 않을테지만, 그래도 작가의 진심이 느껴지긴 했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이고. 김연수 작가의 미투데이 글을 보니 내가 갔던 해운대가 아닌 광안리로 갔던 것 같다. 부산에서 죽도록 살고 싶었다고 썼는데, 그 이유가 신세계 센텀시티 때문이라고, 정말 신세계였다는데, 어떤 걸 사셨으려나.

  사투리가 배어있는 말투로 조곤조곤 얘기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고 작가란 이런 것인가(가령 요즘 좋았던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고문의 역사 같은 책을 보고 있는데 재미있다며),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대답도 있었다. 사실, 예전엔 몰랐는데 최근 들어 약간이나마 하루키와 비슷하지 않나(내용적인 것을 떠나, 소재랄까 아니면 작가의 행동이랄까 관심이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본인은 확실히 부인하던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이런 얘길 혹시나 김연수 작가님이 보면 화가 날지 모르겠지만, 난 그 분이 음악을 많이 듣는다는 게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혹은 책을 추천해주는 것도 좋다. 난 그가 문학관련 과를 나온 것은 아니지만, 영어과를 다닌 것을 살려 번역을 한다거나 번역되지 않은 책들을 읽고 추천해주는 것도 좋다. 무언가 같은 시대를 비슷한 것을 공유하며 지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어서랄까. 나에게 있어 아직 그의 최고 작품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다. 그의 다작중에 (내 견해에서) 이것을 뛰어넘는 작품을 꼭 다시 읽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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