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참 좋은 언니(친언니 아님) 하나는 이승환의 '당부'를 너무 좋아해서, 음악에 쓰인 악기 '얼후'를 직접 배우기까지 했다.  

울림통에 줄 두 개 달려 있는데 소리가 어찌나 큰지, 임신 중에는 태아가 놀랄까 봐 켜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2006년, '여자12악방'이 내한했을 때 연주회를 같이 가자고 했다. 흔쾌히 수락을 하고 언니의 신랑까지 해서 표를 세 장예매했었다. 그런데 당시 공연 일주일 쯤 남은 때에, 집에서 고약한 일이 생겨버렸다. 도저히 공연을 갈 수가 없어서 표를 취소해야 했다. 죽도록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라도 궁금했었고, 관심 가졌고, 게다가 예매까지 했었는데 가지 못했던 그 '여자12악방'의 공연을, 알라딘을 통해서 다녀올 수 있었다. 바로 어저께. 

초대권인지라 아무래도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B석 자리였는데, 표에는 3층이라고 써 있었지만 실제로 올라가 보니 4층이었다. 

뮤지컬처럼 얼굴이 궁금했던 게 아니니 소리만 잘 들리면 된다고, 계단식 좌석이라 무대도 잘 보인다고 좋아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무대 천장이 스크린을 가려서 제목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게 상당히 아쉽기는 했다.  

(사진출처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10/08/200910080247.asp) 

여자 12 악방은 중국의 전통 악기(꼭 중국에서 유래한 악기는 아닐지라도)를 연주하는 12명의 걸 그룹이다. 처음 결성된 게 2001년도이니 나이가 꽤 되었겠다고 짐작을 했다. 언뜻 스크린에 비쳐지는 얼굴들도 좀 노숙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세대교체를 계속해서 평균연령은 23~24세라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과한 화장의 탓인가? (ㅡㅡ;;) 

암튼, 먼 무대에서 바라보기에 그녀들의 실루엣은 죽이게 섹시했다는 거! 

처음에 입고 나온 노란색 의상이 참 예뻤다.  

저렇게 사진용 포즈보다는 연주할 때의 포스가 더 훌륭했다. 당연하지만. 

막이 오르자마자 바로 연주를 시작했는데, 두 곡, 세 번째 곡 뒤면 인사를 할까 싶었지만,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니까 오프닝 멘트도 없고, 중간 인사도 없고, 멤버 소개도 없고... 그냥 연주만 한다. 그게 좀 당혹스러웠다. 

한국인 통역이 붙어서 짤막한 인사라도 해줄줄 알았기 때문이다. 흔히들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정도 말은 하지 않던가. 그런데 어떻게 단 한마디도 안 할 수 있을까? 괜히 심퉁이 나버리면서 너무 오만한 거 아냐? 뭐 이런 생각도 들었다는 이야기....;;;; 

중간에 한국 퓨전국악그룹인 '소리아'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는데 첫 곡이 영어곡이라 우리나라 사람인 줄 몰랐다가, 우리 말로 인사하는 것 듣고 무척 반가웠다. 그 다음엔 아마도 12악방이 데리고 온 중국 그룹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약 20분 간의 휴식을 마친 그네들이 다시 나왔을 땐 빨간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치파오'를 개량한 듯한 느낌의 옷들이었다. 그래도 난 노랑 옷이 더 예쁘더라.  

음성 소개가 없고, 내 자리에선 스크린도 보이지 않으니, 음악이 바뀌지만 그 음악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셈이다. 그러니 온전히 음악만 감상하게 되는 게 맞긴 한데, 3년 전에 놓쳤던 그 공연에 대한 아쉬움을 달랜다고 하기엔 좀 부족한 느낌. 아마 3년 전에 보았더라도 비슷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노래가 나오면 반가웠다. 왕의 남자 ost 중 이선희가 부른 '인연'이라든가, 타이타닉 주제곡, 겨울연가 주제곡 등이 그것들이다. 우리나라 전통 음악도 연주해 주었다면 좀 더 반응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아리랑' 같은 곡 말이다.   
 

(제일 환상은 얼후 연주가 들어간 이승환의 '당부'나 '이젠 쉼' 같은 곡이 나오는 거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꿈!)  

 

곡에 따라서 멤버가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 객원 멤버가 잠깐 나오나 싶었는데 실제 멤버란다. 비상시를 대비해서 추가한 인원이 정식 공연 멤버가 되었다고 한다.  (사진에도 13명이 찍혔다.)

얼후를 연주하는 맨 앞줄의 다섯 명의 멤버는 모두 얼후를 직접 들고 연주했다. 허리나 어깨에 끈을 매달았을까 싶었는데 아니다. 그냥 들고 한다. 아주 무거운 악기는 아니지만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비파를 연주하는 두 사람만 앉아서 연주한다. 개인적으로는 비파 연주하는 모습이 제일 예뻤다. 구정(고쟁)은 우리나라 가야금 같은 악기인데 현이 무려 21개란다. 우리 가야금도 그렇게 개량한 녀석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암튼, 그 구정을 연주하는 이가 손을 위로 올렸다가 내릴 때 너무 오버를 하는 거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박정현이 노래 부를 때 오른 손으로 파도타기 하는 그런 느낌? 리듬을 타는 거겠지만, 그 손동작이 너무 예쁜 척을 해서 좀 웃겼다. ^^ 

세종문화회관은 대관도 까다롭고, 이름값 하느라 늘 좌석도 비싼 편이지만, 그 시설에 만족해본 적이 없다. 소리의 울림은 예술의 전당이나 백암아트홀을 따라가지 못하고 좌석의 그 딱딱함과 좁은 간격은 2시간 더 버티면 내가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끙끙 소리가 난다. 머리가 의자에 닿는 부분은 쿠션 없이 딱딱해서 혹여 졸기라도 한다면 아파서 깰 수 있는 수준! vip좌석은 좀 낫겠지만, 예전에 내가 R석 좌석에 앉았을 때도 불편함을 느꼈으니 전반적으로 시설이 후지다고 하겠다.  

공연은 중간 휴식 없이 1시간 50분 동안 한다고 했지만, 실제 공연 시간은 그에 못 미쳐서 좀 일찍 끝났다. '앵콜' 요청이 있었다면 예정된 시간을 채웠겠지만 앵콜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앵콜 외칠 마음은 별로....;;;; 만약 한국 관객을 향한 귀염성 멘트나 소박한 인사라도 있었다면 좀 달랐을지도. 화요일 공연의 반응은 어땠을라나 문득 궁금해지기도.

나로서는 순수 국악보다는 이런 쪽의 퓨전 음악이 더 귀에 감기고 마음도 더 쏠리는 편이긴 하다. (물론 '가사'가 있는 곡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기획도 우수하고 발상도 신선하긴 하지만, 멤버 교체를 통해 나이를 23~24세로 맞춘다고 하니 꼭 아이돌 그룹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렸다. (정보를 미리 알고서 연주를 들은 게 아니니, 그 때문에 연주가 성에 안 찬 것은 아니다.)

모처럼 음악회를 가서 좋았고,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또 좋았다. 죽도록 피곤했다는 극악 컨디션만 빼고는 다 좋았다. 기회를 준 알라딘에게도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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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9557 2009-10-1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을 정말 잘 써 주셨네요. 난 금요일 8시 고양에서 봤는데 3층이지만 정면의 자리에서 너무 잘 보고 들었어요. 공연가기 전 정보 좀 얻으려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냥 가서 팜플렛을 구입 해야지 했죠. 3000원에 구입 했는데 곧바로 시작하느라 내용도 못 읽고 듣게 되었어요. 첨엔 좀 황당했어요. 소리는 좋은데 내용을 잘 모르니까 좀 답답하더라구요. 무슨 악기인지 궁금했는데 이제 여기서 다 이해가 됐어요. 요기 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좀 나더라구요. 저 악기 이름이 뭐야? 저 사람은 중국인? 어머 한국인이네 ... 그래요 좀 아쉬운것은 조금만 소개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생각보다 재미 있는 공연이었구 오랫만에 귀 청소 깔끔하게 해서 이제부턴 좋은 소리 맑은 소리가 잘 들릴 것 입니다. 알라딘 아자아자~~~~

작가와의만남 2009-10-22 01:05   좋아요 0 | URL
흐흣.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좋은 공연 기회 많이 마련하겠습니다!

이혜라 2009-10-1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담당자님의 배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12명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진한 전달은 같은 동양인이 느낄 수 있는 정감 때문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시절에서 화려한 조명과 함께 보냈던 2시간의 공연... 감사합니다 ^^*

작가와의만남 2009-10-22 01:06   좋아요 0 | URL
똥벼락님. 즐겁게 잘 보셨군요~ ^-^
12명의 하모니라니. 저도 궁금해지네요. 다음에도 문화초대석 공연 많이 신청해주세요.

작가와의만남 2009-10-22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종문화회관 공연들이 좀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지요. 저도 이전에 뮤지컬을 보면서, 꽤 좋은 자리에서 봤는데도 불편했던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접근성이 좋고, 좋은 공연들을 많이 올려주니 좋지요. ^-^

여자12악방 공연에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아쉬움이 남는 회포이긴 했을테지만, 그래도 저희가 좋은 기억 드린 건 맞는 거죠? 앞으로도 문화초대석에서 자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