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 체크 못한 서노기, 박민규를 보다!
(소설가 박민규와 함께 한 시간들...)


서둘러 출발했는데 그만 홍대에서 헤매고 말았다.
내가 아는 곳이 아니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쯤에 있겠거니 하고 지레 짐작만 하고 찾아간 곳,
그곳이 아니었다.
클럽 빵이 있는 골목을 헤매다 다시 찾아갔지만
이리 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끝내 안되겠다 싶어서 친구에게 구원을 요청,
인터넷으로 위치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앗 지나온 길에 이리 카페가 있었다.
무과수마트 지하였다니... ㅋㅋ
그렇게 20분을 지각하고 말았다.
참석자 명단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불참자 명단에 오르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하여 서둘러 이렇게 글을 쓴다.
저 참석했어요~
다음 이벤트에 불이익이 없도록 해주세요!!!
ㅋㅋ


조금 늦게 도착한 카페에서는 이미 낭송의 시간이 진행되고 있었다.
낭독자 곁에 고개를 숙이고 쪼그려앉은 분이
박민규씨구나 생각했다.
검고 동그란 선그라스를 쓰고 있었다.
검은 수염과 검은 머리
청바지에 빨간 두 줄 체크무늬의 긴팔 셔츠를 입고 계셨다.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시니컬한 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말처럼 마흔두 살의 사내는 둥글었다.
더디고 느린 말투.
그 때문에 카페를 찾느라 뒤뚱거리며 함께 따라온 친구는
낭송의 시간에 조금 졸았다고 한다.
친구가 졸았는지 전혀 몰랐던 나는 아무 상관하지 않았다.
친구가 뒤뚱거릴 만큼 배가 나와서 아기를 갖고 있어서
덕분에 뒤늦은 방문에도 등받이 의자에 앉을 수 있었으니
친구가 고마울 뿐이었다.

작가와의 대화는 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다.
미리 질문을 가져오라는 숙제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질문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웠다.
더구나 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지 못해서
조금 부끄러웠다. ㅎㅎ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카스테라" 두 권을 들고 갔는데도   

새책이 없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사인도 받지 못했다. ㅋ
집이 멀어서 일찍 나와야했다는 것도 핑계에 불과하지 않겠지. ㅎㅎ


마흔 두 살의 둥근 부드러움 때문일까,
박민규씨는 아주 친절했다.
더디고 느린 말투였지만 또박또박 그리고 길게 답변해주었다.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였을까?

질문의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아
마구잡이로 메모한 내용을 옮겨 적는다^^;;

# 박민규식의 유머는 어디서 나오는가?

- 평소에는 웃지 않습니다. 농담을 좋아하지 않아요.
어린 시절 과거 힘들었던 일들이 웃음의 원천이 아닐까요?
농담하고 그렇지 않으면 집안에 웃을 일이 없다고 하는 것처럼.

웃음으로 넘기지 않으면 현실은 너무 슬플 거에요.
그런식으로 살아오면서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바람이 있다면 한국이 개그나 오락 프로그램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 자신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가?

- 저도 똑같은 남자, 어쩌면 과거에 상처를 주던 남자였겠지요.
출판사와 6년전 계약한 건데, 처음에는 써지지 않았어요.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나이'.
쓸데없이 마흔 둘이 되었습니다.
뒤늦게 철이 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저도 모르게 '꼰대'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쁘다고 생각하니까.

저는 아내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일상속에서 아주 자주합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변화를 준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건 부모님.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단 한번도 감사하다는 말을 못했지요.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도 마찬가지.
외아들로서 사랑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그런지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언제 삶이 끝날지 모르니까.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

외모, 돈
돈이면 안되는 것 없고, 예쁘면 용서되고.
그건 당대의 진리입니다.

저는 그런 만능주의를 공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부정하지는 말자는 거지요.
사람은 만가지라고 하지만
만가지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습니다.
냉전이데올로기, 남아선호사상이 이제는 우스워지지 않았습니까?
외모지상주의도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무엇이든 인간을 억압하는 것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시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걱정마세요. 스스로의 보편성을 각자의 삶에서 획득하시길 바랍니다."

# (기억나지 않는 질문-.-;;)

- 소설은 대안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다만 소설은 '말랑말랑한 정서'예요.
그 정서가 철학이 되고, 정신이 되겠지요.
저는 다만 '정서'를 만들 뿐입니다.

"스스로의 팬이 되세요."

내가 쓴 글이 뭔가?
그저 정서를 만들고 싶었을 뿐.

다른 작품에 비해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로맨스를 쓸 인간이 아니거든요.
조각에는 음각과 양각이 있습니다.
세상은 양각이었었습니다.
그래서 음각으로 표현했습니다.
주변인물을 통해 주인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 전업작가로서의 불안함은 없는가?

- 스스로의 성취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글을 쓰고 싶어서 쓴 것.
쓸 수 있는 문체를 여러가지 갖고 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요. 계속.
멈춰서서 어디지? 라고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겁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거라고 믿으니까요.
오래전 경험을 하나 들려드린다면,
학창시절 교련시간이나 조회시간에 늘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교실에 남아있다가 늘 선생님께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또 맞았지요.
그렇게 두 달이 흘렀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타협을 요구해오셨습니다.
"안 보이는 데 가 있어라."
학교 뒤에 산이 있었거든요. 뒷산에서 상을 받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들보다 내가 더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경험은 작가로서 직업은 힘들지만 구르고 굴러서 상처를 입게 되고, 그 상처로 인해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알게 되고 그렇게 열심히 쓰면 어느 날 세상이 타협해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힘들지만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아쉬운 점은 문학이 수출되지 않고, 수입만 한다는 것.
어쩌면 농민보다 못할 지 모르죠.
처음 상을 탔을 때 국외작가들의 작품들과 놓여진 제 작품이
마치 명품관의 중소기업우수작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 작가지망생입니다. 욕심없이 글을 쓴다해도 인정받고 싶어져요.

- "그 사람 심사할 줄 모르네"하고 생각하세요.
작가지망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표독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가르치려고 합니다. 수동적이게 만들죠.
언젠가는 둥글어지게 됩니다. 마흔 두 살이 되거든요.
그때 되도록 덜 깎이게 했으면 합니다.

"하고싶어, 쓰고싶어 견딜 수 없는 에너지"로 글을 쓰세요.

# 작가지망생, 문창과를 졸업하고 내 얘기를 다 쓰고 보니 쓸 게 없습니다. 소설의 글감은 어디서 찾으시나요?

- 가장 안 좋은 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험한 이야기는 쓰지 않는 편입니다.
개인의 경험이 중요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는 한국을 대상으로 글을 쓰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구인을 대상으로 써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죠.

어떤 걸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그건 이 세계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주의 먼지 알갱이에 불과합니다.
이 세계는 '이야기 덩어리'죠.

성경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다고 하잖아요.
말씀이 이야기를 말하는 거죠.

카스테라를 쓸 때,
가까운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썼습니다.
한 사람을 앉혀 놓고 글을 쓰면 믿음이 갑니다.
그 한 사람은 어느 정도의 그 사람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테니까요.


# 고2의 작가지망생, 슬럼프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30대 중반이 넘어서 소설을 쓰고 싶어서 소설을 썼습니다.
등단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도 한국사회가 면허증 사회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연료가 된 이야기들이 솟구치게 마련입니다.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내부에 석유가 생기면 글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
....

"저는 괜찮은데...."

참 따뜻한 말이었다.
시간은 9시 30분을 향하고 있었다.
7시 30분부터 시작되었을 텐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들었다.
가게 문을 닫아야해서 어쩔 수 없이 이야기는 중단되었다.
갑작스러워서 아쉬웠다.

그리고 사인회를 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배송중이라서 새로 살 수 없었다.
솔직히 새로 살 수 있는 돈이 없었다. ㅋㅋ
작가를 만났는데 사인을 받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다니
정말 억울하고 아쉬웠다. ㅋㅋ
또 기회가 닿겠지.
다음에 만날 때는 나도 '선물'을 챙겨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이야기로 선물을 준 박민규 작가에게 감사하다.
그의 열정에 감사하고, 그의 건강에 감사한다.
고마워요,
몰라몰라,

아 그런데 왜그럴까?
처음봤는데 낯익다.
어디서 본 것 같다.
공연을 보러 다닐 때 봤나?
ㅋㅋ
스물 다섯 살 때, 두 살 많은 언니와 어울려
1995년부터 97년까지 홍대 클럽에서 노래를 들으러 다녔는데...
신윤철과 유앤미블루를 좋아했는데
블루데빌도 자주 갔는데..... 혹시 그때? ㅋㅋㅋ
어찌되었든 만나서 반갑다.
언니에게 자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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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 2009-08-2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깔끔하시게 정리하셨네요~!!! 와닿는 말들을 많이 하셔서 가슴에 담고싶었는데..고맙습니다~
저도 카페를 못찾아서 헤매고 다니다가 마지막 낭송때 들어갔지뭐에용...>.<
싸인도 받고, 악수도 해주시구..ㅎㅎ 진행하셨던 분께서 읽어주신 어떤분의 서평도
너무 좋았구요.^^ 코드가 통한 사람들과의 만남~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