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강연이 있었나본데, 난 신촌토즈비즈니스센타에서 고미숙 선생님을 뵀다. 지난 강연에 미리 책을 읽고온 사람이 없어서 최악의 상황이였다는 말을 전하며 시작됐고, 이곳의 상황도 미리 책을 읽고온 사람이 적기는 마찬가지였다. <임꺽정>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좀 사변적인 내용으로 강연이 진행됐고 제법 활발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고미숙 선생님의 관점은 다소 독특했다. 유심론과 유물론이라는 상반된 철학이 몸을 매개로, 주체를 매개로 결합되었다는 인상이다. 이건 아마도 내가 읽지 못한 책들에 그 힌트들이 들어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몸은 앎(지식)의 거처이며 앎이 거하는 몸은 삶이 된다. 좋은 삶이 된다. 언뜻 상식적 사고에는 배리된다. 몸에 앎이 거하더라도 몸은 몸에 앎에 또다른 장소에 있을 것 같다. 고미숙 선생님은 앎이 두뇌로 가지않고 경락과 핏줄을 통해 '세포'로 간다고 한다. 서양철학과 한국철학의 결합이라는 눈치는 있지만 그쪽에 지식이 없는 나로는 궁금할 뿐이다. 

언표의 배치와 욕망의 배치라는 말도 등장한다. "배치"는 최근 읽고 있는 책에 등장하여 생소한 문맥을 제공했다. 그런데, 고미숙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배치가 어떻게 문맥에서 작동하는가를 어렴풋하게 이해했다. 배치를 통해 의미가 결정된다. 넓혀보면 배치를 통해 사회적 역사적 의미도 결정된다. 반대로 배치를 역전시키면 의미도 역전되며 사회적 역사적 역학 동학 관계도 갱신된다. 배치의 중요성이다. 

 <임꺽정>에 대한 내용은 사실 기억나는 내용이 별반 없다. 워낙 고유명사가 많이 등장해 책을 읽지도 않은 나로서는 청석동?과 7두령이 전부다. 또한 문학은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는 어떤 분이 말씀도 기억난다. 문학 곧 이야기인데, 이야기는 전승도 되어야 하지만 글과 책이 존재하는 현대로서는 이야기 곧 문학이 정신과 마음에 순간 각인시키는 인상에의 노출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한다.  

추측건데 고미숙의 <임꺽정>은 임꺽정을 민중의 영웅, 민중을 호령하는 호민관이 아닌 다른 각도로 조명한 듯 하다. 최근의 사회상이라는 컨텍스트에서 새롭게 해석된 임꺽정은 WHITE HANDS다. 백수다. 직업을 가지지 않고 일을 하지 않고 혁명에도 떠밀려 들어간 존재로 동일시된다. 백수가 사회변동의 주체가 되는 것은 조선조만의 일은 아니다. 요즘은 88만원새라는 차고도 넘치는 용어가 일찌기 등장했던 386세대를 대체헸다. 현재의 88만원세대는 조선조의 임꺽정이라는 등식을 세워본다. 그런 현재적 해석의 맥락에서 임꺽정은 2009년에 다시 살아났다. 80년대 벽초 홍명희의 불세출의 명작 <임꺽정>10권이 있었다면 2009년에는 고미숙의 <임꺽정, 길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거의 향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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