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마지막날, 1년의 반을 마무리하는 날 신촌의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서 19시 30분 김원중 선생님의 사마천의 <사기>에서 통찰력을 구하시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사마천의 장인정신을 형상화한 장면인 백발의 백색옷을 입은 노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붓을 잡고 종이를 응시하는 그림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은 시간관계상 형가,이사,한신 얘기로 압축하기로 정하셨습니다. 

天道是非 ?  권선징악?  世道,  人道.  안회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28세로 요절했고, 도척은 사람의 간을 회쳐 먹는 사악한 자였으나 천수를 누린 대비를 얘기하셨습니다.  사마천은 요임금의 선양 장면을 중시했습니다. 오태백의 양보, 백이와 숙제의 왕위 양보도 있었습니다. 제위(권력)를 두고 양보하지 않는 현실을 얘기하며 하늘의 도가 옳을 떄도 있고 그를 때도 있다는 천도시비의 뜻을 풀이하셨습니다. 

 

이연걸이 출연한 <영웅>에서 암살 결행 직전의 형가荊軻(이연걸 분)와 진시황의 독대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형가의 노래인 ``풍소소혜역수한  장사일거허불부환`` 을 제시하셨습니다. 장예모 감독은 역사 장면과는 다른 연출로 팍스 차이나를 보여주려는 연출 의도를 가졌습니다. 연나라 태자 단의 형가에 대한 함양 궁궐 잠입 암실 지시는 무모한 생각이었고 결국 연나라를 파멸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는 어떤 일을 할 때 하나의 선택 문제가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예로 사마천이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당한 사실이 있습니다. 한순간의 판단미스가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전국시대 지도를 보여주십니다. 진,제,조의 3강국,  조,위,한의 약소국, 중간세력인 연의 7국만 살아남았습니다. 주나라는 50국을 분봉했었습니다. 진나라가 천하통일한 이유(척박한 땅에도 불구하고 동방으로 진출하여 13년만에 육국을 통일한 것)는 2번에 걸친 대개혁입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전통이 강하면 강할수록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초나라는 도가 계통이 발달했고 제나라는 국내 영토인 옛 노나라 곡부 출신의 공자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개혁은 진 孝公 시절의 상앙(상군)의 시도입니다. 그는 기존의 법을 다 바꾸라는 변법을 건의했습니다. 처음에는 효공이 이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기득권 세력을 무서워했기 때문이고 백성들도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즉 법이 신뢰를 획득하기 전의 단계였기 때문이죠. 교착상태의 타개책으로 移木之信의 방책을 씁니다. 나무를 옮기면 50금을 주겠다고 공고했고 실제로 이를 옮긴 자에게 포상을 하였습니다. 효공과 상앙은 사흘 밤낮을 얘기 나눌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법=원칙>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상앙은 주위에 적을 많이 두었고, 절대권력자 효공이 죽자 상앙은 적들에게 쫓기다가 국경에서 자신이 만든 법에 따라 신분증을 요구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상앙의 개혁은 진나라의 기반을 조성한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두번째 개혁은 李斯의 시도입니다. 이사는 초나라의 낮은 벼슬아치 출신입니다. 어느 날 그는 두 마리의 쥐를 본 뒤 생각합니다. 먼저 본 쥐는 이사가 관청의 곡식창고에 들어가도 본 체도 안 하고 쌀을 먹고 있었는데, 다음에 본 쥐는 이사가 하수도를 지나가는데 사람이 먹다 버린 밥을 먹던 쥐가 그를 보고 도망갔습니다. 이사는 이를 보고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주는 이 없어 뜻을 펼칠 수 없는 초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게 됩니다. 진나라는 개혁하여 자기 날개를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시황 주변의 토착세력인 儒生들에 비하면 그는 客에 불과했습니다. 유생들은 진시황과 이사의 독대를 못마땅해 하고 간첩이라고 헐뜯었습니다. 진목공이 5명의 인재를 받아들였듯이 진시황도 이사를 받아들이게 되고 분서갱유를 단행합니다.  

이사가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하여 천하통일을 합니다. 그리고 단시간 내에 또다른 개혁정책을 실시합니다. (1) 화폐통일(60센티미터 화폐도 있을 정도로 화폐 종류와 크기가 다른 상황에서 이사는 9센티의 포전, 4.3센티의 환전보다도 작은 2센티의 화폐로 통일합니다.)   (2) 도량형 통일  (3) 도로 건설 (4) 군현제 실시 등입니다.  

연회 때 자기 집 앞에 수레가 너무 많아 이사는 몰락의 전조 같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이사는 생각이 깊고 많은 사람이었지만 결국 권력자인 자신에게 사람들이 몰려 평가해주자 그 맛을 알게 됩니다. 이사는 客으로 결코 主人이 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는데 말이죠. 적절한 타이밍에 떠나가지 못했습니다. 진시황의 27년간 권좌에 있다가 49세로 객사하자 이사는 조고와 호해의 유서위조에 가담합니다. 그 이유는 조고의 압력이 있기도 했지만 이사가 몽염과 사이가 나빴기 때문입니다. 蒙焰은 부소와 함께 만리장성을 건설하였는데 장자인 부소가 황제가 되면 자신의 권세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不遠不近 즉 권력자에게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사는 不近을 지키지 않아 유서위조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므로 조고에 의해 어떤 죄가 뒤집어 씌워져 거열형에 처해졌습니다. 결국은 처세의 문제입니다. 신호등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멈출 때, 기다릴 때, 나아갈 때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老馬之智 즉 위기에 처한 관중을 늙은 말이 구해준 고사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오히려 다른 동물보다 환경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취약한 점이 있습니다. 객의 입장에서 주인 행세 해보겠다는 것은 기회주의자의 행태로서 安分之足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及時勿怠 즉 때에 닥치면 꾸물거리지 마라는 경구도 새겨야 합니다. 이는 결단력을 강조한 말입니다. 

권력은 감출수록 강하고 들어내면(남용) 망합니다. 이것이 민심입니다. 권력이 수면 아래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경계하나 수면 위로 오르면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승이 비록 노동하던 자였지만 왕이 된 것은 농민들이 호응했기 때문입니다. 

韓信은 빨래하는 어미의 밥을 얻어먹고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간 초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항우진영에서 건너왔기 때문에 유방은 간첩이라고 의심하여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하는 떠나는 한신을 쫓아 유방에게 그의 등용을 청하였고 마침내 한신은 대장군이 되어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나 多多益善의 고사에서 보듯 한신은 교만하여 유방의 눈밖에 납니다. 한고조의 아들이 23명이나 되나 제나라의 봉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과욕을 부리다가 화를 자초합니다. 정권 잡은 후에는 권력투쟁이 뒤따르므로 봉읍을 사양한 소하와 은둔을 선택한 장량의 예를 한신은 깨우쳐 보아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고 모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결국 몰락합니다. 

교훈 (1) 절대권력자랑 맞먹으려고 한 것이 문제입니다. 한비는 역린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2) 한 사람에게는 꼭 인정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좋아하고 인정하는 삶을 만나고 이들을 꾸준히 관리하면 성공합니다. (3) 협력하고 믿고 겸손해야 합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야심을 품은 것은 패착입니다.  

도주공 범려의 고사에서 *부자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월왕 구천의 천하 절반을 주겠다는 제의를 사양하고 제나라로 건너가 장사를 시작하여 거부가 됩니다. 이때 세 아들 중 둘째가 살인죄를 저질러서 초나라에서 옥살이를 합니다. 그는 초나라의 강직한 신하인 莊生에게 석방 탄원 뇌물로 만금을 막내의 손에 들려 보내고자 하나 부인으 반대로 첫째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돈을 주고는 바로 되돌아오라고 얘기하였으나 첫째는 돈 준 후 초나라에 머물다가 사면령 예정 얘기를 듣고 장생을 찾아가 돈을 회수합니다. 그러나 장생은 초왕을 찾아가 둘째를 사면령 대상에 서 제외할 것을 진언하여 둘째는 죽고 맙니다.  고생하여 자란 첫째가 돈이 아까워 결국 둘째를 죽게 만들었는데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자란 막내를 보냈더라면 살렸을 것이라고 범려는 말합니다.  

노자는 양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사마천도 양보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당시의 주류는 법가, 병가였습니다.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이 숨긴다``고 제후들을 15년간 쫓아다닌 공자에게 충고하기도 합니다. 해체하고 재구성할 것이 요구됩니다. 로고스 중심을 거부한 특유의 모순어법입니다. 결국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노자,장자, 범려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사람은 끝이 좋아야 함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는 성취를 추구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안분으로 가야 합니다. 老慾을 부리면 판단이 흐려져 패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경영을 해야 합니다. 치욕을 견뎌야 합니다. 살면서 힘든 고비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게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길러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인생을 잘 살고 못 살고는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새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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