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여러번 갈아 타고 목동으로 향했다. 멀다고 하면 먼 거리지만 사십대에 들어서야 나의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걸 생각하면 거리와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맨 앞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만 강연 후기는 용기만으로는 글솜씨를 메울 수가 없어 이이화 선생님의 귀한 말씀 중에서 개인적으로 깊이 와 닿았던 몇 말씀만 올리고자 한다.
이이화 선생님께서는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과 이해를 목표로 글을 쓰신다고 하셨
다. '아~ 그래서 이긴자만의 역사가 아닌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시는 구나' 라는 궁금중
이 풀린다. 더불어 사는 것, 미래의 시대는 인권의 시대라는 말씀과도 일치하는 내용이였
다.
인권의 문제는 종교,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정당성을 고민해야 하고 국가의 문제를 넘어서 세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권의 문제를 희망적으로 보셨는데, 옛날 신체와 관계된, 신분에 관계된, 형벌을 받는 것의 변화에서 그 중 몇가지 예를 들
어 귀족이 없어지고, 호주제가 폐지되어 가족제도로 바뀐 것, 일부일처제, 여성의 의복의 변화 (가슴을 조여던 부분이 끈으
로 대체되는 일..) 등을 말씀하셨다. 뒤안길을 봐야 하고 더 좋도록 노력해야 한다 라는 말씀도 생각난다.
새로 나온 오만원권을 서두로 그동안 우리 나라의 화폐에 실린 여러 인물에 대한 기준을 쭈욱 말씀 하셨는데, 이제는 인물의
평가기준도 사회의 공헌이나 사회의 개혁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광활한 영역을 넓혔던 광개토대왕, 신분을 극
복 하고 과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장영실, 여성인권에 도전장을 던진 황진이, 뛰어난 시를 지은 허난설헌 등) 지나온 역사
와 현재를 바라볼 때도 당연시 하는 나의 시각과 일방적으로 받아들 이는 수동적인 태도, 오늘날 변화의 흐름에 주체적으로
따라 가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였다.
선생님께서는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새롭게 다가가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영토 분쟁이 있는 지역은 자원이
라는 엄청난 경제 논리가 깔려있었다. 고구려사는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걸려있는 중요한 일 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
이였다. 역사자료 논증은 상식의 흐름에, 역사의 상상력은 역사의 법칙안에서, 역사의 접근방법은 생활사, 민중사, 문화사로
다가 서야 한다는 것이다. 바탕이 없으면 상상력은 발휘할 수 없다 라고 하신다. 오늘 날 자녀 교육에서 강조하는 창의력과
상상력은 역사에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였다. 교육에 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시대가 바뀌었으며 무엇이 중요한가를 들여
다 봐야 한다고, 유행에 따르는 것은 금방 잊혀진다고, 창의성와 개성을 너무 무시해 왔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개성을 살려주어야 한다고, 출세의 방향이 달라졌다. 다양한 재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인데 선생님께서는 어렸을 때 다양
한 경험, 고생했던 경험이 내성이 생겨 10년에 걸친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한국사 이야기' 22권 소중한
기록 유산을 남길수 있었다. 끝으로, 구체적인 역사, 정확한 역사를 통해 역사를 공유하고 국민의 동질성, 통일성은 정신적
자산이라고 말씀 하셨다.
후기를 쓰면서 잘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느낀다.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매 순간의 물음을 가지는 태도를 지녀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무엇보다 역사책을 균형있게 보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며 뜻깊은 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