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얼굴은 몇 가지일까? 적어도 하나는 아니다. 인류를 미몽과 마법에서 해방시킨 얼굴 하나. 다시 재영토화를 해내는 얼굴 하나. 재영토화를 하는 과학의 얼굴에는 두 그림자가 지워져 있다. 그 이름은 정부와 자본이다. 저자의 강연에서 그 기점은 80년도다. 80년을 기점으로 과학은 정부에서 자본으로 스폰서가 바뀐다.  

저자의 강연 초두에서 과학이 팽창한 시대는 1,2차 대전과 더불어서다. 과학의 최초 스폰서는 정부였다. 정부의 예산은 과학의 본질을 변화시켰다. 과학은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시작했고, 그후 주인은 정부에서 자본으로 넘어간다....김명진 강연을 짧게 골자만 잡은 것이다. 강연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훨씬 많았고, 책에는 좀 더 정교한 서술이 있다.   

강연에서 Big SCIENCE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요즘의 과학 연구 추세에서의 테마잡기 방식의 특정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비판적 뉘앙스가 내포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과학의 스폰서가 정부에서 자본으로 이행된 후 특히 강화되는 경향이다. 90년대 미국에서의 게놈프로젝트, 허블망원경 등과 같이 거대규모의 프로젝트가 실시되는 것은 과학과 자본의 결탁이 초래한 결과다. 

그 결과로 과학연구자의 위계구조화, 연구와 연구자의 소외와 같은 자본주의적 모순구조들이 과학계, 연구프로젝트에 비대해 진다. 기실, 빅 싸이언스화는 그 자체로만 보면 정당한 것이며 사회와 과학사의 진전에 적절하게 조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큰 과학연구를 수행하기에는 이런 방법 외에는 다른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것에 대해서 직접 비판을 삼가한다.  

빅싸이언스의 또다른 얼굴은 업청난 비효율성과 낭비다.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그것은 고스란히 국민(주도자가 정부인 경우), 노동자(주도자가 자본인 경우)에게 전가될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돈이 도는 구조를 생각하면 그 비용이 누구에게 전가될 것인가는 뻔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지적은 강연에서 배제되어 있다. 

강연의 전반적 구조는 입증가능한 상황들의 제시와 그 증거제시로 되어있다. 이번 강연에서 상상력은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강의자는 직접적으로 자신이 비판하는 것이 무엇인지 노출시키지 않았다. 수강자(또는 독자)에게 나머지 몫을 차지하라고 안겨준 기분이다.   

강연내내 그리고, 질의응답에서 느낌은 탈주당한다는 것이다. 강연자는 무언가 회피하는 가운데 무언가를 말하고 답했다. 피하고, 우물거리고, 생략하고, 넘어가고가 간간히 등장하면서 강연자는 자신의 로직에 충실했다. 메모를 안하는 나로서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강연의 구조가 논리적이라는 인상은 받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반쪽은 내가 내 생각을 더해서 조합해 낸 것들이다. 거기에 강연자의 탈주본능은 되려 방해가 되는 것이다. 

강연자는 지식을 전당할 의무가 있다? 없다! 강연자는 자신의 말을 자신의 방식으로 전달을 하고,수강자는 자신의 말로 정리를 한다..... 대충 내가 생각하는 강의의 구조다... 그런 것들이 '탈주'를 낳는다.  

강의자는 20세기 초엽부터를 강의의 초두로 삼는다. 그전이 개인과학자, 즉 천재가 과학을 발명하는 시대라면 20세기부터는 과학자 수가 급속히 팽창한다. 시기적으로 양차대전에 조응한다. 그리고, 윤리가 과학세계에 등장한다. 전쟁에 복무한 과학자에게는 죄의식이 드리운 것 일까 아니면 윤리가 제어하지 않는다면 과학의 폭발해 버리는 것 일까? 양차대전후 뚜렷한 변화는 과학에 윤리가 요구되고 과학이 제도가 되는 것 이다. 

최초에 과학을 지원한 스폰은 정부다. 정부는 왜 과학을 스폰할까? 과학엔 정부 밖에 스폰이 될 수 없었을까? 양차대전은 과학자를 국가과학자로 양성하는 계기가 된다. 국가가 강화되고 과학은 국가에 복속된다. 이 구도는 그후 80년대가 되어 그 주인이 자본으로 전환될 때 까지 우세한 구도다.   

2차대전후 동서냉전이 심화된 것은 이 구도를 계속 유지, 존속, 재생산한다. 대체로 강의에서 노출된 정보들은 미국위주다. 그러나 이 구도는 다만 미국에만 한정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강의자는 평가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다면 강의의 스토리텔링은 완결되지만 너무 단순화된 감이 든다.  

이번 강의는 한편의 뛰어난 스토리텔링이다. 책도 궁긍적으로 일정한 스토리텔링에 기초해 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결여된 것은 받아드릴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고, 잊혀지기도 쉽다. 이것은 스토리텔링의 장점이다. 학술논문이 아닌 다음에는 스토리텔링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단점도 있다. 그걸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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