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우리는 태어나서 자신의 성별에 따라 옷을 입고 어울리는 행동을 배운다. 왜 남자가 치마를 입으면 안 되는지, 여자가 총을 갖고 놀면 안 되는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주어지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혹여나 자신의 성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또래집단에서 거부당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과 처벌을 받는다. 자신의 성에 맞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만 적절한 강화를 받는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된 힐러리 스웽크 주연의 ‘소년은 울지 않는다’ 라는 영화를 보면 성역할을 침범했을 때, 또래집단에게 잔인한 보복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개가 리얼하다고 생각했는데 실화라니 더욱 충격이었다. 설마 저렇기까지야 하겠냐는 의문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한 인간은 집단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사회적 고정관념 속에서 희생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개체와 종이 진화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생식의 의무, 유전자 프로그램의 법칙을 어기는 것에 대한 생물학적 우려에 따른 집단적 응징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성정체감 장애
프로이드 같은 경우에는 성장과업인 동성부모와의 동일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해 남근기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라 볼 것이다. 매슬로우는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욕구위계설을 주장했는데, 그 가장 하위에 있는 것이 생리적 욕구와 최상위에 있는 것이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성전환자들은 성별이분법에 기초한 현실에서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안전, 소속, 인정, 자아실현의 욕구가 위협받는다. 한마디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초적인 것들이 정말 힘들게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 (DSM-IV)의 기준으로 본다면 다음에 따라 성정체감 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① 강하고 지속적인 반대 성과의 성적 동일시(반대 성이 된다면 얻게 될 문화적 이득을 단순해 갈망하는 정도여서는 안된다.) ② 자신의 성에 대한 지속적인 불쾌감 또는 자신의 성 역할에 대한 부적절한 느낌 ③ 이 장애가 신체적 양성(중성 또는 간성) 상태에 동반되지 않는다. ④ 이 장애가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사회적, 직업적, 혹은 다른 중요한 기능영역에서 심한 장애를 일으킨다. 실제로 정신과의 진단을 통해 성정체감장애 진단을 받아야만 의사의 처방을 받아 호르몬을 투약할 수 있다고 한다. 군대는 6 등급 면제로 판정받는다. 여러 가지 이론들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지만 정신이상장애, 이것이 심리학의 공식적 평가이다. 그러나 성전환자들은 생물학적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반대의 성에 대해 맞추려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판단한다면 ‘정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고립된 섬 속의 개인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이것은 과연 숙명인가? 예전 같으면 쓸데없는 소리라고 치부해버렸을지 모르는 물음에 함부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사회가 다양화되어 중성적인 트렌드가 유행하고, 기술의 발달로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면서 자신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하리수씨가 커밍아웃을 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대표적인 스타트를 끊었고, 음지에서 하나 둘씩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성전환자들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해 음지에 서 있는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다. 호적을 정정한다고 해도 자신에게는 낙인같이 영원히 지울 수 없이 따라다니는 과거에 매여 할 수 있는 일들도 한정적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김명진씨 같은 경우는 성별정정까지 하고 입사했지만, 문서 위조혐의로 직업을 잃었다. 여학교의 ‘여자’를 뺐다는 이유로 거짓말쟁이 사기꾼 취급을 받고 경찰서에까지 가서 심문을 받았다. 법적으로 성별정정이 이루어졌다 해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아직까지 더러운 짐승 보듯 하는 곳이 많다. 오죽하면 가까운 가족조차도 흉물 취급을 하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진실하게 살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 것은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무모한 행위
자연적으로 당연시 되는 법칙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의 기술력을 통해 인위적으로 생태계질서를 지배하여 인류가 멸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인위적 방법이 허용된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처럼 완벽하게 재현할 수도 없을 뿐더러 계속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데 대부분은 성별처럼 당연히 주어진 것을 바꾸기 위해서 인생을 모두 걸 모험을 택하지 않는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자연을 거슬러 이득을 추구하는 행위는 오히려 장려되어 왔으면서 실제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의 행복 추구는 비판받는다. 개인이 자각하고 각자 행복을 찾는다면 생태계의 지배질서가 뒤바뀌어 버린다고 생각하는 권력자들은 다수의 이름을 앞세워 개인의 행복을 인정해 줄 여지가 없다. 여태껏 당연시하고 믿어왔던 가치체계에 대한 위협에 따른 정신적인 피해를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타자로서 받는 정신적인 피해와 스스로를 선택한 그들이 받는 물질, 신체, 정신적인 고통을 헤아릴 줄 안다면 정신적인 피해를 받는다고 함부로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별정정이 받아들여질 것인가?
사회적으로 성별정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이치를 거스르려는 행동에서 자신이 가진 정체성(관념)에 대한 위협을 느끼거나, 바꾸고서 후회할 경우가 있다는 인간적인 우려, 혹시나 나의 배우자가 성전환자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성별정정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해서 누구나 힘든 여정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정말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 죽기보다는 마지막 희망으로 성전환을 선택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죽더라도 수술대 위에서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성별정정을 하지 못하게 막을 권리는 없다고 본다. 앞으로도 복잡한 절차, 수술, 사회적 편견 등 이겨내야 할 힘든 관문들이 놓여있으며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발되는 건강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수명이 단축된다고도 한다. 이렇게 수많은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개인의 책임이라 치부하고 겪도록 내버려 두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도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 남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자유와 맡은바 책임을 다한다면 사회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성전환자들도 평범한 한 인간일 뿐
영화에서 진모 교수와 이모 개그맨을 닮은 고종우씨(커밍아웃하지 않았으면 절대 트랜스젠더 인지 몰랐을 것 같은)가 술에 얼큰하게 취해 자신의 처지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부분이 특히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답답하고 쓸쓸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자조적인 한탄이 꾸밈없는 진심을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성전환자들은 더럽거나 격리해야할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시하고 고마워하며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고 자신을 찾아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선택에 따른 책임은 자신의 몫이지만 자신과 다르다고 비난하며 타인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기본적인 사항들이 충족되지 못해 인간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비난보다 격려가 필요하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영화의 진행을 따라가다 보니 그들 스스로 자신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자신에 대한 회의가 언뜻 스쳐 보이기도 하는데 기왕 자신이 선택한 삶에 긍정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정상과 비정상 그 경계의 차이에서-
주어진 것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사회에 대한 반항인가? 유전의 차이인가? 교육의 잘못인가? 나는 그것을 잘못이나 이상행위가 아니라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려는 인간의 추동. 프리 윌(Free will)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라 본다. 그렇다면 사서 개고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전환을 꼭 해야만 하는가? 그냥 생긴 대로 살게 놔두면 안 되는가? 아직은 성별이분법적인 근거에 놓여있어 그냥 생긴 대로 자기 자신답게 살기가 쉽지 않다. 성별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 차별과 지탄을 받는다.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것들이 자신에게 맞는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인간답지 못한 쓸모없는 부품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사회적으로 무엇이 선호되는 행동인가를 규정하는 언론매체와 관습적으로 뿌리 깊게 박혀온 의식이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차별을 양산하게 되었다. 이것은 모든 소수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적용해 볼 수 있다. 정상과 비정상.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경계에서 얻어지는 권력에 따라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당성을 얻게 된다. 뒤집어 생각하면 자신이 소수인 경우 다수의 뜻에 따라야만 하는 사회적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양성성이 있다고 하는데 누구나 완전히 한쪽에 속해 있는 것은 드물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의심하지 않는 것들은 강요된 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생긴 고정관념일 경우가 많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어 한계선을 긋고 가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계를 넘나들며 고민하는 인간은 자신을 찾으려 방황하며, 행동으로 옮기려면 책임과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은 하나고 그것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경계를 나누며 차별하는 것 보다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 줄 때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누구에게나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해 주는 사회 전체적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아름다운 사회를 향하여
삶은 선물이며 누구에게나 행복하고 소중한 축복이다. 모두가 각자 다르지만 존재 자체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된다면 꼭 신체에 칼을 대야할 이유도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아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열심히 순수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결실의 열매를 맺고 존경받는 그런 사회가 될 때 세상은 다양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주어진 삶을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선사할 것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평소에 거부감이 있었던 분들도 알고 보면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생활에서 소박한 행복을 찾는 것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내가 기쁜 순간에도 다른 누군가는 고통 받고 슬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타인을 배려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여기서 느끼는 감사란 남의 불행을 보고 느끼는 안도감이 아니라 삶에서 소박한 행복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삶에 대한 순수한 감사를 의미한다.


마치며...
소수자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가 생각하는 것을 따르지 않고 의심한다고 배척하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6/6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하는데, 개봉하면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아깝지 않은 영화이다. 워낭소리, 똥파리에 이어 이런 사람 사는 이야기, 사람냄새가 나는 잔잔한 영화가 가슴을 울린다. 삶을 따라가며 인터뷰 형식으로 제작되어서 화려한 볼거리는 적지만, 블록버스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영화를 보면서 항상 내가 저 상황 저 사람의 처지에 놓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실제 삶이 담긴 영화는 그래서 소중하다. 누군가의 삶. 나의 삶. 또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삶의 진솔한 이야기. 삶은 그 존재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사람들은 말 못할 내면의 이야기들을 저마다 품고 있는데 커밍아웃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용기 있는 악수를 건네는 것이다. 혼자 담아두고 있었던 어두운 감정은 누군가와 함께 나누면서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아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 용기를 내어 세상에 손을 내민 그들과 악수하며, 다양한 분야로 식견이 넓어지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제작팀에게 박수를 보낸다. 2년여 기간 동안 영화를 만든 김일란 감독과 제작팀, 백가흠 작가와 같이 시사회를 관람한 뒤 1시간정도 대화의 시간을 가졌는데 아름다우신 감독님께서 말씀도 잘하셔서 다음 작품들도 기대된다. 유인물을 나눠주신 담당자분들과 사회를 맡으신 분께서도 매끄럽게 진행을 이끌어 주셔서 좋은 관람이 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용어정리  
MTF(Male Toward Female)남성에서 여성으로
FTM  (Female Toward Male) 여성에서 남성으로 
http://blog.naver.com/3ftm  

 



 

사회자 / 김일란 감독 / 백가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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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 2009-06-0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생각이 많아져서 요지를 정리하기가 힘들지만
결국 영화를 보고 느낀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 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