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본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한 달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조사가 나왔다고 했다. 하루는 그렇게 짧지 않는데 어떻게 한 달에 한 권도 책을 읽지 못 할 수가 있을까? 하고 내가 질문하자 엄마는 웃으면서 니가 어른이 되보면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뒤, 올해 스므살이 된 나는 그 말을 제대로 알고 있다. 사실 그 말을 아는데 스므살은 필요 없었다. 내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지 못하게 된지는 이미 삼 년 전,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타난 일이었으니. 


고등학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중에 하나인 수능이 끝난 이 후로 가장 먼저 읽기 시작한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기였다. 청소년을 위한 사기 정도는 읽어 봤지만 그 정도 뿐만이 아니라 사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기는 연도별이 아니라 인물과 사건별로 정리한 역사책이기 때문에 다른 역사책과 달리 좀더 접하기 쉬운 이미지도 있었다. 130권이라는 무지막지한 분량이 아니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하지 못했었는데 김영수 선생님의 강연은 정말 쉽고 재미있었다. 내가 처음 간 작가와의 만남이 김영수 선생님의 강연이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의 강연은 정치, 경제, 사회을 사기와 연결시켜서 설명해 주는 방식이셨는데 나는 내가 경제학과여서 그런지 경제쪽의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들었다. 

화식열전을 읽으신 분들은 모두들 느끼겠지만 무려 2천년 전 사람들이 한 말이 지금 딱딱 들어 맞는 것을 보면 정말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다. '있는 집 자식은 길거리에서 죽는 법이 없다.' 라던지 '유전무죄 무전유죄'같은 말은 그 예를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화식열전의 명언이다. 길거리에서 죽는 사람 중 정말 있는 집 자식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으며, 대기업이나 간부나 고위관료, 또는 그들의 친족은 절대 감옥에 가지 않는다. 혹여 간다고 하더라도 눈 깜짝할새에 나오곤 한다. 이 것이 과연 2천년도 더 된 역사책일까.  

화식열전에 나온 부자들의 이야기 뿐 만 아니라 그 아래 사마천의 의견 또한 2천년 전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리하다.화식열전이 남은건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요즘도 돈을 입에 대놓고 올리는 걸 꺼리는데 2천년 전에는 얼마나 심했을까. 하지만 사마천은 돈이 없어서 궁형을 선택한만큼 경제문제 또한 언제까지 쉬쉬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후대 학자들에게 강한 비판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서 화식열전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화식열전은 열전의 제일 마지막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당당히 중요하고 있다. 

내가 선생님의 책을 읽고  수업을 들으면서 정말 감탄한 것은 사기를 가지고 정말 현대의 문제점을 기가 막히게 비판하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 정부는 인터넷 누리꾼들의 정부비판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 거녕 인터넷 규제 심화나 미네르바 구속 같은 일을 통해 그들의 손가락을 막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춘추시대의 초장왕은 지금으로 따지면 코메디언에 불과한 궁중악대의 말까지도 새겨듣고 자신의 잘 못을 고쳤다면서 그에 관련되 일화를 이야기해 주셨다. 단순히 현정부를 비판하는 것 보다 이렇게 비교할 이야기를 들어 우리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와 연결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까지도 알려주신 것이다.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누리꾼들의 열 손가락을 막으면 그다음은 그 손가락이 어디로 향할 것이지 현 정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였다. 지금 이 후기를 쓰면서 생각할 수록 감탄사가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그 위트도 사기에서 배운 것이 아니었을까.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옆나라인 일본에는 약 백 명 정도가 사기를 전문적으로 연구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 백 명도 적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놀랄말은 그 다음이었다. 우리 나라에는 전문적으로 사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김영수 선생님을 포함하여 겨우 세 명이라는 것이다. 기준이 사기 관련 도서를 한 권 이상 낸 사람이다 보니 세 명 보다는 사기를 연구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적다. 웬만한 CEO들이 다 필독도서라고 말하는 사기인데 우리 나라에서 고작 세 명이 그 130권의 방대한 역사책을 연구한는 것이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CEO들 마저도 사기를 다 읽은 사람은 없고 대부분 열전을 부분적으로 읽었을 뿐이라고 하셨다. 정말 우리 나라 문사철의 위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작가와의 만남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날 강연을 들으러 가면서도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리고 제일 처음에 들은 강연이 김영수 선생님의 강연이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미리 책을 읽어봤기 때문에 강연 내용이 책을 심화한 내용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강연 내용은 심화보다는 책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었는데, 나중에 이에 대해서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 정도의 내용조차도 어려워서 사람들이 더 쉽게 설명해달라고 하기 때문에 더 어렵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대답에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내 자신도 몰랐던 천재일리가 없으니 결론은 이 강연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식과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 뿐이다. 시대와 상황,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단한 교육 탓도 있겟지만 정말 쓴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은 정말 난세이다. 대통령이 공약에 내걸었던 7%성장은 커녕 마이너스란 말이 나오고 얼마 전에는 용산사태까지 터졌다. 내가 지금 직장인이 아니라 대학생이라는 것에 얼마나 안도했는지. 내가 대학을 졸업하는 2013년이면 대통령이 바뀔테니 타이밍도 딱 좋다.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일이고 아직은 난세라는 말이 정말 딱 들어맞는다. 어려서 잘 몰랐던 IMF와 달리 지금은 사람들의 표정과 지갑의 두께가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정말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들 적어도 한 가지 씩은 자신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잡았을 것이다. 사기와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며 감탄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사기에 참신함에 감탄하고 장난끼에 입꼬리를 씨익 올리게 될 것이다. 사기는 딱딱한 역사책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은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서 더 쉽게 설명해달라고 하는 것은 참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이미 충분히 쉬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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