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바다의 기별’에 김승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와 문인 친구들이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인 빠’졌다는 이야기. 그래, 김승옥은 60년대 문학계의 신화였다. 《무진기행》(1964), 《서울, 1964년 겨울》(1965)로 이어지는 소설들로 김승옥은 전후 우울증에 빠져있던 한국문학계에 패러다임 쉬프트를 일으키며 한 시대를 석권했다. 이후 절필을 선언하고 방황하던 김승옥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어령이 그를 잡아다 호텔 방에 가둬두고 강제로 글을 쓰게 했는데, 그때 나온 단편이 제 1회 이상문학상을 탄 ‘서울의 달빛 0장’(1977)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승옥 곁에서 김광주를 비롯한 동시대에 살리에리들은 머리칼이 남아나지 않았다.

김승옥은 전설로 남았고, 살리에리들에겐 벗겨진 머리만 남았다. 하지만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그 당시보다 좀 더 흐뭇한 기분으로 새로운 전설의 탄생을 바로 그 곁에서 지켜 볼 수 있었으리라.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떨어진 축복’. 2001년 아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것. 이후 한국 문학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김훈의 등장이었다.

오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나는 김훈의 문학이 오래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팬으로서의 주례사 비평이 아니고 새로운 물건에 대한 평가자로서 얼리 아답터의 안목이다. 그의 문장은 확실히 전례가 없던 것이고 전의 것들을 대체할만한 물건이다. 

요즈음은 김훈을 둘러싸고 비판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하긴 현의 노래 이후 그의 문장은 매너리즘의 징후를 보였다. ~했는데 ~하는 것이어서 ~했다. 류의 사실을 나열하는 문장이 패턴을 보이기 시작한 것. 내가 생각하기에 글의 바다에서 패턴은 주적이다.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문장에 내용을 맞춰가는 문장은 글을 푸석하게 만든다. 김훈도 그 위협을 감지했기에 문장을 협소하게 만드는 빈약한 한국어 조사에 대해 탄식하고, 없어진 훈민정음의 몇 글자를 아쉬워 하는 걸 거다.

하지만 김훈의 글쓰기는 이순신의 배 처럼 쉬임 없이 나아가리라. 그래야 할 것 같고 왠지 그럴 것 같다. 나는 김훈의 저력을 믿는다. 이건 얼리 아답터의 비평이 아니라 확실히 팬으로서의 주례사 비평이겠지만.

#. 2

지하의 카페 이리, 넓직한 공간에 사람이 가득 들어찬다. 녹차 한잔을 홀짝거리며 그를 기다렸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이 불어났고 늦은 사람들은 앉을 자리를 구하지 못해 서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온다. 백발, 초로의 남자. 차마 ‘신사’라고 까지는 쓰지 못하겠다. 스포츠형에 가까운 머리, 별 고려 없이 걸쳐입었음이 분명한 체크무늬 남방에 면바지, 어정쩡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폼은 사실 문단의 거목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좀 매치가 안 된다. 어쨌든 좀 갖춰 입고 나올만한 자리가 아닌가. 그래, 그 이상한 야구모자 안 쓰고 나타난게 어디냐. 길에서 나타난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것 같은 패션 센스다. 그는 김승옥이랑은 좀 다른 의미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조명이 켜진다. 마이크가 세팅되고 사회가 익숙해 보이지 않는 한 남자가 김훈의 옆자리에 앉는다. 김훈을 둘러싸고 반원형으로 구성된 객석들에서 이목이 동시에 집중된다. 그냥 원체 그럴 거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역시 별 감흥 없어 보이는 표정이다. 카페가 조용해지고 김훈의 목소리가 울린다. 묵직한 탁성. 마땅히 흘러 나와야 할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만남은 짧았다. 한 시간 반 남짓. 사람들은 질문했고 김훈은 답변했다. 그는 글처럼 말도 단문이어서 알아듣기 수월했다. 사회자가 물은 물음에 김훈은 대체로 책의 내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다시 말 했다. 나는 나름 낭독회 온 기분으로 즐겁게 들었으나, 데려간 라캉주의자 한 녀석은 지루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대체로 김훈의 팬 분들이 온 자리라 그런지 장내는 진지했다. 그들은 비록 책에서 본 유머가 그대로 나오더라도 호탕하게 웃어줄 만큼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랬다. 하하하.

알려졌듯 김훈은 서울 토박이다. 서울 토박이가 아니고서는 종결어미 ‘이지요’를 그렇듯 어색하지 않게 구사할 도리가 없다. 그는 중요한 대목에서는 연설 투로 방점을 찍듯 억양을 주어 말한다. 가볍지 않은 화법이다.




말미잘은 이렇게 질문했다. “장편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 산성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속에 소설의 국면을 밀어 넣는다. 왜 그랬나”  김훈은 이렇게 말했다. “악, 폭력, 인간의 야만성은 청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 고유하게 내재하는 특성이다. 나는 앞으로 그런 소설을 쓸 생각이 없다. 인간의 일상에 대해 쓸 생각이다.” 그의 답변은 짧았다. 툭 날고기만 던져놓고 네 마음대로 해 먹어라 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알아서 이해하기로 했다. 전쟁은 인간 역사에 있어서 본질적 요소이며 그러한 야만적 상황 속에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고. 꿈보다 해몽인걸까?   

김훈의 답변은 대체로 책에 씌여 있는 얘기가 많았다. 책에 소개되지 않은 말 위주로 인상 깊은 몇 구절만 소개한다.

-밥을 먹는 세대와 못 먹는 세대로 역사는 이분됩니다.

음..
 
-나는 현세적 가치를 경멸하는 놈들을 쓰레기처럼 경멸합니다.

끄덕끄덕

-나는 돈을 존귀하게 여깁니다. 근데 이렇게 말하니까 김훈은 배금주의자라고 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ㅋㅋㅋ

ㅋㅋㅋ

-주입식 교육은 좋은 교육이지요. 시 외우는 거 좋습니다. 그것은 인간 창의를 말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창의의 토대이지요. 다만 뭘 집어 넣느냐에 따라 나빠질 수 있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저는 카드를 싫어합니다.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계산해야 돈 쓰는 맛이 납니다. 또 카드는 긁으면 내역이 아주 자세하게 집으로 가기 때문에 의심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대나 빵 같은 건 카드로 긁고 다른 건 현금으로 계산합니다. 그럼 집 사람이 이 사람은 소비생활이 건전하구나 생각하는 겁니다.

오오, 메모.

또 김훈은 칼의 노래와 이순신에 대해 이렇게 말 했다.

-당시 노론과 소론은 당파에 입각했지요. 사실에 입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입각했지요.

칼의 노래에서 보여준 김훈의 문장, 끔찍한 사실을 수식으로 우회하지 않는 문장은 그러한 이순신의 삶 자체에 입각했으리라. 그가 쓴 여러 편의 글과 인터뷰등의 자료에 의하면 그는 이순신과 난중일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단다. 그가 난중일기를 읽고 대학을 그만 두었을때 부터 시작한 리얼리스트로서의 삶도 어쩌면 한권의 책에서 시작한 것이었으리라.

#. 3

바다의 기별은 쓴지 오래 된 글을 묶은 산문집이다. 최근의 글 보다 조금은 더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때로는 동네 할아버지의 이야기 같은 글 들이 많다. 곰곰히 생각하며 읽어야 할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산문집은 치열한 사색에서 약간은 비껴서 있는 지점이리라. 지금까지 김훈의 글이 에스프레소에 가까웠다면 바다의 기별은 부드러운 카푸치노쯤 될 거다. 이제, 한 숨 쉬고 다시 제 길 걸어갈 김훈을 기대한다.

 -뷰리풀말미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