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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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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가을 허멘 멜빌의 소설《모비 딕》이 미국에서 출간된다. 화자로 등장하는 이슈마엘은 몇 년 전 자신이 포경선을 타면서 경험했던 독특하고도 신비로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오직 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자들은 《모비 딕》을 외면했다. 태평양까지 뻗어가는 미국 영토의 확장, 골드러시, 노예 문제 등 당면한 현실을 살아가기도 벅찼다. 이후 1859년 펜실베니아에서 검은 황금이 발견되자 이제 고래들은 비로소 인간의 모진 억압과 탄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때문인지 고래에 관한 관심은 더욱 멀어지게 되었고 《모비 딕》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격동의 19세기 구대륙과 신대륙

1850년대 구대륙은 혁명의 열기로 들끓었다. 1848년 1월 시칠리아에서 발화한 시민혁명은 파리로 이어져 밀라노, 빈 등 전 유럽에 들불처럼 퍼졌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이탈리아 왕국, 독일 제국 등 유럽에 새로운 민족국가가 등장했으며 헌법을 통한 통치가 시작된다. 신에게 부여받았다고 여겨진 절대권력의 허상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이내 심판대에 세워지고 파멸을 예고했다.

대서양 건너의 신대륙은 유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18세기 후반 북아메리카 동부 13개 식민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1850년, 미국은 전쟁, 약탈, 영토 구매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이르는 광대한 대륙 국가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인종, 종교, 사상, 철학은 주류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특히 많은 원주민이 자신들이 뿌리를 내렸던 터전에서 이주해야 했다. 아프리카에서 면화 재배를 위해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었으며, 조만간 노예제도를 둘러싼 이슈로 인해 남과 북이 나뉘어 큰 전쟁을 치를 참이었다. 이런 사회 배경에서 허먼 멜빌은 《모비 딕》에서 당시의 사회 문제를 은유와 비유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성찰한다.

‘이슈마엘’이라 불러달라는 남자

화자는 자신을 이슈마엘로 불러달라면서, 몇 년 전 있었던 특기할 만한 사건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뉴베드퍼드에서 태평양의 작은 섬 출신의 원주민 퀴케그를 만났을 때 인종적/종교적 선입견을 품었다. 하지만 퀴케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관찰하면서 그의 매너와 진실성을 경험하면서 제 생각이 짧았음을 시인한다. 이어 피쿼드호에서 만난 다국적 인종들을 만나 서로 부대끼며 그들을 자신과 같은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한다. 이슈마엘은 항해를 통해 고래의 생태학적, 해부학적, 골상학적 부분을 세세히 관찰했고, 포경산업의 세세한 구조까지 자세히 연구한다. 다른 선원들처럼 에이해브의 맹목적 질주에 동조했으나 나중에 이를 반성하는 성찰의 모습도 보여준다.

이렇듯 모험은 늘 가까이 한 지점에서만 바라보는 세상이 자신이 아는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몇 걸음 떨어지게 만든다. 관점이 달라지자 더 큰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비로소 가깝게 있을 때는 파편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하나의 큰 모자이크와 같은 입체적 실체로 인식된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구원의 기회를 놓쳐버린 자들

《모비 딕》은 다국적 선원으로 구성된 포경선 피쿼드호가 미국의 유명 포경기지였던 낸터킷 항을 출항하는 것으로 본격 시작한다. 선주, 선원 모두가 고래기름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에 들떠있다. 하지만 피쿼드호의 에이해브 선장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는 자신의 한쪽 다리를 빼앗아 간 ‘모비 딕’이라 불리는 향유고래를 찾는다. 평생 자신을 고래 뼈로 만든 다리에 의존하게 만든 모비 딕의 파멸을 꿈꾸며...이러한 광적인 집착은 이성의 눈을 가리고 오직 본능에만 충실하게 만들면서 결국 자신을 스스로 파멸로 이끌 운명이었다.

인생은 권선징악처럼 단순치 않다. 스스로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자에게도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말의 기회를 준다. 아킬레우스의 광기를 아테나가 조절하지 않았다면 희랍군은 트로이아에서 파멸을 맞이했으리라.

통제력을 상실한 폭주 기관차와 같은 에이해브 곁에도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어르고 달래는 스타벅이라는 일등 항해사가 있었다. 스타벅은 끊임없이 에이해브의 독선을 지적하며 당면한 현실을 보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그 실낱같은 기회마저 저버린 선장은 함께 배에 탄 선원들까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총동원한다.

선원들 또한 선장의 카리스마에서 벗어나 파멸을 피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그들 또한 잘못된 에이해브 선장의 이상에 경도되어 함께 자멸한다. 왜 그들은 선상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였던가. 스타벅은 왜 선원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에이헤브의 권력에 맞서지 못햇던가. 결국 절대권력에 대항하고 그것을 저지하지 못했을 때 독재자뿐 아니라 그의 권력 아래에 있던 무고한 사람들 또한 심연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선장을 포함한 모든 선원이 고래와의 사투끝에 바다에 수장됨으로써 소설은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화자인 이슈마엘은 죽음에서 부활한다. 작살잡이 퀴케그의 관(부명부표)이 부이 역할을 하며 그를 구원한다. 서두에서 결국 이슈마엘이 이 이야기의 전말을 전해준 것이 오직 그만이 가능했던 이유다. 모세, 석가, 예수, 마호메트 등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이 발견한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준 선지자들처럼 이슈마엘도 《모비 딕》의 특별한 경험 공유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 성찰하길 바란다.

《모비 딕》의 재평가

허먼 멜빌은 12세 때 상인 출신의 아버지가 죽자 외판원, 구두닦이, 교사, 선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특히 그가 포경선 선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모비 딕》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다. 기존 전통과 다르게 자주 작품의 시점이 변하고, 느닷없이 고래학에서나 볼법한 해부/생태학적 내용이 튀어나오니 대중이 좋아할 리 없었다. 이후 익명성보단 개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했고, 뒤이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모든 소외된 대상에게도 빛이 찾아들며 《모비 딕》은 재평가된다.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멜빌은 《모비 딕》 이후 대중이 기억할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의 첫 히트 작품 《타이피》 같은 대중이 관심 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해양 모험 소설이 아닌 《모비 딕》같은 심오한 생각이 담긴 작품을 고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일정기간 자신의 인지도를 굳건하게 인식시킨 다음 실험적인 작품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가족 관계도 그리 좋지 못했다. 두 아들은 각각 자살과 지병으로 자신보다 일찍 죽었다. 아내와의 관계가 좋을 수 없었다.

그는 일흔이 넘어 죽을 때까지 고독하게 살았다.

자기 작품이 인정받기를 꿈꾸면서.

마치 흰고래만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의지를 집중했던 그가 창조했던 에이해브 선장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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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솔로 - 유리의 지평선
라인홀드 메스너 지음, 김희상 옮김, 김동수 감수 / 리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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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은 영원한 것일까?

라인홀트 메스너는 그렇지 않다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8,125m의 낭가파르바트를 무산소로 그것도 단독으로 등정했던 것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정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계속 도전을 감행했다.

이 책은 메스너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8,848m)를 무산소 단독등정으로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아마다블람 등정이 실패하고 네팔에서 유럽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시작된다.

메스너는 낭가파르바트 등반의 성공으로 다른 히말라야의 고봉도 무산소 단독등정이 가능함을 깨닫고 다음 목표는 에베레스트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유명한 탐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가 1980년 겨울에 단독등반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메스너는 자신이 더 먼저 오를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네팔 정부에 허가를 요청한다.

나는 우에무라 나오미보다 앞서 정상을 단독 등정하고 싶었다. 나는 세계 최고봉을 혼자 오른 최초의 등산가이고 싶었다.” 81

 

그러나 네팔에서는 몬순시기 등반은 위험하니 등반은 어렵다고 한다.

때마침 중국에서 외국 등산가에게 에베레스트를 개방한다는 소식을 접한 메스너는 그 길로 중국으로가서 티벳쪽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 있는 허가를 받는다.

중국에 도착 후 티베트로 이동하면서 중간에 들렀던 장소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은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그는 글쓰기에도 상당한 재능을 보여준다.

그는 6500미터에 전진캠프를 설치한다. 그리고 정상까지의 구간 중 가장 까다로운 노스콜까지 고군분투하며 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주먹을 불끈 쥐는 것과 같다. 주먹을 쥐지 않고 펼친 손만이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는다. 단독 등반에서 맞닥뜨릴 모든 위험에 맞서기 위해 나는 힘을 조금이라도 허비해서는 안된다.” 149

 

7주 동안 5000미터 이상의 고도에서 고소 적응을 마친  , 1980817일 마침내 출사표를 던졌다.

해발5000미터 이상의 지점에서 7주를 보낸 나는 베이스캠프 주변을 고향땅처럼 돌아다닌다 191

 

첫날 노스콜 아래까지 올라 배낭 데포에 성공 후 전진 캠프까지 내려왔다.

전체 구간 중 가장 어려운 구간이었기에 미리 배낭을 그곳에 가져다 두었던 것이다.

다음 날 그는 다시 노스콜까지 올라 배낭을 찾았으나 얼마 안가서 크레바스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 상황에 봉착하고 만다. 그러나 신은 그의 편이었다.

크레바스를 빠져나오자 심각한 고민을 한다. 계속 오를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하산을 할 것이냐. 그의 본능은 그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아래 크레바스 안에서 나는 돌아가자고, 포기하자고 거의 마음을 굳혔었다. 몸 성히 빠져나올 수 있다면 나는 등반을 중지하고 싶었다. 다시 위에 선 지금, 나는 고민할 필요 없이 정확히 의식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 발은 마치 프로그래밍이 된 것처럼 앞만 향해 나아갔다.“215

모든 동작은 몇백 번이라도 연습한 것처럼 빠르고 확실했다. 단 한 번의 손놀림도 나는 허비하지 않았다. “211

 

해발고도 7000미터가 넘어가면 공기는 희박해져 지상의 1/3만 남게된다. 뇌로 충분한 산소가 전달되지 않으면 인간은 무너진다. 고산병의 원인이기도 하다. 위로 오를수록 공기는 옅어지지만 반대로 불안,공포,회의감,고독,지독한 외로움은 더욱 짙어져만 간다.

시시포스의 진짜 아픔은 같은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 때문에 빚어지지 않는다. 시시포스는 위에도 아래에도 머무를 수 없어 고통스러울 따름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을 괴롭히는 진짜 위협은 위에도 아래도 머무를 수 없는 자신의 존재에서 오는 회의감 아닐까?” 204

휴식 사이의 걷는 구간이 갈수록 짧아졌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 나는 앉아서 쉬어야만 했다. 다시 일어서는 일은 엄청난 의지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힘이 부칠 때마다 스스로 정한 하루 목표를 채워야만 한다는 굳은 다짐이 도움을 주었다. 목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228

 

7220미터에서 첫 비박을 시도했다.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경험을 통해 터득한 교훈을 애써 무시하지 않고 고산에서 꼭 해야하는 루틴을 충실히 해나간다. 좁은 텐트 속에서 물을 만들고 식사를 하고 양말을 갈아신고 등의 일을 할 바에얀 차라리 계속 등반하는 것이 훨씬 쉽다라는 그의 표현은 얼마나 고산에서의 비박이 고도의 정신력이 필요한 일인지 반증한다.

그의 정신은 이제 오로지 한곳에 집중되며 고도로 순수해진다. 그러면서 이곳에 오르게 된 동기들은 연기처럼 사그라들어 버린다.

그동안 등반을 하며 경험을 터득한 진리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루트나 날씨와 마찬가지로 이런 경험에서 나오는 가르침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233”

두려움에 떨며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바라는 안일함과 싸우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지녀야 하는 걸까? 234”

맬러리의 시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에베레스트에 단독으로 그것도 최초로 오르고 싶다는 야심 등 이런 모든 피상적인 동기들은 이미 깨끗이 날아가 버려다. 지금 나를 이끄는 힘은 나 자신, 그리고 심리학자의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240”

 

다음날8,220m까지 고도를 올리면서 고통은 더욱 심해져다. 하지만 한발한발에 집중하며 쉬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멈추어 서는 것, 계속 걷는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게 계속 가고자 하는 의지에 힘을 북돋워준다. 성공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간다는 체험은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는 기쁨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동안 정상을 추구하는 것만 이야기하느라 등반하면서 느끼는 이런 만족감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247

 

대망의 20일이 밝았다. 흐린 날씨로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뒷일은 이제 신경쓰지 않았다. 모든 장비를 텐트에 두고 카메라만 챙겨 정상을 향해 계속 올랏다. 희박한 공기와 가파른 지형이 그를 위협했다. 그는 맘을 다잡는다.

과거를 돌이키거나 내일을 생각하지 말자. 올라가려는 의지를 꺽는 절박함을 누를 방법은 이것 뿐이다. 272

 

그리고 오후3시 그는 안개에 쌓인 알루미늄 삼각대를 발견한다. 바로 정상이었다. 하지만 희열을 느끼기 보다는 담담하다. 정상은 단지 그에게 수단에 불과할 뿐 진정한 목표는 죽음에 맞서 자신을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인간 정신의 높은 향상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이다. 우리는 간혹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다.

해냈다는 승리의 도취감은 없다. 그냥 너무 피곤하기만 하다. 이 순간, 특별하다거나 행복하다는 느낌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것은 미리 예견했던 바다. 정상 등정은 내가 설정한 목표가 이루어졌다는 일종의 마침표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나는 차분해진다. …..나 자신은 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애써도 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시시포스다.283

 

그는 결국 살아서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인간을 절망끝에서 깨달음을 얻곤한다. 죽음의 경계 임계점까지 다가선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에베레스트는 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죽음의 경계까지 모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메스너가 진정 원하던 삶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것이 이 등반의 동기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죽음이야말로 내 태도를 바꾸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나는 이처럼 경계,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 가까이 가본 적이 없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서서,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에 서서 나는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경험했다. 이번 등반처럼 내 존재를 뒤흔든 경험은 없다. 아마도 이번에 나는 경계를 뛰어넘는 도약을 한 게 아닐까? 물론 이 도약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이 도약의 의미를 차분히 새겨야만 한다. 인간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환경에서 몇 주 동안 벌인 생존투쟁은 나를 바꾸어 놓았다. 303

 

메스너가 등반하면서 느꼈던 시간의 상대성에 관한 사색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왔던 중력이 강한 행성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절대적인 시간의 틀 속에서 살아가지만 흘러가는 시간은 각기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등반은 매일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산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는 동안 시간은 평소 일상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다. 정상을 오르며 무수히 많은 감각적 인상을 받은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런 인상 가운데 기억 속에 저장되지 못하고 흐러가버리느 ㄴ것 역시 무수히 많다. 다른 한편으로 정상 등정은 300킬로미터를 가는 여행과 마찬가지로 대체 이게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로 더딘 시간을 느낀다. 말하자면 무수히 작은 순간들로 이뤄진 영원이랄까. 그 작은 순간들은 붓질한 색이 번지듯 빠르게 기억속에서 흐려진다. 304

 

성공 적인 등반으로 메스너는  중국 및 유럽 언론으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기록과 흥미거리 위주였다. 이에 메스너의 촌철살인의 답을 내놓는다. 그의 등반 철학을 다시금 볼 수 있는 대복이었다.

 

출발에 앞서 질문 이어졌다. 왜 에베레스트 정상에 두 번이나 올라가야 했느냐? 필요한 돈은 누가 주었느냐? 어떤 사람이 후원을 했느냐? 어떤 국기를 가지고 갔는지도 물었다. 어느 나라를 대표해 등반하느냐?

나는 말했다. 등반은 오로지 나의 욕구로 내가 경비를 마련해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내가 나의 고향이며, 내 손수건이 곧 내 국기입니다” “307

 

유럽에서도 사람들은 내 기록, 메스너의 무의미한 기록 중독에만 관심을 가졌다. 나의 단독등반은 미지의 차원으로 올라서려는 탐험이다. 몬순 시기의 날씨만 미지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몸, 더 나아가 인간 정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한계는 언제나 미지의 것으로 남아 우리의 도전을 자극한다. 등반가로서 내가 오른 정점이 이제 내 디에 놓였다.”308

 

 

메스너의 글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영감을 준다. 그가 산에서 경험한 수많은 상황들과 우리의 인생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오는 공감때문이 아닐까.

많은 나이에도 2016년 까지 고비 사막으로 모험을 떠나고 최근에는 울산 산악영화제에 참석하는 등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정력적인 그의 모습은 내게 많은 귀감이 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많은 힘이 된다.

나는 다시금 길을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함은 나에게 견디기 힘든 짐이다. 나를 가능성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도록 모든 힘을 쏟게 만드는 욕구는 이런 부담감에서 나온다. 삶의 기쁨을 누리며 이런 도전을 감행할 때 행복감이 샘솟는다. 이제 다른 산이, 내가 알지 못하는 풍경이 내 안에서 생동히기 시작했다.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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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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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지금껏 내가 만나 왔던 많은 주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직장생활 할 때 출산으로 인해 정규직의 여직원이 퇴사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모습을 보아왔다. 
또한, 회식 때 직급이 높은 상사 옆에 여직원 자리를 배치하고 술 따르는 모습, 상사의 노래방에서 위험 수위 수준의 여직원에게 신체접촉 등 그때는 뭔가 잘못인지 알면서도 쉬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당하는 입장에 대해 진지하게 공감하지 못했고 하려는 노력조차 안 했다.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으로 자리를 비울 때도, 아이 때문에 일찍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도 이래서 남자직원을 회사에서는 선호한다는 말을 동료들과 했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 육아에만 전념하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 또한 어떠한가. 육아에만 매달리면서 그들의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사회로부터 배제되면서 가정에 유폐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살아오신 모습을 보고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충분히 인지하고 생각해낼 수 있는 문제였다. 그만큼 주변에 관심 없이 살아왔다. 

건물 안에 있을 때보다 밖에 있을 때 안을 더 자세히 볼 수도 있는 법이다. 
너무 가까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떠한 점만 보려 했고 전체적인 면을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예전과는 상황이 바뀌어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 보니 인제야 사회가 힘없는 개인에게 가하는 차별이 눈에 보이고 공감이 가기 시작하고 관심을 끌게 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제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이제 접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현재 고민하는 사람에게 같잖은 조언 따위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경험해볼 수는 없지만, 많이 조심스러워진다. 

지금의 나는 사회 부조리와 차별에 반대해 권력자에게 저항할 수 있을까. 
쉽게 자신할 수 없다. 전에 비해 변한 것이 있다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깨닫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느냐가 관건이다. 주변이 조금씩 더 좋은 환경으로 바뀔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더는 김지영 씨 같은 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를 꿈꾸며…






<책속 문장>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권력자에게 항의해서 바꾸었다. 유나에게도, 김지영 씨에게도, 끝 번호 여자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약간의 비판 의식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겼는데, 그런데도 그때는 몰랐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46

 

1990년대까지도 한국은 출생 성비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나라였다. 김지영 씨가 태어났던 1982년에는 여야 100명당 106.8명의 남아가 태어났는데, 남아의 비율이 점점 높아져 1990년에는 116.5명이 되었다. 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103명에서 107명이다.. 53

 

한번은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다 교문에서 붙잡힌 여학생이 왜 남학생들에게만 면티와 운동화를 허용하느냐고 항의했다. 선도부 교사는 남자애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결국 여학생은 괘씸죄까지 더해져 오리걸음으로 운동장을 돌아야 했다. 교사는 쭈그려 앉으면 속옷이 보일 수 있으니 치맛단을 잘 붙잡으라고 말했지만 여학생은 끝까지 치맛단을 추스리지 않았다. …..역시 복장 불량으로 적발되어 나란히 교무실로 끌려가던 같은 반 아이가 왜 치맛단을 붙잡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 옷차림이 얼마나 불편한 건지 두 눈으로 확인하라고.”

학칙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도부와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의 면티와 운동화를 모르는 척했다. 56

 

김은영 씨가 스무 살이던 1999년에는 남녀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됐고, 김지영 씨가 스무 살이던 2001년에는 여성부가 출범했다. 72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 하는구나.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93

 

김지영씨가 졸업하던 2005, 한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100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채용 비율은 29.6퍼센트였다. 겨우 그 수치를 두고도 여풍이 거세다고들 했다. 96

 

나 원래 첫 손님으로 여자 안 태우는데, 딱 보니까 면접가는 거 같아서 태워 준 거야

영업 중인 빈 택시 잡아 돈 내고 타면서 고마워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배려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항의를 해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고, 괜한 말싸움을 하기도 싫어 김지영 씨는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101

 

나란히 앉아 있던 과장이 맥주잔과 수저를 들고 일어서며 김지영 씨에게 부장 옆에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김지영 씨는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고 수치스럽고 죽어도 그 자리에 앉기가 싫었다. 116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 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그렇게 멀어지다가 그 밤 일로 크게 싸웠다. 119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 원으로 봤을 때 OECD 평균 여성 임금은 84 4000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 3000원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꼽혔다. 124

 

결국 호주제는 폐지되었다. 2005 2월에 호주제가 헌법상의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왔고, 곧 호주제 폐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정 민법이 공포되어 2008 1 1일부터 시행됐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호적 같은 것은 없고, 사람들은 각자의 등록부를 가지고 잘 살고 있다.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혼인신고 할 때 부부가 합의했다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경우는 호주제가 폐지된 2008 65건을 시작으로 매년 200건 안팎에 불과하다 132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146

 

낮 시간 강좌들은 대부분 취미반이거나 독서, 논술, 역사 지도사 같은 어린이 대상 강사 자격증 준비반이었다. 여유가 있으면 취미 생활을 하고, 여유가 없으면 내 애든 남의 애든 가르치라는 건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관심사와 재능까지 제한받는 기분이었다. 163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돼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를 위한 것들만 허락된다. 아이를 위해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써야 하고, 아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 받는다.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를,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사회의 의무인데, 개별 가정에서 대부분 엄마가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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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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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란 무엇일까. 단순희 책을 읽고 감명을 받고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 물론 변화에 대한 저마다의 정의가 있을 것이다. ‘담론에서 작가는 단순히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된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는 완성될 수 없음을 뜻한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관계 즉 관계는 담론의 일관된 화두다. 작가는20년간의 수형생활 동안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변화란 개인만의 생각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통하여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래식이 위대한 것은 시대의 조류에 상관없이 언제나 새로운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담론에서의 고전 재해석 또한 새롭다. 그리고 수형생활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를 통한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 시키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찰을 통한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그와 함께 생활하던 수형 생활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고 같은 처지에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바로 입장의 동일함은 관계의 최고의 형태라고 강조한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인간관계의 단절이 심화되는 이 시대에 담론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면서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고, 도우면서 감사하자고 한다. 함께 한다는 것. 그러면서 작은 변화부터 실천하여 이뤄내는 것. 그러면서 세상을 향한 자부심을 가지고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는 것. 이것이 고인이 된 작가의 마지막 유훈인 듯 싶다.

자신이 외롭고 혼자라고 느낄 때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은 축 처진 어깨를 어루만져주면서 함께 옆에서 말없이 서 있어줄 것이다.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자각하고 스스로를 바꾸어 가기를 결심하는 변화의 시작, 탈주이고 새로운 관계의 조직이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서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바꾸어 말한다면 정체성이란 내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독서 후 망각하는 것은 단순히 독서로 끝나버려서 이다. 책을 읽었으면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 책을 찢어버려야 한다.”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승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차이와 다양성은 그것을 존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차이는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출발 이어야 한다. 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노마디즘(유목주의)

 

똘레랑스는 은패된 패권 논리다. 타자를 바깥에 세워두는 것이기 때문에 타자가 언젠가 동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강자의 여유이기는 하지만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탈주와 노마디즘은 아니다

 

자기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써 변화가 완성된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사람 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맺고있는 인간관계가 자기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이다.”

 

변화는 결코 개인 단위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변화는 잠재적 가능성으로서 그 사람속에 담지되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다만 가능성으로서 잠재되어 있다가 당면의 상황속에서, 영위하는 일 속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자기 개조와 변화의 양태는 잠재적 가능성일 뿐이다. 그런 변화와 개조를 개인의 것으로, 또 완성된 형태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근대적 사고의 자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이 최고의 경청이다

 

대전의 노랑머리 창녀의 사례를 보며, 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면서 그 사람의 품행에 대해서 관여한다는 것, 인간의 오만과 천박함,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수순한 어떤 것을 상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왜소한 인간관이 아닐 수 없다.”

 

무궁화는 덕이 있는 꽃이다. 벌레와 함께 진드기까지 함께 살아가지 않느냐.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 꽃은 사람들의 찬탄을 받기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아름다움을 위해 피는것도 아니다. 빛과 향기를 발하는 것은 나비를 부르기 위해서다. 오로지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다. 시들어서 더 이상 꽃이 아니라 하지만 그 자리에 남아서 자라고 열매를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려는 모정이다. 꽃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무궁화는 아름답다.”

 

약자의 위악과 강자의 위선, 약자의 위악은 잘 보이지만 강자의 위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보지 못한다.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걷어 내는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는 우리의 동공을 외부로 향하여 여는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 심화하는 인간화가 아닐 수 없다.”

 

참된 인식이란 관계맺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식이란 주체와 대상의 엄숙한 혼혈의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관계없이 인식 없다

 

머리좋은 것이 마음 좋은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것만 못한 법이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 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이다.”

 

인식은 그것이 어떤것에 대한 인식이든 가장 밑바탕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러닝셔츠 없어도, 치약 없어도 떳떳한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물질적 조건이 나아지는 것도 어려움을 견디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차라리 그런 것이 없더라도 떳떳한 자존심이 역경을 견디는 데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자부심은 고난을 견디게 한다. 물질적 도움 보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된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혹서의 교도서 안에서의 고통,, 옆 사람을 향하여 부당한 증오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 그 증오를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들어내고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동을 들어내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겨울을 선호한다. 몸이 차가울수록 정신은 은화처럼 맑아지기 때문이다. 겨울은 어지러운 생각을 청리하는 철학의 계절이다. 기상 한 시간 전에 일어나 찬 벽에 기대고 앉아서 열중했던 명상명상은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는 정신적 탈옥이다. 강의의 화두로 삼고있는 관계론의 산실이 겨울 독방이었다.

세계는 관계다. 나는 관계다. 아픔과 기쁨의 근원은 관계다

나의 겨울 독방은 무한한 시공으로 열려있는 정신적 비약이었다.”

 

증오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 감각에 의해서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란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며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지금을 그때만큼 춥지않다. 덥지도 않다.

자신의 생각을 서슬 푸르게 벼를 수 있는 계절이 없다. 그것은 어디에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과제라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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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의 미학이란 것은 극한 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이공이산寓公移山을 쓴다고 하자. 첫 획을 너무 위로 치켜 그었다고해서 그것을 지우고 다시 쓸수는 없다. 인생과 마찮가지다. 지우고 다시 쓰거나 개칠치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획으로 그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 자字가 잘못된 경우에는 그 다음 자 또는 그 다음다음 자로 보완해야 한다. 한 행은 그 다음 행으로, 그리고 한 연은 그 옆의 연으로 조정하고 조정시켜가야 한다. 그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서 써야 한다. 그렇게 하여 얻게되는 한 폭의 글씨에는 실패와 사과와 감사등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담긴다. 서로의 관계론은 획,,,연의 조화에 그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루워야 한다. 상당한 정도의 필력이면 까만 부분을 보지 않아도 된다. 하얀 부분이 얼마나 더 남았나를 더 많이 본다.”

 

 

처럼 한 획의 실수는 그 다음 획으로, 또 한 글자의 실수는 그 다음 글자로 만회해 가면서 씁니다. 자연히 획과 획, 글자와 글자가 서로 기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방서와 낙관을 합니다. 전체 균형에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실수와 사과와 도움과 감사가 어우러져 있는, 그러기에 삶과 인생이 그 속에 담겨있는 경우 그것을 서로의 격조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를 테면 구조에 있어서의 서도의 관계론이다.”

 

사람의 학식이 글에 담긴다. ,,사상과 뜻이 글에 담긴다. 최종적으로 그 사람과 같다.”

 

최고의 기교는 졸렬한 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기교라는 것은 반 자연이다. 붓글씨도 마찬가지다. 명필이나 대가의 글씨는 졸렬하다. 졸렬해 보인다. 날렵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어리숙하다. 어리숙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진정성이 느껴지고 싫증이 나지 않느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단편작품 명인전’, 불사지사

 

대인춘풍 지기추상,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해야 한다

 

콜롬버스의 계란 세우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단순히 발상의 전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계란의 모양은 어미 닭이 체온을 골고루 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어미품을 빠져나가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끔 만들어진 타원형의 구조이다. 바로 생명의 모양이다. 이것을 깨뜨려 세운다는 것은 발상의 전황이기에 앞서 생명에 대한 잔혹한 폭력이다.”

 

보르헤스 촛불, 촛불은 어둠을 밀어낼 수 있을뿐 그 대신 별을 보지 못하게 한다

 

 

나 자신이 등가물이었던 경험을 소개하겠다. 나는 오로지 무게로만 서있었던 경험이 있다. 자르는 나무가 움직이지 않도록 밟고 있는 역할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내게는 나무를 밟고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몸무게 이외에도 여러가지 능력이 있다. 그런것이 모두 사장되고 오로지 몸무게 으로서만 의미가 있구나 하는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등가물은 그 물건의 속성이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교환 가치만 남아있는 것이다.”

 

 

조광조가 죽고나서 우리나라 개혁 세력들이 일대 반성을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된다.

중앙->지방, 정치투쟁->사상투쟁, 기동전->진지전으로…”

 

 

갇히지 않는 사유, 100년후는 아니더라도 10년 후, 20년 후의 사유를 선취先取 할 수 있는 그런 사회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식인 담론의 실천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한다. 만난 사람과 겪은 일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과 일들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관계다를 주장하는 이유다. 독방은 내게 최고의 철학 교실이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 깨달음과 공부였다.

반 에덴의 동화 어린요한의 한 구절 버섯이야기….

 

이건 독버섯이야….~~~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 논리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한다. ‘자기의 이유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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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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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끊임없이 전진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도전하는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워 보인다. 미지로의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소설인 줄 알았으나 1996년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기록한 기록물이었다. 읽으면서 알았는데 최근에 개봉한 에베레스트라는 영화가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내용이다.

작가 자신의 직접 경험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기록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또한, 에베레스트의 등반 역사 및 기타 원정등반에 대한 세부 상황을 매우 자세히 묘사했다. 전에 읽었던라인홀트 매스너의 글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존은 당시의 상황 재구성을 위해 당시 등반에 참여했던 주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사실이라 믿었던 진실들이 왜곡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기억이란 100%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항상 자신의 의도대로 왜곡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전부터 고산에서는 저산소증으로 인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1996년 당시 상황을 보며 역시 인간은 불안전한 존재이며 완벽한 계획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만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산소가 지상의 1/3밖에 없는 곳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정상 등정을 위한 설명서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 꼭 하산해야 한다는 것. 아무리 정상이 눈앞에 있더라도 시간이 되면 무조건 안전을 위하여 하산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밑 빠진 독 같은 욕망은 바로 눈앞의 목표를 두고 그들을 쉽게 돌아서게 하지 못한다. 그들을 돕는 가이드 또한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고객들의 안전을 망각해 버렸다. 등반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대형 참사 후 일본 원정대가 정상등정을 시도하던 중 조난상황에 빠진 인도 원정대원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이 그냥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치는 장면이 있다. 너무도 섬뜩한 장면이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목표를 눈앞에 두고, 자신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목표를 포기하고 조난자를 돕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상황에 있어 보지 않고는 누구도 자신은 어떻게 하리라 단언할 수 없으리라.

조난자를 구조하려는 정의에 넘치는 눈물겨운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러한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결국은 사람이 우선이 아닌가.

고산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다양한 욕망의 내면을 보면서 과연 이러한 상황이 꼭 고산에서만 벌어지는가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또한 또 하나의 에베레스트인 것이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무분별한 등반으로 인한 환경파괴, 셰르파족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문제점들 등 앞으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할 많은 질문을 이 책은 던져준다.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지혜가 쉽게 우러나오는 법이다

 

 

외로우므로 사람이며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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