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된 문장가, 최치원 - 최치원전 처음부터 제대로 우리 고전 4
김경희 지음, 하민석 그림 / 키위북스(어린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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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이와 재미있게 읽었던 키위북스의 ‘처음부터 제대로 우리 고전’ 시리즈의 신간이 나왔다. 이번엔 ‘최치원’의 이야기. 최치원이라니,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통일신라 시대의 인물이었던가, 그가 뭘 했었지? 하고 뒤적여보니 <계원필경>을 쓴 사람이란다. 아, 계원필경이라면 들어봤지! 그런데 그게, 무슨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더라?




1. <최치원전>은 통일신라 시대에 살았던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지은 소설이다. 역사 속 최치원 역시 <최치원전>속의 그처럼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격문을 지었으며 나중에는 가야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외의 부분에서는 실제와는 달리 ‘이야기’로 쓰였다고. 그도 그럴 것이 후기 통일신라 시기에 살았던 최치원이 어떤 유년기를 보냈는지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기 어려웠을 것이고, 남아있는 기록이란 열두 살이 되던 해인 868년에 홀로 당나라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 장원으로 급제한 일이 있다-정도일 텐데 이러한 사실들은 오늘의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당대로서는 정말이지 흔치 않았던 해외 유학생이었고, 그곳에서도 작지 않은 성공을 거두고 국내로 돌아왔으니 그의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할 터. 호기심과 시기심, 또 알게 모르게 있었을 텃새에 밀려 결국 그는 이것저것 국내 정치를 위해 시도해 보다 가야산으로 들어가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 실제 <최치원전> 원문은 어떤지 모르나, 이 책은 초등 저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쉬우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외로운 천재였던 최치원이 홀로 강자와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 또 그 싸움에서 어떻게 이겼는지 읽어냄으로써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 속 최치원의 유년기가 얼마나 기구한지. 그럼에도 이 아이는 또 얼마나 당당한지!)



“너의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구나. 아직 나이가 어린데 당나라에 가서 잘 할 수 있겠느냐?”


“그렇사옵니다. 만약 나이가 많아야 큰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왜 돌함 속의 물건을 알아내지 못하고 저 같은 어린아이에게 시를 짓게 하였답니까?”


치원의 대답에 임금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치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나라를 욕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신라가 당나라보다 크기가 작다고 무시해도 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러니 임금께서는 아무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오호, 듣던 대로 기개가 대단하구나! 그래, 당나라 황제가 무섭지 않느냐? 황제를 만나면 어떻게 대하겠느냐?”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어른이 어른다운 행동을 해야 아이 또한 어른을 공경하고 섬길 것입니다. 그런데 당나라는 큰 나라라고 섬김을 받을 생각만 하고 하는 짓은 그렇지 않사옵니다. 돌함 하나 보내고 꼬투리를 잡아 작은 나라를 치려고 했습니다. 당나라가 큰 나라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 작은 나라를 대접하지 않는데 어찌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겠습니까? 저는 이런 뜻으로 황제를 대하겠나이다.”


(‘신선이 된 문장가, 최치원’ 중에서)



그렇게 그는 다사다난했던 자신의 유년기와 가까스로 얻은 아내를 반도에 두고 당나라로 떠난다. 그가 떠난 뱃길은 때로 판타지이기도 했고, 때로는 영웅담이기도 했다. 누구 앞에 서더라도 늘 꼿꼿하고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최치원의 태도에서 무엇이 그의 어깨를 저리도 당당하게 펼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이 책을 함께 읽는 우리 아이도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거듭 바랐다.



3. 최치원을 몰랐기에,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최치원의 글을 찾아서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책에 중간중간 드러난 그의 문장들은 가히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특히 최치원의 아내 운영이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해 지은 시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을 울렸다.



백조는 쌍쌍이 짝을 지어 구름 속을 나부끼고


외로운 돛단배는 가다가다 푸른 하늘에 닿는구나.


이별 술에 노래 곱건만 기쁜 생각 전혀 없고


오랜 세월 등불 앞에 이내 시름 쌓이리라.



밤마다 동방에서 괴로워 말고 시름하지 마요.


꽃처럼 고운 얼굴 상할까 두렵소.


이번에 가면 공명을 마땅히 가져와서


그대와 함께 부귀 누리며 즐겁게 살리라.



4. 앞으로도 기대되는 ‘처음부터 제대로 우리 고전’ 시리즈! 매번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엄마가 훨씬 더 큰 인사이트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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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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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향'은 이름이자 단어이며, 강한 힘을 지닌다.


마법사가 외는 어떤 주문보다도


혹은 영혼이 응하는 어떤 주술보다도 강하다. 찰스 디킨스



0. 한동안 출판계를 뒤흔들었던 <파친코>를 드디어 읽는다. 이미 모두가 다 읽은 것 같아, 에이 다음에 읽지 뭐 하고 지나쳤는데 감사하게도 인플루엔셜에서 <파친코> 1권을 보내주셨다. 소설은 소문대로 몰입감이 상당했다. 1권만 해도 볼륨이 꽤 되는데, 그럼에도 순식간에 읽혔다. 최근 공부모임에서 일제 강점기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소설을 읽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선자의 이야기는 비단 개인의 것이기보다는 시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1. 소설의 도입부, 선자의 어머니 '양진'은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을 부쳐먹던 땅 주인이 땅을 빼앗기는 바람에 그나마 짓던 농사마저 짓지 못하게 된다. 딸이 줄줄이 넷이나 되었는데, 그중 가장 어렸던 양진은 너무 어려서 불평할 줄 몰랐고, 그나마 제일 적게 먹기 때문에 떠넘기기가 쉬웠다. 그렇게 양진은 열다섯에 시집와 선자를 낳았다. 선자는 양진 부부의 기쁨이었고, 희망이었다. 사랑을 담뿍 받으며 자란 선자는 누구보다 곧았고, 당당했다. 꽉 찬 사랑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품은 그녀를 빛나게 했다. 한수도 그 즈음 만났다. 선자에게 사랑은 아프게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이삭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삭은 모든 것을 품어주겠노라 했다. 선자는 그런 이삭이 고마웠고, 절대로 그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선자의 삶은 늘 고단했으나, 그 사이 어딘가에 꼭 숨 쉴 구멍이 있었다. 스스로는 빛날 데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숨길 수 없는 빛이 은은하게 늘 새어 나왔다.



2. 선자의 서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당대 사회상은 '그때였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많았다. 조선인들이 사는 빈민가인 이카이노가 그랬고, 목욕탕에 갈 곳이 없어 넝마를 걸치고 신발도 없이 다니니 시장에서 짐꾼 일도 못하는 조선인들이 그랬다. 두 사람이면 족할 방 한 칸에서 열댓 명이 살면서 남자들과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잠을 자기도 일쑤였다. 더러워서 더러운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더러웠다. 하지만 더러웠기에, 그들에게는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더러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이카이노는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할 마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판잣집들은 하나같이 조잡한 자재로 형편없이 지어져 있었다. 현관 입구 계단을 물청소하거나 창문을 닦아놓은 곳도 드문드문 있었지만, 대부분의 집 외관이 수리도 못 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엉겨 붙은 신문지와 타르지를 창문 안쪽에 붙여 가렸고, 갈라진 틈을 막으려고 나무 쐐기를 박아놓았다. 함석지붕은 대체로 녹슬어 구멍이 나 있었다. 집들은 싸구려나 주운 재료로 거주자들이 직접 지은 것처럼 보였다. 오두막이나 천막보다 더 튼튼해 보이지도 않았다. 연기가 임시변통으로 만든 강철 굴뚝에서 피어올랐다. 봄날 저녁 치고는 따뜻했다. 누더기를 반쯤 걸친 아이들이 골목에서 잠든 술 취한 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요셉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현관 계단에서는 작은 남자아이가 똥을 누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163쪽)



3. 선자의 아이들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자랐지만 일본인일 수 없었다. 본토 아이들보다 일본어를 더 잘 말하고 잘 써도 그랬다. 노아는 스스로가 조선인인 것을 숨기려 했다. 그렇게 자란 것이 비단 노아만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자이니치들의 얼굴 없는 형상이 떠올랐다. 그들은 조선에서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조선인의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4. 선자의 남편 이름은 이삭, 이삭의 형은 요셉이다. 아이들의 이름은 각각 노아와 모자수(모세)라 지었다. 소설 속 이삭의 직업이 목사이고, 목사 가족의 이야기이니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가치가 배제되기 어려웠다. 이삭이 선자를 받아들일 때도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지 묻는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선자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한다.



창세기 속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해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처한다. 이삭 역시 비슷한 고초를 겪는다. 성경 속에서 이삭에게 어떤 선택권도 없었던 것처럼, <파친코>의 이삭 역시 아무 말 없이 그 고됨을 모두 견뎌낸다. 그렇게 소설은 자녀를 통해, 자신의 삶을 통해 계속된 신앙고백을 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사회상과 기독교가 맞물려 <파친코>는 묘한 힘을 뿜었다. 그것은 사랑이자 용서였고, 인내와 끈기였으며 충성과 헌신이었다.



5. 주문한 2권은 오늘 온다. 오늘 밤에 신나게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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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2 - 천손신화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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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신화란 무엇입니까? 지어낸 얘기겠지요?


그러나 반드시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그 신화는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본문 중에서, 217쪽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 지 몰라 한참을 서성였다. 전쟁과 흔들리는 민심, 어떻게 해야 다시 나라를 올곧게 세울 수 있을까 하는 그들의 고민 사이에서 정치를 생각했다. 이때의 정치란 나라를 운영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치이기도, 개인과 그룹 사이의 정치이기도 했다. 많이 고민하여 대화하고, 설득하거나 설득당하는 사이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눈을 질끈 감고 숙고하던 숱한 밤이 있어 우리가 기억하는 오늘의 고구려가 있는 것. 남은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우리의 #담덕 은 이제야 태어났으므로!)



"오늘 우리 왕손 아기를 처음 대하고 보니, 짐이 생각해 둔 이름이 딱 들어맞는 것 같구나!"


"궁금하옵니다. 어서 말씀해 주시옵소서."


"담덕이 어떨까 싶네. 을두미 국상과 논의한 결과 짐이 담자를, 국상이 덕자를 내놓았지. 기본 뜻으로는 말 담 자인데, 그 안에는 '깊고 그윽하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덕 자 또한 기본은 크다는 뜻인데, 그 안에는 '은혜를 베풀다', '바로 서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네. 여보게, 아우! 담덕이 어떠한가?" (본문 중에서,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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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1 - 순풍과 역풍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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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 불세출의 영웅 #광개토태왕 #⚔️ (지리적 위치 때문에 가까이하기도 어려운) 광개토태왕비 비문 하나에 의존했던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진하게 만나보려고 한다. 과연 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어, 어떻게 끝맺어질까. #담덕 1권은 백제의 힘이 고구려보다 대단하던 때, 소수림왕이 평양성을 정복하러 나선 것으로 마무리된다. 길고 긴, 그리고 가슴이 웅장해질 이야기의 시작. 소설로 생명을 얻은 그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싶다. (#역덕 의 시작인가) 덧1. 역사를 소설로 만나 좋은 점은- 그것이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일 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웅장해지는 포인트는 단지 고구려와 백제의 원대했던 꿈뿐만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지혜 때문 아닐까 싶다. ​ “무술이라고 할 때 한자로 ‘무’자를 쓰는데, 그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굳셀 무자, 즉 강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그 무란 글자에는 ‘창 과’와 ‘그칠 지’자가 들어 있습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도록 힘을 키워 병장기를 들고 싸울 일이 없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무는 적을 죽이고 상처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호신과 활인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창으로 적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창으로 찌르는 것을 그치게 한다는 것… 무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86쪽) ​ ​ 덧2. 이제와 생각하면 역사의 타임라인 위에 그들의 하루하루가 아주 작은 행보로 느껴지지만, 그때의 순간들은 아무도 내일을 모르는 살아있는 것. 매 순간 숱한 선택지 위에서 고민해야 했던 그들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느껴져 지릿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들 어찌나 유려한 말솜씨를 지녔는지. 고고하면서도 차분하고, 동시에 대범하면서도 사려 깊은 그들의 목소리에 몇 번이고 반했다. ​ "폐하! 지금 고구려는 사막의 가시 많은 풀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사옵니다. 비가 내릴 때 많은 물을 뿌리에 축적해 놓지 않으면 사막의 풀은 말라죽습니다. 지금 고구려는 줄기를 키우기보다는 뿌리에 물을 축적해 놓을 때이옵니다. 사막의 풀이 작달만한 키에 잎도 없이 가시만 있는 것은 내리쬐는 태양열을 적게 받기 위함이옵니다. 만약 사막에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식물이 있다면 바람이 불 때 우쭐댈 수는 있으나 곧 고사하고 말 것이옵니다. 지금 고구려는 키를 낮추고 볼품없이 보이도록 하되, 뿌리를 튼튼히 하는 사막의 풀처럼 철저히 미래에 대비할 때이옵니다." (본문 중에서,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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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화당의 여장부, 박씨 - 박씨전 처음부터 제대로 우리 고전 3
김영미 지음, 소복이 그림 / 키위북스(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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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물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원더우먼 은 어쩐지 좀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영화도 한 편 본 적 없고, 수많은 남성 히어로들 사이에서 캐릭터를 다양화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했던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당당한 그 이미지만큼은 볼 때마다 좋더라고요. 그리고 종종 생각했더랬죠. 우리 여성 히어로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하고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오늘과 같아진지 얼마 되지 않고, 재능을 펼쳐 보일 기회도 적었기 때문에 여성히어로가 없을 거라는 의견에 수긍하게도 되지만, 그래도 사천 년 우리 역사 가운데 여성 히어로가 없을 리 없잖아요.



그래서 이 책 <피화당의 여장부, 박씨>는 더욱 반가운 책이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박씨전>을 아이들이 읽기 좋게 각색한 이 책은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자기만의 빛을 또렷하게 내었던 '박씨'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예요. <박씨전>이라는 제목이 낯설지는 않지만, 읽어본 적은 없기에- 저도 아이와 함께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답니다 :)


키위북스의 #처음부터제대로 시리즈는 아이들이 읽기 좋게 다시 썼으면서도, 내용의 탈락이 많지 않은 편이라 어른이 가볍게 읽기에도 좋았어요.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하고, 명료한 편입니다. 조선 인조때 한양 도성 북쪽에 있는 안국방 마을에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아들 시백을 도인 박처사의 딸과 혼례를 맺어주며 이야기가 시작돼요. (박처사를 만나러 가는 과정도 참 기이하고 재미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일이 한차례 지나가고- 시백은 박씨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의 얼굴을 보니 박색도 이런 박색이 없는겁니다. 그녀가 보여주는 뛰어난 솜씨에 시아버지인 득춘은 마음을 누그러트리지만, 아들 시백에게는 어림없는 일이었지요. 그렇게 화를 피한다는 '피화당'에서 지낸 지 3년, 박씨는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거듭납니다. 시백의 마음이 단박에 풀린 것은 물론이고, 그녀의 지혜와 용기, 대담함은 여전히 빛나 세상을 구합니다. 재주와 덕, 신묘한 책략과 도술을 모두 갖추었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그 공로가 드러나지 않아 <박씨전>을 지어 남겼다는 말로 이야기는 끝을 맺어요. (더할 나위 없이 멋지지요?)



읽는 내내 '크으-'하는 감탄을 연신 내뱉었고요,


아이는 '엄마 이 단어는 무슨 뜻이야?', '이건 무슨 말이야?'하고 묻다가 '으와 대박!'이랍니다.


여자는 인형놀이, 남자는 로봇 놀이나 달리기로 놀이를 나누어 생각하는 우리 꼬맹이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모르긴 몰라도 우리 역사에 이런 여성 히어로들이 더 많겠지요? 홍계월에 이어 박씨까지도 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멋진 언니로 남았습니다. 이참에 아이와 여성 히어로 고전을 더 찾아 읽어봐도 좋겠어요. 성별과 상관없이, 누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이 네가 가진 멋진 삶을 그저 풀어내면 된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아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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