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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ㅣ 트리플 9
신종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평점 :
1) 소설가는 실제 보드게임의 공용 장비인 구각뿔 주사위 두 개를 반드시 사용할 것.
2) 텍스트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합: 0~99 사이의 값만큼만 전진할 수 있다.
3) 주사위를 굴리는 횟수는 열 번으로 제한하는데, 열 개의 평면 픽션을 새로운 십면체 주사위의 눈으로 구부려 접기 위함이다.
4) 위의 세 가지 게임 규칙은 석촌동에 거주하는 게임 기자이자 보드게임 마스터 이명규의 마스터링 아래 협의되었다. (아나톨리아의 눈, 본문 47쪽)
1.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를 좋아한다.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에 모이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집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볼 수 있을 테고, 독자는 당대의 새로운 시도들을 시차 없이 마주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하여 이 책도 반가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하지만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덮어두었다. 나는 또 한 번 나의 난독증을 의심해야 했다. 그러다 어제, 새해 첫 외출을 준비하면서 이 책이 다시 눈에 띄었다. 가방에 넣기 좋은 적당한 사이즈와 볼륨감... 때문이기도 했으나, 한 살 더 먹었으니 지난해의 내가 못 했던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민하게, 해설부터 읽었다.
2. 나보다 먼저, 깊게 이 소설을 마주한 문학평론가 이소는 감탄이거나 낙담인 사이에 이 소설이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 말에 기대감이 일었다. 먼저의 경험은 낙담에 가까웠으나, 감탄이 될 수도 있을까? 싶었다. 그 문장에 기대 세 편의 소설을 읽었다.
3. 책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다른 색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같은 팔레트를 쓴다. '아나톨리아의 눈' 서두에 등장하는 게임 규칙이 세 편의 소설에 모두 적용된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보기도 했더랬다. 소설가인 그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성실하게 게임 규칙을 따르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번에 굴릴 주사위에 어떤 숫자가 나올지 그도, 나도-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고, 그러니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것이 처음에는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더랬고, 나중에는 아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세 편의 소설이 모두 같은 규칙으로 쓰여진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 데는 화자와 직접 대결하는 외부의 목소리가 설정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였다. '고스트 프리퀀시'의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저자는 그의 내부를 돌아다니며 청각에, 시각에, 혹은 꿈에 결함을 일으키는 목소리를 작품 내부에 직접 내려앉히는 방식으로 작품을 써나갔다. 그리하여 세 편의 소설은 누군가의 독백인 것 같으면서도, 대화인- 하지만 누구와 나누는지 모를 어떤 대화처럼 빚어졌다.
4. 그 대화의 밖에서, 온전히 제3자의 눈으로 소설을 읽는 나로서는- 그러므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듣고 있는 소리가 내게는 들리지 않고, 그에게는 보이는 것이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꿈같이, 그에게는 분명히 보인다는 변기 위의 귀신같이. 그럼에도 어떤 장면들은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따옴표를 쓰지 않고 66과 99를 쓰던 친구는 오래 남았다. 그가 대학에 가서 쓴 빈 페이지들을 보며 적잖이 감탄했다. 그건, 아무나 내보일 수 없는 용기니까.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소설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목소리는 굽이치는 파흔을 남기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노이즈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소설가는 다시 불을 끈다. 주위를 더듬어 의자에 다가가 앉는다. 거기서 그가 하는 것은 단지 듣는 것이다. 어둠 또는 희미한 분광의 심박을 헤아려보듯, 작은 녹음기의 두 귀를 앞으로 내민 채.
3, 2, 1... REC [●] (고스트 프리퀀시, 98-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