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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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친구가 있다. 어느 날은 봤다가, 어느 날은 보지 않았다가- 그렇게 띄엄띄엄 친구의 일상을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동생이 그 친구의 일기를 매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 그래? 하고 물었을 때는 조금 놀라서였고, 재밌어서!라고 했을 때는 어쩐지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친구는 그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일종의 의식처럼 일기를 쓴다고 했다. 너무 오래 해온 일이라 빼먹은 날이면 어쩐지 찜찜하다고. 그래서 날짜가 며칠 지났더라도 기어코 그날의 일기를 쓴다고 했더랬다. 지구력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찾아볼 수 없는 나로서는 친구의 오랜 습관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런 습관이 내 친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네?



이 책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는 작가 박서련의 일기 모음집이다. 그가 이제까지 써왔던 무수한 일기 가운데 이 정도면 모두에게 공개해도 되겠지? 싶은 것들을 추린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기는 일기라 굉장히 사적인 기록이다. 그와 일면식도 없고, 접점을 찾기도 힘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꽁꽁 숨어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새벽시간의 탐앤탐스, 마라샹궈, 맥모닝, 위트앤시니컬같은 것. 내게도 어느 순간의 키워드가 될만한 것들을 바위 아래 숨겨진 보물을 찾듯 꺼내와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폈다. 글 쓰고, 게임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커피와 맥주를 마시는 작가이면서 청년이면서, 한국인인 박서련은 그렇게 나와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평행선을 그어갔다.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좀 그려지려나, 싶기도 했지만 끝내 그런 일은 없었다. 뭔가 암호화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사실 그녀의 일상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집중해서 읽지도 못했다. 다만, 그 경쾌한 기분이- 어깨에 힘을 다 빼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써 내려갔다는 '느낌'만이 남아 '일기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 연말연시에 일기 쓰고 싶은 일기라니, 너무나도 적절했다!)



지난 일기를 읽은 H가 왜 일기에 자기 얘기는 안 써주냐고 했다. 만나야 쓰지, 하고 심드렁하게 대꾸하고 나서 어떤 사람 생각을 했다. 스무 살 때 이글루스 블로그 쓰던 나한테 누가 영화예매권 두 장을 선물한 적이 있다. 오로지 내 일기에 언급되고 싶어서. 그게 뭐라고 이런 짓을 하나요, 물었더니 네 일기는 재미있고 네 일기에 내 이름이 나오면 나도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뭐 그런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다. 그 사람에 대한 최종적인 인상이 아주 나쁜 것과는 별개로, 이 하나는 내게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있다. (본문 중에서, 137-138쪽)



나란 사람은 워낙 충동적이면서도 재미는 없는지라- 아무리 어깨에 힘을 빼고 쓴다 한들 그렇게 가볍고 유쾌한 일기가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의식의 흐름을 좇다 보면, 어? 언제 내가 여기에 닿았어? 하는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고, 그것이 내게 재미있는 자극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재미있어하고, 나를 살리고, 내가 먹는, 혹은 잊을 수 없는 일들. 뭐, 그런 것들 모두가 나하고 나 사이의 일이니까, 나와 나 사이의 어떤 지점들을 내 마음대로 써보려고 한다. (재미없으면 뭐 또 어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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