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쏙 한국사 - 가까이 두고, 가볍게 읽는
구완회 지음, 조남준 그림 / 메가스터디북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1년 전의 내가 겪은 일도 가물가물하고,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과거는 전혀 다른 기억으로 얼굴을 바꾸는데, 하물며 백년 전일이라고 팩트 그 자체로 전해질 수 있을까?

 

역사는 참 재미있다. 지나간 시대와 인물들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보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1년 전의 일기를 들춰보면서 나 스스로에게조차 낯선 나의 기억을 발견할 때가 있기에, 언제나 역사책 앞에서도 늘 의문을 품는다. 이 기록의 다른 얼굴은 무엇일까, 다른 관점으로 이 기록을 보았을 때에도 과연 같은 역사로 느껴질까.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송시열이라는 인물을 지극히 고아하고 존경할만한 학자로 공부했던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각도에서의 송시열을 만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역사의 두 얼굴을 생생하게 느꼈던 것이다. 무엇보다 크게 체감했던 것은 역사는 팩트가 아니다라는 점이었다.

 

역사는 천의 얼굴을 가진 미지의 존재다. 지금 우리 시대에 붙인 이름표와 표정은 백년 후쯤에는 전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시대마다 역사는 다른 표정으로 다른 얼굴로 모습을 바꾼다. 하지만 그 다른 표정과 얼굴은 전혀 없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원래 거기 있었는데 우리 시대에는 알지 못했던 가치, 원래 그것이 사실이었는데도 후대가 왜곡해서 혹은 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몰랐던 내용들이 시간에 따라 수면 위로 떠오를 뿐이다. 때문에, 역사 앞에서 우리는 항상, 지금 우리가 보는 얼굴 반대편의 또 다른 얼굴의 역사를 생각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방 쏙 한국사]는 이런 의미에서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작정하고 재밌게 쓴 교양 한국사라고 했는데 정말 한 장, 한 장이 무척 재밌다. 교양 한국사라는 카피에도 크게 공감한다. 이런 역사책은 교양이라는 단어가 붙어도 어색할 게 전혀 없이 잘 어울린다. 이유인즉, 이 책에서 한국사를 서술하는 자세와 방향 때문이다.

저자는 석기시대부터의 인류사를 시작하여 한국사를 가로지르면서 뻔한 역사 상식을 나열하지 않는다. 소주제마다 사실로서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 매우 충실하지만 거기에 그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더했다. 지금 우리가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어두운 그림자, 우리문화 만이 최고라고 우기는 국수주의의 폐해, 우리가 제대로 챙기지 못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역사들과 지금 온라인에서 가장 핫한 주제 중 하나인 남녀평등이슈까지. 한국사의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다양하고 신선한 시각과 관점들이, 따분한 역사를 새롭고 재미있는 역사로 읽히게 돕는다. 생각 키우기, 묻어가는 세계사 등 재치 있는 꼭지들까지 섭렵하다보면 편협하지 않고 구태의연하지 않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양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서두에 더 재미있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역사읽기가 필요하다는, 겸손한 입장을 밝혔지만 나는 거기에 좀더 많은 무게를 더하고 싶다. 교양을 갖춘, 무례하지 않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역사를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 균형 있는 시각과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역사를 알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