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요 -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케리 이건 지음, 이나경 옮김 / 부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군대나 감옥 혹은 병원 등의 기관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 역할로 일하는 성직자들을 채플런이라고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성직자가 있다는 건 전에 들었지만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살아요]를 통해 처음 알았다.

 

채플런으로 일하고 있는 케리 이건은 그가 만났던 다양한 환자들과의 대화와 기억을 책으로 엮어 냈다. 환자들은 저마다 살아온 방식, 배경, 과정이 너무나 다르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한결같이 그러니 그대는 삶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 지엄한 명제 앞에는 어떤 부정도, 의심도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은 이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관문을 진지하게 혹은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그런 것 같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통장을 비우겠다거나, 어차피 죽을 때 죽을테니 오늘은 후회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겠다는 지인들을 보면 죽음이란 도리어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고 희화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면 족할 것 같다.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삶에 충실하다'는 내용이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살것 같아 덧붙이자면, 삶에 충실함은 절대 오늘만 살고 죽겠다와 같은 뜻은 아니다.

 

케리 이건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삶에 충실함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약 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면 나는 더 많이 춤을 췄을 것이라고. 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면 나는 더 건강한 몸을 누리고 지켰을 것이라고.

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면 그 당시에는 나를 죽고싶게 만들었던 그 고통들이 변이하는 시간들을 좀더 여유롭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것이 달든 쓰든,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삶의 순간들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겸허하게 시간과 생을 성찰해보고 거기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이 책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꼈다.

 

성직자가 쓴 책이다보니 중간중간 영적인 이야기나 기독교 신학적인 저자의 의견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부분들은 사족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환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저자 본인이 겪었던 정신병과 그 고통에 대한 생생한 증언 그리고 성찰은 환자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겸손함과 겸허함이라는 삶의 자세를 배우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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