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 뱀 한중일 비교문화 십이지신 시리즈 4
이어령 책임편집 / 열림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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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겨울 바람에 바싹 얼어버린 감나무 가지에 까치가 날아와 앉는다. 동네 어르신들은 아침 햇살에 매달리는 까치 울음에 '좋은 손님이 오시려나.' 눈웃음을 지으신다. 그러나 어쩌다 까마귀가 길게 목소리를 흘리며 서쪽으로 날아가기라도 하면 침을 뱉는다. '재수없게 왠 까마귀가 울어'. 길조 까치와 흉조 까마귀는, 그러나 북태평양의 시베리아에서는 창세의 신으로 추앙받고 아랍에서는 부를 가져오는 귀한 새로 여겨지기도 한다.

까치나 까마귀나 다 거뭇한 날개를 가진 새들일뿐더러 더구나 한국 까마귀나 시베리아 까마귀나 다 같은 까마귀일텐데, 까마귀 입장에서는 참 억울할 일이다. 여기 사는 까마귀는 재수없다는 소리를 숙명처럼 듣고 사는데 어데 까마귀는 신으로 대접받으니 기실 문제는 까마귀에 있는게 아니라 사람에게 있는 것이겠다.

 

 

인종과 종족의 차이, 환경과 역사의 차이는 이와 같이 그 문화를 들여다볼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특히나 산천과 동식물에 관련한 신화와 전설에는 거기 살고있는 사람들의 오랜 생활양상과 관습, 가치관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가 십이지신의 각 동물을 주제로 동아시아의 민속문화를 분석해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은 한국, 중국, 일본. 반만년 이상의 시간 동안 공존해온 이 세 나라(지역)의 같은 듯 매우 다른 문화를 아시아 공통의 '십이지'라는 문화 코드 속에서 풀어가고 있다.

내년 용의 해를 맞이하기 때문일까. 용으로 거듭나 승천하기 전의 꿈틀꿈틀 '뱀'이 이번 네번째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위에서 까마귀가 으례 '재수없다' 소리를 듣고 사는 것처럼 뱀 팔자도 그렇다. 아니 사실, 그보다 더 심하다. 까마귀는 돌을 던지고 마는 정도지만 (그나마도 날아가버리면 그만이지만) 뱀은 온갖 저주를 다 듣고 살뿐 아니라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다. 알을 많이 낳은 뱀의 생태적 특성은 사람들 사이에서 뱀을 정력의 화신으로 자리잡게 했단다. 그래서 뱀은 종종 산채로 잡혀서 독한 술 독에 담겨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종교나 기타 여러가지 속설들 때문이 크겠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뱀은 일단 징그럽게 생겨서 정 받기가 어렵다. 차가운 피부에 팔다리 없이 기어다니는 몸, 새파랗고 찢어진 눈, 날카롭게 휘날리는 혀. 서정주는 그의 시 [화사]에서 뱀의 야생적 아름다움에 대해 노래했지만 글쎄, 이번만큼은 그의 미적 감각에 동의할 수가 없다. 비호감과 혐오 사이를 아슬아슬 하게 오가며 오랜시간 눈총을 받아온 뱀은 과연 언제부터 이런 가혹한 대접을 받게 되었을까.

 

아주 멀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과 중국, 일본의 문화 속에서 뱀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위치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뱀은 아주 깨끗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지혜로운 동물이기도 한 반면에 징그럽고 사악한 동물로 가능한 한 멀리하고 꺼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민속에 뱀에 관한 인식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뱀은 죽은사람의 영혼, 명부의 수호신, 간교한 지혜와 애욕, 다산의 상징으로 묘사되고, 민간신앙에서는 업신, 당신의 수호신으로 모셔진다. 또 민속예술의 주제, 민간 의료의 주요한 약재로 쓰인다. 반면에 징그러운 요물로서 배척하는 상사일의 풍속도있다.

p212 한중일 뱀과 종교적 예식 - 천진기

 

 

수호신 - 불사불멸, 재생 뱀은 비록 그 외모나 행동거지가 아름답지는 못하나, 시대에 따라 달리 서로 부정과 긍정의 반복과 혼효 등 다른 상징으로 여러 다양한 의미를 아우르며 조형 미술 속에 등장한다. 오랜 세월 열두 띠 동물의 하나로도 한자 문화원 나름의 의미를 이어왔다.... 고대 유물 중에서 조각과 공예, 회화에 이르기까지 그 자취를 두루 살필 수 있다.

p96 한중일 회화 속의 뱀 , 이원복

 

 

오래전, 뱀은 중국에서는 창세신으로, 한국에서는 다산과 정력의 상징으로, 일본에서는 풍요를 관장하는 수신으로 군림했다.

농경사회에서 뱀은 알을 한꺼번에 많이 낳는 그 생태적 특성 때문에 풍요와 다산을 가져오는 동물로 여겼다. 남근을 닮은 머리와 몸통의 생김 때문에 한중일의 설화, 신화 등에서 뱀은 종종 변모한 남성 혹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중국의 창세신, 여와와 복희가 뱀 형상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구려 벽화 등에 자주 나타나는 현무 역시 뱀 형상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아 뱀이 십이지신 중의 하나로 이름만 남겨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신성시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한 동물로 오랜기간 저주를 받아온 서양 문화 속에서도 뱀은 풍요의 상징이라는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데 특히 이집트에서가 그렇다. 파라오가 쓴 관을 보시라. 클레오파트라가 괜히 뱀을 단짝으로 삼은 게 아니었다. )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 뱀]은 오랜기간 괄시 받아온 뱀의 허물을 한 겹 벗기고 '뱀'이라는 동물적 특성이 우리의 민속 문화 속에서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알려준다. 한국과 중국, 일본 각국의 문화가 조금씩 다른 데, 이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천진기, 이원복, 이나가 시게미 등 각국의 논객들은 회화, 조형 예술, 설화, 종교 등등 문화의 각 부문별로 주제를 나눠 뱀과 관련한 자료들을 제시하며 문화 속의 뱀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이가 그러더라. 내가 이 책을 골똘히 읽고 있는 것을 보더니 '왜 하필 뱀 이야기를 읽고 있어?' 하며 지나간다.

 

 

초록색 뱀이 에스라인을 자랑하고 있는 표지 때문일까, 혹은 '뱀'이라는 글자 자체만으로도 거부감을 느끼는 가치관 때문일까. 어쩌면 이 책은 '뱀'을 주제로 잡고 있기 때문에 꺼려질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뱀을 읽는 것은 뱀이 가지고 있는 사악함, 징그러움을 읽자는 것이 아니다. 까마귀를 바라보는 눈이 시대마다 지역마다 그 환경과 역사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그를 통해 각 시대와 지역의 문화 그리고 사람을 읽게 되는 것처럼 이 책이 그렇다. 문화를 읽고 사람을 읽는 책이다. 그러니 '뱀'이야기라고 해서 경기를 일으키지는 말기를..... 읽어두면 두고두고 (잡다한 지식과 넓고 얕은 앎 자랑에) 도움이 될 꺼리들이 가득하니 읽고나서 후회는 없는 유익한 책이다.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 이전의 시리즈를 찾아보게 할 뿐더러 앞으로 나올 시리즈마저 기대하게 하는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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