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명연설 - 역사의 순간마다 대중의 마음을 울린 목소리의 향연
에드워드 험프리 지음, 홍선영 옮김 / 베이직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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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등장하는 남녀 연설가 서른네 명은 각기 당대의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들 모두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그중 9명은 자신의 신념을 표출한 대가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공인으로 사는 삶이 위험천만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이들 연설은 암살, 사형, 전쟁 등과 연계되면서 등장하는 단어와 문구들을 더욱 깊이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시켰다.
책 6쪽 머리말 중에서

 

 윈스턴 처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정치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흔히 ‘불독’에 비유되는 저돌적이고 집요한 투쟁력에 대한 존경도 있고 당장의 안정과 인정보다는 모두에게 긍정적인 장래를 내다본 정치인이기에 갖게 되는 선망도 있다. 무엇보다 겁나 부지런한 양반이었다는 사실에 리스펙트.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데, 난세 속에 백성이 도탄에 빠진 우리나라에는 윈스턴 처칠 같은 인물이 절실하다.

 

 [위대한 명연설]을 읽어보자고 마음 먹게 된 건 윈스턴 처칠의 연설문들 때문이었다. 영국의 민심을 하나로 규합하고 혼란의 시대에 가느다란 희망을 바라보게 만든 처칠의 연설문들을 보기 좋은 책으로 가지고만 있어도 넘 뿌듯한 일이다. 그렇게 시작한 [위대한 명연설] 독서는 예상치 못한 명문들을 잔뜩 건지게 해주었다. 월척의 연속. 만선이다.

 

 아주 멀리는 400년 전의 엘리자베스 1세의 연설로부터 가장 최근으로는 2008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연설까지가 이 한 권의 책에 실려 있다. [위대한 명연설]은 고금의 34명을 추려 그들의 명연설을 한 권으로 엮었는데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인물도 있지만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인물들도 적지 않다.

 

 

 저기 검은 옷을 입은 작은 신사분이 여성은 남성만큼 권리를 누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럼 당신의 그리스도는 어디서 왔습니까? 당신의 그리스도는 대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바로 신과 여성에게서 오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와 아무 관련이 없었던 것은 바로 남성입니다.
 신이 창조한 최초의 여성이 힘이 센 나머지 혼자 힘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면, 세상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도 바로 그 여성들입니다! 지금 그런 요구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으니 남성들은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55쪽 
소저너 트루스의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오하이오주 애크론, 애크론 총회, 1851년 5월 29일 연설

 

 

 굉장히 인상적인 연설들은 미국 내 흑인 인권과 여성 인권에 대한 것들이었다. 소저너 트루스(이사벨라 바움프리)는 흑인 여성으로 노예였다가 탈출한 후 인권운동가로 활약했다고 한다. 그가 1851년에 한 연설인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는 구구절절 팩폭으로 꽉차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이중고를 겪었을 흑인 여성으로서 그녀가 목도하고 체험한 온갖 부조리와 부당함과 불의를 타인인 나는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녀가 연설에 담은 한 문장, 한 문장에는 그 답답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잘 드러난다. 마치 뜨거운 물에 티백을 우려내 하 모금, 한 모금 찻잎의 생전의 기억을 오롯하게 느끼게 되는 것처럼.

 

 이 책의 엮은이는 남성 정치가들이나 인권운동가 등의 연설문 뿐 아니라 여성들의 연설문도 균형있게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역사 속에서 가치 있는 궤적을 그린 연설문들을 시간 순으로 차례로 정리하면서 각 연설문의 주제 역시 다채롭게 구성했다.

 

 

 여러분 역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 채 일시적인 구원만 생각하는 무수한 군중 틈에 서려는 것입니까? 저는 어떠한 정신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아낼 것입니다. 최악의 사태를 파악하여 이에 대비할 것입니다.
 제 발길을 인도해줄 등불은 단 하나, 바로 경험의 등불입니다. 미래를 판단하는 길은 과거를 비추는 것밖에 없습니다.
37쪽
패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 윌리엄스버그, 세인트 존 성당, 1775년 3월 23일 연설

 

 

 미래를 판단하는 길은 과거를 비추는 것, 다른 말로 하면 과거에 현재였을 수많은 시간을 밝혔던 그 언어들을 읽는 것이다. 혼란과 불확실의 현재 속에서 경험의 등불을 굳세게 지피고 길을 찾는 일이다. 오늘 밖에 모르는 우리는 오늘날이 인류 역사 이래 가장 혼란한 시대인 것처럼 느끼지만 실상은 어느 때나 인간들의 삶은 혼란했다. 그 와중에서 이미 길을 찾은 과거이기에 우리에게는 지나간 역사가 명료하게 보일 뿐. [위대한 명연설]을 읽는 건 과거를 비추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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