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상구 -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4
제정임 엮음 / 오월의봄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생존을 위한 앎을 호소하는 한 권의 책이 있다. [마지막 비상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학생과 교수진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 매체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연재한 탐사보도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을 묶은 책이다.

 

 “이런 상상도 못했던 사태는 우리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여러분에게도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책 182쪽 후쿠시마에 거주했던 현지인의 전언

 

 대형 산불이나 태풍과 같은 이상 기후, 후쿠시마 원전 같은 역대급 사고들의 뉴스를 읽으면서도 이게 내 현실의 문제라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이다. 책의 중반을 읽다가 후쿠시마 이주민의 전언을 읽고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얼얼해서 반쯤 누운 자세에서 일어났다. 상상도 못했던 사태가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어서 현실감이 없었던 것일까? 


 기후 변화와 그로 말미암은 사건‧사고를 전하는 국제뉴스의 댓글란에는 ‘적어도 내가 살 동안에는 지구가 버텨주겠지’ 따위의 반응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이미 백세 시대에 접어들었다. 싫든 좋든, 칠십 세가 넘으면 죽음을 직면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3막을 준비하고 꾸역꾸역 백세를 생존하게 된 사람들이란 말이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후세를 위한 고결한 배려나 선택 같은 게 아니다. 이는 오늘 당장의 문제이며 내 생존이 걸린 이슈다. [마지막 비상구]에 실린 기사들이 궁극적으로 호소하는 건 ‘지금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당장 우리부터가 멸종’하게 된다는 명료한 현실이다.

 

 


 

 모든 일엔 대가가 있다. 에너지 사용이 공기로 호흡하는 일처럼 쉬워진 우리 시대에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시에는 꼭 마스크를 쓰게 되었고 전력을 공급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부작용이 삶을 무너뜨리게 된 건 우연일까. 쉽고 편하게 에너지를 공급하고(받고) 그를 통하여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하여 지나온 시간들의 대가가 바로 이 현실이다. [마지막 비상구]는 이 현실을 아주 명명백백히 취재하여 독자 앞에 제시한다. 기후 위기에 무척이나 둔감한 한국, 한국 원전의 문제점, 핵마피아의 유착과 비리 사례 등 일반 독자나 보통의 시민으로서는 접하기 어렵거나 접할 수는 있더라도 무지 애를 써야만 하는 현실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보도 기사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며 독자가 자연스레 일깨우게 되는 건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의 문제는 어느 한 국가나 특정 도시인이 아닌 세계 공동이 대응해야 할 문제라는 점 그리고 특히 한국인이 더욱 민감하고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 한국인이 더욱 민감하게 이 문제에 주목해야 하느냐? 현재의 우리는 너무나 둔감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물자를 아끼고 환경 보호에 애를 쓰는 나조차 [마지막 비상구]를 읽기 전에는 몰랐다.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대지가 아니라는 사실, 경주와 포항의 원전은 너무나 오래되었고 위태롭다는 사실, 더구나 노후한 설비를 운전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안일하고 안전에 불감해 있는데다 사고시 주민들을 구할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매뉴얼조차 없다는 사실, 한국이 세계에서 온실가스 배출 7위이며 플라스틱 사용량은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원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원전 기술의 탁월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술이 탁월하다고 재난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괜찮을 거라는 낙관으로는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던 ‘쓰나미(와 같은, 모든 종류의 자연 재해)’를 예측할 수도, 방어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원전을 가동하면서 생기는 핵폐기물 소위 원전쓰레기를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핵폐기물은 썩지도, 분해되지도 못한다. 콘크리트 창고 안에 최소 10만 년간 봉인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런 쓰레기를 만들어서 땅 속에 묻어두겠다는 생각자체가 이젠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 최소한의 10만 년의 관리가 필요한 맹독성위험물질을 우리가 만들고 묵인하는 건 무책임한 일(책 105쪽)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원전이 아무리 탁월한 기술로 값싼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이상 이제 원전은 다른 에너지 생산 기술로 대체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핵폐기물의 위험을 절감하는 시민은 왜 이다지도 적은가?  


 [마지막 비상구]의 2장 찬핵 세력의 거짓말을 읽으면서 정말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부분은 한수원을 비롯한 원자력 관련 기관이 언론 집단에게 뿌린 보도 협찬비 내역이다. ‘안전한 원자력 발전’이라는 인식을 만들기 위해 언론사들은 수백억 원을 받고 방송과 인쇄물을 통해 그들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 그 돈이 과연 어디서부터 온 돈일지를 생각하면 부아가 난다.

 

 고영철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2018년 3월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언론의 본질적 역할이 무너졌다는 것”이라며 “원전 문제처럼 중요한 이슈에 대해 언론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고 대가성 기사를 써댄다면 시민들은 왜곡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책 239쪽

 

 그래서 시민들은 다양한 채널로부터 정보를 얻고 스스로 옳은 방향을 생각해 나가야 한다. 그런 다음 움직여야 한다. 온오프라인으로 온갖 채널이 범람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편향적인 시각을 갖기가 더욱 쉬워졌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비상구]와 같은 책은 말한다. “시장 지배력이 큰 언론사들이 자본의 입맛에 맞춰 에너지 전환의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언론이 이 문제에 바르고 강한 목소리를 내주고,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해주신다면 더할 수 없이 기쁘겠습니다. (책 521쪽)” 물론 이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을 무조건 믿고 지지하자는 건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기사는 다만 하나의 가능성을 알릴 뿐이다. 기후 위기와 원전 위험에 대한 현실적 진단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청사진.

 


 

 [마지막 비상구] 3부는 국내외의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 사례를 취재했다. 스웨덴, 독일, 한국의 제주도와 서울 등지에서 태양열, 풍력 발전소(발전기)의 운영 사례를 꼼꼼하게 담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공부가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시끄럽게 한 태양열 발전에 대해서 정성을 들여 알아보고 공부해봐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생긴다. 더불어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덮으며 이 책이 쏘아올린 ‘에너지 전환 문제에 대한 환기’라는 결실과 함께 이런 보도집을 완성하기 까지 쏟은 기자들의 노력에 감탄을 느낀다. 모든 일이 돈과 권력이라는 기준과 프레임으로 짜깁기되고 있는 지금, 이런 기사와 책들로 말미암아 보통 시민의 눈은 정말 주시해야 할 것을 주시하고, 주목해야 할 것을 주목하고 종국에 행동으로 움직여야 할 때 함께 움직이게 되기 마련이다. 


 지속가능하고 존속가능한 지구에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 지금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다면 이 소박한 소원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