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뉴욕
이디스 워튼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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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이디스 워튼은 자라면서 아버지의 서재에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섭렵했다. 15살에 첫 소설을 완성하고 29살에 <맨스테이 부인의 관점>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 그녀는 이후 40년 동안 40권 이상을 출간했다. 1920년 <순수의 시대>를 발표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디스 워튼의 작품을 처음 읽은 건 5년 전쯤인 것 같다. <순수의 시대>라는 작품의 제목이 왜 순수의 시대인가를 고민하면서 꽤나 열심히 읽었던 소설이다. 더 이상 순수하지 않은, 순수할 수 없는 시대에 순수를 간직한 인물의 삶은 뭐랄까, 그냥 읽는 것만으로 ‘속상하다’.

 그때 느꼈던 감상은 이번에 출간된 이디스 워튼의 단편집 <올드 뉴욕>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올드 뉴욕>은 헛된 기대, 노처녀, 불꽃, 새해 첫날, 이렇게 네 개의 작품을 한 권에 엮은 책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 미국 상류층 인사들의 삶의 안팎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디스 워튼다운 단편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요즘 티비에서 쉽게 만나는 아침드라마나 주말드라마의 막장의 원류라고 해도 되겠다. 
 


 이 글에서는 네 개의 단편 중에 가장 첫 번째로 실려 있는 작품 <헛된 기대>를 소개한다.
 <헛된 기대>는 레이시 가문의 몰락과 유산을 다룬 이야기다. 할스턴 레이시는 재산만큼 거대한 체구에 명망과 체면을 귀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그렇게 돈이 많아도 가족들에게 용돈을 주는 데에는 인색한 그가 하나뿐인 아들에게만큼은 아낌없이 돈을 준다. 아들이 예뻐서가 아니고, 유럽으로 유학을 보낸 아들이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해 돌아와서 ‘레이시 갤러리’를 꾸며주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할스턴 레이시의 아들인 루이스 레이시는 가냘픈 체구에 섬세한 감성과 안목을 지닌 인물이다. 유럽에서 우연히 존 러스킨과 인연이 닿은 루이스는 품격 있는 벗의 영향을 담뿍 받아 아직 이름이 채 알려지지 않은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해 아버지에게로 돌아온다. 카를로 돌체, 사소페라토 등의 작품을 기대했던 할스턴 레이시는 아들이 그의 돈을 이름도 없는 화가들의 가소로운 그림들을 구입하는 데에 탕진했다고 생각하여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일년 후에 세상을 뜬다. 아버지는 그의 다른 모든 재산들을 두 딸과 아내에게 나눠주고 아들인 루이스에게는 오직 그가 사온 그림들만 유산으로 남긴다. 단테 로세티, 안젤리코 카우프만,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의 작품들을 가지고 뉴욕으로 이주한 루이스 레이시는 변두리에 자그마한 갤러리를 꾸며놓고 화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했지만 인정받지 못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뜬 루이스와 그 가족들마저 죽은 후 루이스가 엄선한 작품들은 폐허가 된 저택의 다락방에서 먼지만 뒤집어쓴다. 그러다 그 저택이 처분되는 날, 비로소 작품들이 발견되어 호사가들은 지난 날, 놀라운 작품을 발견했던 루이스의 선구안을 입에 올린다.

 살아가면서, 사는 데에 들인 노력이 매양 그 들인 만큼 나에게로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삶은 그렇지가 않다. 이디스 워튼의 삶은 얼마나 사는 게 팍팍했길래, 그는 이런 작품들을 유독 잘 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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