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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주판 - 일본 자본주의 기틀을 만든 시부사와 에이치
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음, 최예은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청렴함’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곧장 ‘빈곤함’이라는 단어와 연결이 된다. 왜일까?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지 않는 사람 혹은 돈의 이익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어쩐지 다 빈곤함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인가? 인(仁)의 가치로 사람과 사회, 나라와 세계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공자는 청렴한 사람이었으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그의 저서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도리에 맞는’ 사상과 행실들은 결국 다 허구가 될 게 아닌가. 그래서 내 머릿속 공자는 주머니에 동전 하나 넣어다니지 않는 빈곤한 인물로 그려진다. 소크라테스 외의 다른 모든 성인들은 내 머릿속에서 그렇다. 빈곤하고 가냘프고 뭐 그런...
그런데 이 책은 잔잔한 호수 같은 나의 인식에 돌을 던져 파문을 그렸다. 공자는 빈곤함을 추구했던 사람이 아니란다. 정당한 도리를 지켜서 부를 얻는다면 부를 쌓으라고 권고했던 사람이란다. 말하자면 도리에 맞으면 얼마든지 주판을 튕겨보라는 얘기다. 아마 이 책의 제목인 [논어와 주판]은 그런 의미로 통하는가보다.
사람들은 부유함과 고귀함, 넉넉함와 청렴함이 공존할 수 없다고들 생각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유함과 고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거기에 연연하지 마라. 빈곤함과 천박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부당하게 그렇게 되었더라도 억지로 벗어나려 해서는 안 된다.(책 중 140쪽)”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저서를 읽고 이 부분을 읽으며 ‘공자는 돈을 싫어해~’라고 생각할 동안 이 책의 저자 시부사와 에이치는 좀 다르게 해석했다.
부귀함을 경시하고 빈천함을 중시한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이 문장을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도리를 지켜서 얻은’에 주의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논어>에 앞서 간략히 언급한 “만약 부가 추구할 만한 것이라면 집편지사일지라도 나는 그리할 것이다. 하지만 추구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이것도 부귀를 천하게 여긴 말처럼 해석돼왔지만, 지금 다시 정확하게 해석하면 이 문장 속에도 부귀를 경시하는 구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본문 140쪽
그간 공자의 글 속에서 내가 읽은 메시지는 돈을 좋아하면 고귀한 사람이 될 수 없다거나 돈을 멀리해야 군자가 될 수 있다는 맥락의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저자의 해석은 많이 다르다. 공자는 돈을 멀리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얻는 것을 경계하였던 것이지, 공정하고 도리에 맞는 방법으로 돈을 얻는 것은 오히려 권고했다는 것이 저자의 공자를 해석하는 관점이다. 그런 시선으로 공자와 논어를 다시 읽으면 세계가 조금 달라진다. 돈방석 위에 앉은 사람도 군자가 될 수 있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린 것이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경제 대국 일본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되는 시부사와 에이치는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직접 본 선진국의 문물을 접한 후 그는 메이지 정부의 관료가 되어 일본 경제계를 이끌었다. 그런 사람이 그가 해석한 공자의 사상과 그 자신의 가치관에 대하여 담화로 남긴 게 이 책이다.
저자의 관점 역시, 공자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해석 중 하나일 뿐이고 정답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바라보는 공자와 논어 그리고 돈에 대한 관점이 정답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과 천박한 돈이라는, 연결짓기 어려워 보이는 이 관계가 저자가 해석하는 공자의 가르침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백년 전의 시대를 살았던 저자로부터, 돈이 나쁜 게 아니라 그걸 대하는 사람의 자세와 사상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배워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공자에 대한 저자의 해석 뿐 아니라, 경제 대국으로서의 일본의 바탕을 닦은 주역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삶의 태도와 철학 역시 배워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