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은 마르쿠스가 주변 사람에 대한 감사 일기를 쓴 느낌이다.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비롯하여 훌륭한 철학자 스승들, 친구들, 주변인들을 통해 배운 것들을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그중엔 양아버지를 통해 얻은 배움도 있다. 그만큼 꾸밈없이 쓴 글들이다.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문득 예전에 내가 함께 일하던 선생님께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저와 함께 일을 하면서 제 나름의 장단점이 보일 거예요. 저를 떠나실 때는 단점보다는 장점만 쏙쏙 뽑아 얻어 가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옆에 누군가 함께 하고 있지만, 어떤 사유가 있든 이별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선생님들께 한 말은 언젠가 떠날 걸 안다는 듯, 어느 정도 거리감은 두면서 지내는 관계라는 것을 넌지시 전한 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스쳐가는 인연들을 돌이켜보면, 매번 배움이 존재한다. 비록 그것들을 글로 다 적어놓지 않았지만, 마르쿠스의 명상록 제1권에 남겨진 기록처럼, 이제는 조금씩 생각날 때마다 적어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언젠가 나를 둘러싼 찐사람들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이 남아 있게 되겠지.
글 사이사이 마르쿠스의 충언은 뼈를 때리기도 한다. '그렇게 너 자신을, 네 영혼을 계속 비하하라.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네 자존감을 지킬 기회는 사라지고 말리라'라는 식으로 따끔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본질에 대해 명심하라고 메시지를 던진다. 나의 본성에서부터 시작되어 세상과의 관계, 자연의 일부로서 순리(곧 죽음)를 따르는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다.
총 제12권으로 목차가 이루어진 이 명상록을 읽고 난 후 제2권 마지막 글에서 '철학예찬'을 하는 부분이 마르쿠스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치관을 아우른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철학뿐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은 내면의 힘이 공격받지 않고 안전한 상태, 쾌락과 고통보다 우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그 무엇도 닥치는 대로 하지 않게 해주고, 정직하지 않게 남을 속이면서 하지 않게 해준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건 혹은 하지 않건, 그에 좌우되지 않게 해주기도 한다. 또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무엇이 주어지건, 이것 역시 내면의 힘과 같은 곳에서 생겨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철학 덕분에 내면의 힘은 죽음을 쾌활한 정신으로 받아들인다. 즉, 죽음이란 각각의 생명체를 이루는 요소들이 소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된다. 개개의 요소가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해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진대, 모든 요소가 변하고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을까? 이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순리에 맞는 일이다. 자연스러운 것 가운데 해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