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독감에 걸려 며칠 입원했다. 밤낮으로 붙어 있었더니 퇴원 후 내가 감기에 걸렸다. 너무 아팠다. 그 와중에 〈아내 가뭄〉을 읽었는데 아, 재밌다. 어떻게 보면 분노할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지만 난 매우 몰입했다. 다 읽고(읽는 동안에도) 첫번째 떠오른 것은 "내게도 아내가 필요해!"였다.

 

 

임신했을 때 나는 육아가 어떤 모습일 것이며,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짐작해보곤 했다. 실제의 육아는 내 짐작을 비켜가곤 했지만, 미리 어려움을 각오했기에 덜 힘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간과했는데, 출산과 동시에 집안일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거였다. 충분히 짐작할 법한 일이었는데도 나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늘어난 빨래, 설거지, 청소거리, 소독, 장보기, 요리(이유식)…. 난 가끔 화장실에 갈 여유도 없을만큼 일에 짓눌렸다. 집안일만으로도 하루가 빠듯한데, 칭얼대는 아기를 데리고 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해서 애를 낳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다. 내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거다. 적어도 편안히 밥 먹고 화장실 갈 시간이라도….

 

나는 왜 집안일에 육아까지 맡은 걸까? 물론 혼자만 감당하고 있는 건 아니다. 여건상 내가 더 많이 하고 있을 뿐인데, 가끔 여건 때문인지 이렇게 되도록 떠밀린 건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이런 상태를 어느 정도는 내가 원했지만(집에 있고 싶어서), 당연하다는 듯이 떠맡게 된 부분도 있는 것이다. 가장 피곤하고 부아가 치미는 건, 우리 부부가 나눠서 하는 일을 두고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거다. 일일이 대응하기가 힘들다. 그래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지만, 설명한들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아내 가뭄〉을 읽고 떠오르는 걸 적다 보니 두서가 없다. 달리 두서가 있게 글을 잘쓰지도 못하지만, 흥분해서 횡설수설하는 느낌이 들어 썩 좋지가 않다. 결혼, 육아, 여성, 시댁, 가사노동, 성폭력, 성차별, 가부장제… - 이런 이야기에 흥분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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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6-12-14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 안팎에서 어느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도맡는 얼거리가 줄거나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앞으로는 그처럼 달라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이기도 하고요.

cobomi 2016-12-31 09:45   좋아요 0 | URL
네. 어떤 일을 누가 하는가는 당사자가 합의할 문제이지만, 특정 역할을 당연하다는 듯이 떠맡기는(혹은 떠맡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