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열쇠
모두가 잠들어 가는,
모처럼 기분 좋게 달렸지만
피곤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새벽
이영훈의 옛사랑을 흥얼거리며
돌아오는 길
문 앞에서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른다
식은 땀을 흘리며 자꾸만
익숙한 몸의 구석구석을 더듬어도
너무나 익숙하다고 믿었던
네가 없다 결코 내곁을
떠나지 못할거라 믿었던
네가 없다 가만히 웅크린 채
평온한 등불을 켜고 나를 기다리는
저 안의 세계처럼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뒤돌아보지 않고 저 어두운 생의 손잡이를
열고 닫아줄 거라고만 생각했던
네가, 네 작은 몸이 없다
텅 빈 벽처럼 문 앞에 서서
공포에 떠는 이
깊은 밤,
- 끊임없이 바람 부는 먼 섬에서 대학이란 곳에 발 디디려고 허름한 자취방을 전전하던 오래 전 그날들.
김광석과 안치환의 노래를 즐겨 틀어주던 눅눅한 지하의 퀘퀘한 주점, 그 곳에서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거나하게 마시고 아무도 없는 빈 방으로 터벅터벅 돌아오곤 했습니다.
사람의 따스한 온기가 이 누추한 몸을 기다리고 있진 않았지만, 그저 이 지구별의 지상 위에... 외롭고 높고 쓸쓸한 몸을 고단하게라도 누일 방 한 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눈물겹게 고맙던 시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예기치 않은 운명이나 일상이 우리네 삶을 끊임없이 방문하듯
그 반복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심야의 귀갓길... 휘파람을 불며 이문세의 노래들을 부르며 기분 좋게 방문 앞에 섰던 2월의 어느 눈 내리는 밤이었습니다.
어느새 부턴가 모든 것들이 간편하게 숫자를 누르면 띡~~ 하고 열리는 번호키 문으로 거의 바뀌고 말았지만, 그 시절은 거의 모든 집이 쇠를 깎아 만든 열쇠를 품 안에 품고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여튼 저는 방문 앞에서 그 작은 열쇠 하나가 없어 차운 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아... 조금 과장스럽게 말한다면 한참을 넋놓고 알 수 없는 공포에 몸과 마음을 떨어야 했습니다. 내 가까이에 늘 있다고 아니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지극히 평범한 존재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낭패감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때 열쇠집에 전화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한참을 오들오들 떨던 아픈 기억은 무슨 꿈을 꾸듯이 가끔... 불시에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 기억이 어느새 그리움이 되어 버린 시절입니다. 그래서 시의 언어로 반드시 새겨두고 오래오래 그 문 앞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을 붙잡아 두고 싶었습니다.
늘 익숙하기만 했던 것들이 불현듯 사라졌을 때의 그 아픔과 따스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