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긴 손가락의 여자
가늘고 긴 손으로
내 얼굴을
차갑게 부르튼 내 손을
아픈 마음을 매만지는
너는
고운 눈으로 별을 보는 여자
별빛같은 눈으로 나를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닥에 핀 풀꽃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우는
너는
물음표의 귀를 아는 여자
세상 모든 신음을
제 마음의 통증으로 듣는
너는
입이 아닌 마음으로 말하는 여자
아프다 라고 말하지 않아도
아픈 여자
슬프다 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물의 강으로 조용히 흘러오는 여자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고
아무도 없을 쓸쓸한 세상에
나를 너를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닥에 핀 흔들리는 풀꽃들을
껴안아준 여자
껴안아줄 여자
해는 지고 아직
보이지 않는 별 아래
상처의 등을 밝히고 부는 바람 속을 걷는
너는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다고 믿게 하는 여자
비틀거리다 쓰러져 가는 몸을 다시 일으켜세워
마지막 걸음을 한 발 두 발
자꾸만 디디게 하는
너는
슬픔의 안에서 슬픔 밖에는 볼 수 없던 내게
슬픔의 밖에서 슬픔의 살을 들여다 보게 하는
너는
‘운다’라고 쓰게 하는 여자
아니
그냥 ‘운다’
그 자체인
너는
우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우는 눈에 나를 담아내어
우는 눈 속에 우는
나의 눈으로 나를 비추는
그런
--- 누구나 위로받기를 원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위로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로움에 처절히 진저리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깊은 밤이면 저는 가끔씩 생각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위해 진정 눈물을 흘리며 아파해 본 적이 있는지를? 그저 가슴 따스한 누군가에게 위로만 받고 싶어했던 것은 아닌지?
'베아트리체'는 그런 사람입니다. 긴 손가락으로 다독다독 슬픔의 어깨를 토닥이는 여자... 입이 아닌 마음으로 말하기에 아픈 여자... 물음표의 귀로 세상의 신음을 제 마음의 통증소리로 듣는 여자... 슬픔의 맑은 눈으로 바닥에 주저 앉은 존재들을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여자... 우는 게 아니라 그냥 '운다' 그 자체인 여자... 깊은 밤이면 마음 속 상처의 등을 켜고 나를 너를 우리를 비추어 슬픔의 밖에서 슬픔의 안을 들여다 보게 하는 여자...
그렇게 별빛같은 눈으로 지그시 바라다 보며
괜찮다 괜찮다며 마음의 고개를 끄덕이면서
긴 손가락으로 그늘진 당신의 등을 감싸고 다독이는
그런 사람이 당신에겐 있었던지요? 아님 지금 있으신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너무나 사랑 받은 사람이었다는 것만 명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