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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유혹
샤먼 앱트 러셀 지음, 석기용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보니, 잠이 왔다. 지겨워서,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되풀이되어서도 아니다. 너무 편안하고 너무 포근해서 이다.
이 책도 물론 꽃에 대한 우리의 단편적인 사념들을 깨부수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방식이 너무도 온화하다. 정말 이 책이야말로 꽃을 대하는 진정한 자세가 아닐까. 적어도 우리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꽃에 반하고 그 꽃에 의해 치료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애써 '꽃이 우리에게 향기를 주고 꿀을 주는 것은 다 자기들 살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라며 갑자기 긴 세월 동안의 삶의 동반자였던 꽃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몸과 유전자를 따로 구분해 서로 쟁취하자는 식의 서양식 '편가르기'이며 융통성 있지 못하고, 모난 처사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잡식성 동물일 뿐이다. 자연에 내게 주는 대로 받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주면 되는 것이다. 모두 같이, 지금처럼만 편안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여 얻어낸 새로운 깨달음도 필요하다. 우리를 무지에서 깨어나게 하는 새벽 종소리일 것이다. 물론 많이 안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많이 알수록 담을 쌓아 주위에 적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여 모든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이렇게 태어났다. 나는 그냥 꽃이 원하는 대로 해 줄 것이고, 그러면 꽃은 내게 또 다른 것을 줄 것이다. 이것은 '주는 만큼 받자'는 식의 계산적인 삶의 방식도 아니다. 너와 나의 존재에 대해 알만큼 알았으니, 비록 네가 나를 그렇게 잘 알지 못하고 내가 너를 그리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이 정도면 된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걸리는 부분도 있었다.꽃의 기하학적 구조를 일일이 따져서, 꽃의 씨까지 일일이 세어 가면서 내린 결론이, '꽃의 구조에 대한 놀라움'이라면 자연에 대한 무지의 외침이다. 꼭 무당이 자기 찾아온 손님에게 '마음 고생이 있구만'하고 소리치자, 어떻게 맞췄냐하며 놀라워하는 사람 같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꽃의 본능이, 유전자가 '나는 이런 수의 씨로 이런 구조를 취할 테야'라고 해서 얻어낸 걸작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이, 태양과 달의 구도가, 지구의 중력이, 공기와 흙의 존재가... 이 모든 자연이 꽃을 그렇게 만들었으며 이에 유리하게 적응한 꽃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하나하나 그렇게 일일이 캐물어 가면 자연에서 경탄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의 몸이 어쩜 이리도 좌우대칭이 잘 맞는지, 왜 태양의 고도가 그토록 일정하게 바뀌는지, 왜 수놈 2마리가 암놈1마리를 두고 싸우는지... 이것이 자연이다. 그 수에 경탄할 필요도, 그 짜임새 있고 기가 막힌 구조에 경탄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감탄하고 싶거든 자기 몸을 보고, 자기 앞의 타인의 얼굴을 봐라.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해라.
왜 우리가 생일, 졸업, 결혼 등 기념일에 꽃을 선물하는지에 대한 대답도 허술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바치는 것이 어떤 신이 꽃이 되었다하는 식의 신화 탓이라면, 그 신화를 탄생시킨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꽃에 대한 그들의 생각들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인가. 짜맞추기 일 뿐이다.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동물일 뿐이고, 꽃의 입장에서 보면, 벌과 다른 짐승들과 다를 바 없는, 수분동물일 뿐이다. 우리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꽃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적어도 우리가 이 지구상에 꽃과 함께 다른 모든 생물들과 공존할 수 있는 존재라면 말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끌릴 수 밖에 없다. 저자가 적어도 꽃에 대해 어느 정도 통달한 위인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우리들의 꽃에 대한 지난날의 행실을 일일이 설명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꽃에 대한 진화를 설명하면 그 답은 자연스럽게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