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데이비드 조지 고든 지음, 문명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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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나는 조신하게 절대 이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맨 처음엔 이 책을 읽어야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책 속에 숱한 바퀴버레 그림 때문에 잡고 있던 손이 어쩜 그렇게도 근지럽고, 소름이 끼치는지, 책 펴지의 흰 바탕 위로 그려진 바퀴벌레 그림을 보노라면, 바퀴벌레에 관한 책이기 보다는 바퀴벌레를 대려잡아 그 시체가 묻은 책 같아, 영 찜찜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나도 곤충혐오증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누구든 바퀴벌레의 섹스 순서 그림을 보는 순간, 경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아주 희망적인 메시지도 가득하다. 바퀴벌레 퇴치법이 많이 소개되었기 때문인데, 이 방법은 다른 것들보다 간단한 방법은 아니지만 꽤 그럴 듯 하다. 바로 바퀴벌레가 지구에 사는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한 방법들이다.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모든 물을 차단한다든가, 먹을 것이 없게 만든다든가, 아예 실내 온도를 확 낮춰버린다든가 하는 방법들은 참으로 원시적이면서 아주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귀찮다는 것이 문제일 텐데, 이 문제는 바퀴벌레에게 좀 더 혹독하게 당해본 뒤에야 생각해도 될 문제인듯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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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유혹
샤먼 앱트 러셀 지음, 석기용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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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보니, 잠이 왔다. 지겨워서,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되풀이되어서도 아니다. 너무 편안하고 너무 포근해서 이다.

이 책도 물론 꽃에 대한 우리의 단편적인 사념들을 깨부수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방식이 너무도 온화하다. 정말 이 책이야말로 꽃을 대하는 진정한 자세가 아닐까. 적어도 우리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꽃에 반하고 그 꽃에 의해 치료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애써 '꽃이 우리에게 향기를 주고 꿀을 주는 것은 다 자기들 살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라며 갑자기 긴 세월 동안의 삶의 동반자였던 꽃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몸과 유전자를 따로 구분해 서로 쟁취하자는 식의 서양식 '편가르기'이며 융통성 있지 못하고, 모난 처사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잡식성 동물일 뿐이다. 자연에 내게 주는 대로 받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주면 되는 것이다. 모두 같이, 지금처럼만 편안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여 얻어낸 새로운 깨달음도 필요하다. 우리를 무지에서 깨어나게 하는 새벽 종소리일 것이다. 물론 많이 안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많이 알수록 담을 쌓아 주위에 적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여 모든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이렇게 태어났다. 나는 그냥 꽃이 원하는 대로 해 줄 것이고, 그러면 꽃은 내게 또 다른 것을 줄 것이다. 이것은 '주는 만큼 받자'는 식의 계산적인 삶의 방식도 아니다. 너와 나의 존재에 대해 알만큼 알았으니, 비록 네가 나를 그렇게 잘 알지 못하고 내가 너를 그리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이 정도면 된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걸리는 부분도 있었다.꽃의 기하학적 구조를 일일이 따져서, 꽃의 씨까지 일일이 세어 가면서 내린 결론이, '꽃의 구조에 대한 놀라움'이라면 자연에 대한 무지의 외침이다. 꼭 무당이 자기 찾아온 손님에게 '마음 고생이 있구만'하고 소리치자, 어떻게 맞췄냐하며 놀라워하는 사람 같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꽃의 본능이, 유전자가 '나는 이런 수의 씨로 이런 구조를 취할 테야'라고 해서 얻어낸 걸작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이, 태양과 달의 구도가, 지구의 중력이, 공기와 흙의 존재가... 이 모든 자연이 꽃을 그렇게 만들었으며 이에 유리하게 적응한 꽃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하나하나 그렇게 일일이 캐물어 가면 자연에서 경탄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의 몸이 어쩜 이리도 좌우대칭이 잘 맞는지, 왜 태양의 고도가 그토록 일정하게 바뀌는지, 왜 수놈 2마리가 암놈1마리를 두고 싸우는지... 이것이 자연이다. 그 수에 경탄할 필요도, 그 짜임새 있고 기가 막힌 구조에 경탄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감탄하고 싶거든 자기 몸을 보고, 자기 앞의 타인의 얼굴을 봐라.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해라.

왜 우리가 생일, 졸업, 결혼 등 기념일에 꽃을 선물하는지에 대한 대답도 허술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바치는 것이 어떤 신이 꽃이 되었다하는 식의 신화 탓이라면, 그 신화를 탄생시킨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꽃에 대한 그들의 생각들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인가. 짜맞추기 일 뿐이다.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동물일 뿐이고, 꽃의 입장에서 보면, 벌과 다른 짐승들과 다를 바 없는, 수분동물일 뿐이다. 우리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꽃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적어도 우리가 이 지구상에 꽃과 함께 다른 모든 생물들과 공존할 수 있는 존재라면 말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끌릴 수 밖에 없다. 저자가 적어도 꽃에 대해 어느 정도 통달한 위인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우리들의 꽃에 대한 지난날의 행실을 일일이 설명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꽃에 대한 진화를 설명하면 그 답은 자연스럽게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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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인류학 - 유전자를 타고 가는 시간여행
존 H. 릴리스포드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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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트리아 DNA로 진정한 별 섞임 없는 모계 역사책 같은 유전자를 연구한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적 차이가 침팬지와 오랑우탄 사이의 것 보다 적다고 인간을 단순히 “털없는 원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또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DNA라는 유전자 만 놓고 세 종을 비교한 자료에 불과하다.

이미 앞서 살펴봤듯이 ‘이기적인 유전자든, ‘문화적 진화’든 모두 DNA로 모든 것을 가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DNA가 우리 몸을 구성하게 원활하게 돌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느냐가 문제다. 여러 가능한 사안들 가운데 하나이냐, 아니면 가장 중요한 요소이냐, 아니면 이것이 전부이냐 하는 문제들 말이다.

나는 이 중에서 첫 번째인 ‘여러 가능한 사안들 가운데 하나’라고 우리 몸의 유전자를 홀대 해 왔었다. 나는 정말 다른 말들은 도무지 믿어지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다.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정말 유전자가 ‘다’라면 나는 다시 또 “우리 인간은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우리의 존재는 무엇이며, 어디서 마땅한 존재의식을 찾아야할 것이며, 나는 앞으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할지” 너무나 막막해 지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나’라는 존재 하나로만 인식해도 이런 문제를 풀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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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생물학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8
피터 벤틀리 지음, 김한영 옮김 / 김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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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훨씬 빠른 진화를 거듭하여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가진 디지털 생물체가 과연 더 이상 인간의 소유물이 되기 싫다고 무조건 우리를 공격할까? 구태여 우리가 그들과 숨막히는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세상을 초탈해버릴 만큼 빠른 진화 과정을 겪고 있는 생물체는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 도태되어버리거나 스스로 자살하지 않을까. 많이 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니까. 나도 우주의 존재에 대해 알고 싶고 그 정답을 찾고 싶지만, 그 정답은 반드시 나이가 한참 들어서여야 할 것이다. 모든 걸 다 아는데 더 이상 살아야할 필요는 무엇이며, 세상을 초탈할 만큼 성숙했는데 더 이상 속세에 집착해야할 필요는 또 무엇이 있겠나. 그것은 어쩌면 내가 자살을 택한다는 것보다는, ET가 소년의 기억을 지우는 것처럼 그 사실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거나, 진실을 아는 즉시 죽게되는 매트릭스 속의 다른 인간들에 의해 죽게될지도 모른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지하철 계단을 따라 올라와서 이 컴퓨터 검색실에 앉기 전까지만 해도 정신이 몽롱해서 마치 '네오'나 된 것처럼 지나가는 일상 속의 얼굴들(떠들어대거나, 웃거나, 아무 생각 없거나, 머리나 만지작거리며 자기 옷에만 신경쓰거나 하는 얼굴들)이 한심하기 그지없었고, 그들과 나는 달랐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딘가에 또 있을 텐데 하면서 그들과 만나 이야기해야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들었다. 그때 나는 '데미안'이 말했던, 이마에 표적을 단 인간이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일상의 나로 돌아왔다. 나는 영화를 보면 그 세계에 빠져 내가 거기 있는 것 같아, 갑자기 소름이 끼치고, 막상 영화가 끝나면 지금 이 세계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그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 외의 많은 사람들도 이럴 것이다. 아마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과 사방의 완벽한 사운드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진실을 알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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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리 듀거킨 지음, 이한음 옮김 / 지호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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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또 다시 그렇게 다시는 들먹거리고 싶지 않았던 “이기적인 유전자”를 다시 언급해야할 상황에 놓였다. 정말 지리 한 논쟁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결코 지루하지 않는 새로운 이론이 나오는 데, 바로 개체 자체가 유전자처럼 복제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 기본적으로 문화에 대한 이기적인 유전자적 입장도 인정하고,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유전자에 치우쳐져 있어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행동상의 유전적 양상에 대해 우리 개체를 당당한 주인으로 모셔놓았다는 점이다.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비열한 유전자 등에서 주체적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며 약한, 이용당하는 약자에 불과했던 바로 우리 몸뚱아리 자체가 그래, 그렇게 잘난 너네 유전자들처럼 문화를 복제할수 있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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