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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버드 ㅣ 열림원 이삭줍기 7
허먼 멜빌 지음, 최수연 옮김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모비 딕(Moby Dick)`의 작가 Herman Meville.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중편 소설 `빌리 버드(Billy Budd)`.
"하느님의 천사에게 맞아 죽은 거야!
하지만 그 천사는 목이 매달려야 해!"
벨리포텐드(Bellipotent)號의 비어 선장이
선원 빌리 버드에 대해 교수형을 판결 내리면서
남긴 외침이다.
순진무구함 그 자체인 빌리 버드가
사악한 지성의 구현체라고 할 수 있는 클래가트의 함정에 빠져
클래가트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비어 선장은 빌리의 무고함을 알지만,
선상의 안정과 조직의 내부 규율을 다스리기 위해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된다.
빌리는 살인죄와 함께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주제지만,
멜빌은 악의 근원을 찾아나간다.
쾌활하고 멋진 선원인 빌리의 상급자 클래가트는
왜 빌리를 경멸하는가?
멜빌은 그 문제를 끝까지 몰고 간다.
그 끝에서 비어 선장은
이삭과 아브라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결단을 내린다.
짧은 소설이지만,
결론을 향해가는 과정은 군더더기없이
긴장을 더해간다.
책을 덮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진다.
해결할 수 없는 물음에 ... .
한가지 사족을 덧붙이자면,
번역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문장이 너무나도 중문이고,
문장 안에 또 다른 문장이 들어간 게 많아서
읽어내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시샘과 혐오는 이성의 차원에서는 결코
화합할 수 없는 감정들이지만,
그럼에도 실제로는 장과 엉처럼 한 몸에 붙은 채로 나타날 수 있다.
... 그러나 시샘이 머무는 곳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므로,
아무리 뛰어나도 지성은 시샘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없다.
...그 선임 위병 하사관(클래가트)은 어쩌면 그 배에서
빌리 버드에게 나타나는 도덕적 현상을 제대로 평가할
지적 능력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을 게다.
그리고 그러한 통찰은 빌리에 대한 반감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을 뿐인데, 그의 내부에서 여러 가지로
비밀스러운 형태를 띠었던 그러한 반감은 때때로
냉소적인 경멸, 순진무구함에 대한 경멸의 형태를 띠었다.
자기 안에 있는 본질적인 사악함을 없애버릴 힘은 없지만
그것을 숨길 힘은 충분히 있고,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는
알고 있지만
선해질 힘은 없었던 클래가트와 같은 본성을 지닌 사람은, ...
그에게 맡겨진 역할을 끝까지 다하는 것말고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기 마련이다."(pp.7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