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엄청난 책이다. 정말로... 조지 오웰의 한국 버전이다. 이 분이 직접 경험한 노동 현장을 기술한 건데, 마지막에는 격정적이 되지만 쭉 이 부조리한 사태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자신도 외국인 차별을 하는 주체가 되었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 반성은, 우리들이 얼마나 인종차별에 물들어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으로 인해 사람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하고 미치게 되는지 모든 장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이렇게 가혹하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인권 침해 현장을 우리가 더이상 모른척 할 수 있을것인가. 이 책을 써주신 작가님에게 감사드리고, 이런 부조리를 바꿔나가야 한다... 

내가 다시 바다를 낭만과 신비의 공간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더 이상 하루에 열두 시간씩 통발을 쌓지 않아도 된 후였다.

항구에서 모든 사람들의 삶이 하향 평준화된 사회가 주는 만족감이 있엇다. 모두가 헌 추리닝을 입고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매일같이 위험하고 힘들게 일했다. 볼품없는 외모를 주눅 들게 만드는 예쁜 여자도 없었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거기엔 실패를 받아들인 데서 오는 편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항구에선 더 이상 내 인생이 아무 문제없는 척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실 중 하나는 그렇게 정 많고 친절한 아저씨들이 정작 자기 배 막내의 고충 앞에서는 냉담했다는 거다. 어째서 사람들은 가장 나약한 부류에게 가장 힘든 일을 떠넘기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가난해진다는 것은 신병 훈련소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도 도무지 불만을 터뜨릴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고시 식당에서 일요일 아침에만 나오는 계란 프라이는 전날 미리 만들어뒀는지 차갑게 식어 마우스 패드로 써도 될 만큼 뻣뻣했다. 국에는 드물지 않게 쇠 수세미 조각들이 빠져 있었다. 고시원장은 전기요금과 화재 위험을 이유로 들어 전열기구를 사용하는 것도 막았지만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돈사의 불결함은 돼지의 성장과 비례했다. 비육사는 자돈사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내가 보기엔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은 황소 심줄 같은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참고 참아서 끝내는 어디선가 한자리 꿰차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들도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한 일을 하며 살라고 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중도 포기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야겠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내게 명령을 내린다는 걸 깨닿는 순간 몸이 먼저 화를 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돈만 밝히고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젊은 사람들이 피하는 일이란 어떤 사람이라도 꺼릴 만한 일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누군가는 최악의 생활 환경에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 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사고 방식 말이다.

최저임금제가 노동자를 위한 제도라는 생각이야말로 지독한 환상이다. 최저임금은 궁극적으로 고용주들이 이 말을 내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봐라! 뭐가 문제냔 말이냐? 나는 법대로 지불했단 말이다!" 그의 말 뒤에 생략된 문장은 ‘그 돈으로 먹고살건 말건 그건 내 알바 아니다‘이다. 최저임금제란 정부가 고용주에게 발급해주는 연말 정산용 면죄부일 뿐이다.

한국 사람이라는 단어에는 최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저씨들은 입버릇처럼 "그래도 힘들 땐 한국 사람밖에 없어"하며 서로를 위로했지만 바로 그 힘든 시기, 즉 낮은 보수, 긴 작업 시간, 위험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편리하게 잊어버렸다.

한 달도 안 되어 나는 공장일의 단순함에 질려버렸다. 일을 하면 할 수록 정신에 모욕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이 일을 견디기 위해선 계획도 버리고 생각도 버리고 정신적 무소유의 경지에 다다라야 했다. 이런 작업 뒤에야말로 창조적인 문화 생활이 절실했지만, 앞서 밝혔듯이 근방에서 문명의 흔적은 도로와 논뿐이었다. 덕분에 이곳 사람들의 여가 생활 역시 술 아니면 TV였다.

젊은 사람들은 힘들고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작업장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닌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어느 누가 그런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왜 사람들은 너문도 쉽게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하고 보수도 적은 일을 참고 버티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걸까? 누군가 그런 일을 그만둔다면 그건 그들이 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탁현 아저씨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했기 때문에 해고의 문턱까지 갔지만 재길 아저씨는 자신의 광기를 굽히지 않은 덕분에 한자리 꿰찰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야. 반사회주의 국가지. 뭐든지 오너 편에 서라고. 그래야 살아남아." 살아오면서 숱한 충고를 들어왔지만 ‘더 강하게 죄 지으라‘ 이것 말고는 쓸 말한 충고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남자들은 어린 세대의 존경이라는 열차에 무임승차를 해 왔는데 이제 그들도 대가를 치를 때가 됐다. 당연한 권리 행사라도 하듯 식구를 때리고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주고 후임병을 군홧발로 걷어찬 대가를. 피부 빛이 검다는 이유로 상대를 무시한 대가를. 직원들에게 줘야 할 돈ㅇ로 새 아파트를 사고 자식들을 유학 보낸 대가를. 한 달에 이틀 휴일을 ‘허락‘해주고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믿은 대가를. 일 끝나고 돌아온 아내가 청소를 하고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는 동안 소파에 드러누워 스포츠 채널이나 뒤적거린 대가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부끄러워하지 않은 대가를, 자기의 잘난 애새끼들이 아빠 흉내를 내기 시작했을 때 바로잡지 않은 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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