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의 정치학 도란스 기획 총서 4
정희진 외 지음 / 교양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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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이슈는 겨우 이대남(이라고 쓰고 이십남이라고 읽음)의 삐뚤어진 의식에 맞춰 다뤄지는 이 시대에, 정치할 거면 이 책부터 읽고 시작하자.

...진보 진영 남자들이 남성 연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타자화하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라 사계를 꼽는 것이 무의미할 지경이다. 다소 경박해 보이는 것 자체가 새로운 쿨한 진보의 모습으로 소비되었고, 이를 통해 탈권위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남성의 세계에서 성적 욕망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되어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반면 여성의 세계에서 섹슈얼리티는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만 의미를 지닌다.

"아버지(master)의 연장으로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 오드리 로드의 이 말은 삶을 갱신하고 싶은 모든 인간이 처한 조건일 것이다. 금지된 말,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 나를 억압하는 말 속에서 그 말들을 어떻게 부수고 새로운 언어로 말할 것인가. 자기 언어가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이것은 생존의 화두다. 나를 적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말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일상의 고민이다. 여성의 말하기는 긴장과 협상의 연속이다. 많은 경우 모든 지력을 동반해야 하는 감정 노동이다.

여성주의는 누가 남성이고 누가 여성인가를 정하는 권력의 소재를 밝히는 사회 운동이다.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 다툼에서 여성의 피해를 강조하는 사유가 아니다. 흑인과 백인은 대립하는가? 부자와 빈자는 대립하는가? 그렇다면 유토피아일 것이다. 억압과 피억압,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비착취 구도를 ‘대립‘이라는 중립적 언어로 표현하는 발상으로는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의 미투는 거의 모든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의 몸에 행사해 온 무한 접근권(강간, 낙태, 추행, ‘구애‘......)이 임계점을 넘어서 터진 것이다. 남성은 여성의 몸에 대한 ‘거리감‘, 즉 인권 의식이 희박하다.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 다르고, 상호 접근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극단적으로 다른 상태에서 이제까지 남성들은 자신의 몸을 권력화 해 왔다.

성폭력(gender based violence)은 한 남성의 소유물인 여성을 다른 남성이 훼손한 문제로 간주된다. 성폭력을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가 아니라 남성과 남성의 권력 관계로 변질시키는 남성 사회의 전략은, 여성을 곤경에 빠뜨리는 젠더 체제의 핵심이다.

현재 한국 법정에서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과 관련한 질문 내용은 가해자의 시각에서 구성된 것이다. 위력 행사가 자연스럽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가해자의 행동이 궁금하지 않다. 대신 피해자의 대응이 의문시될 뿐이다. 피해와 피해 이후의 신문. 약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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