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꿈의 시체로 만든 별자리들 (2)
|
|
|
|
맥스: 언제까지 이 냄새나는 거리에서 살 거야?
누들스: 난, 이 거리가 좋아.
|
|
|
|
|
금주법의 감시망을 피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맥스의 서재는 값비싼 수집품으로 가득하다. 그는 황금 으로 만들어진 휘황찬란한 의자에 앉아 스스로를 암흑가의 제왕으로 임명하는 우스꽝스런 제스쳐도 서슴지 않는다. 오직 한 여자의 사랑을 얻을 정도만큼의 재산 이상은 바라지 않는 낭만주의자 누들스에 비 해 맥스의 물욕은 퇴폐와 광기로 얼룩져 있다. 그는 강간이나 살인뿐 아니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악행을 빠짐없이 저지르면서도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처럼 행동한다. 맥스의 데보라에 대한 마음 또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값비싼 물건’을 손에 넣고자 하는 수집가의 집착과 다르지 않다.
언뜻 보기에 누들스와 맥스는 모두 척박한 뉴욕의 빈민가가 낳은 실패자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빈털터 리 노인네가 되어 고향땅을 유령처럼 서성이는 누들스보다도 오히려 맥스가 처절한 실패의 주인공이다. 누들스는 소년시절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애늙은이였지만 감옥에 다녀와서도 여전히 때가 묻지 않은 순 애보의 주인공이었다. 누들스는 뉴욕의 뒷골목에서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여전히 그 남루한 뒷골목에 서린 추억들을 사랑한다. 누들스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평생 곱씹어도 매번 새로운 아 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추억의 장면들이 상영되고 있다. 돌아온 탕아 누들스의 눈에 비친 고향의 새로운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초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뉴욕의 뒷골목 풍경은 어린 시절 누들스가 소매치기의 무대로 삼았던, 마차와 행인으로 가득한 사람냄새 물씬 나는 거리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은 기억의 파편만으로도 누들스는 어린 시절 전체를 손쉽게 복원해 낼 수 있다. 고향의 거리 풍경 모든 것이 터무니없이 변했지만 딱 한 곳 변하지 않은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데보라의 오빠 뚱보의 술집이었다. 뚱보네 술집은 여전히 외로운 사람들의 안식처였고, 시간의 광풍 에도 훼손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추억의 장소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뚱보네 술집에 찾아온 누들 스는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했던 운명의 장소, 뚱보네 술집의 화장실 뒤편으로 들어간다. 깨진 벽 돌의 틈새로 보이던 데보라의 아름다운 몸짓. 그녀의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세상에서 가장 달콤 한 음악소리. 몰래 자신을 훔쳐보는 누들스의 시선을 분명히 느끼면서도 보란 듯이 옷을 후르륵 벗어 자 신의 아 름 다운 몸을 보여주던 데보라의 도발적인 눈빛. 닳고 닳은 그 벽돌의 틈새가 이 세상에 존재하 는 한, 누들스는 언제든 추억의 한가운데로 순식간에 돌진하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누들스에 비하면 맥스는 불행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다. 그는 그리워할 추억조차 없는 인간 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엄연히 존재하던 아름다운 추억들조차 짓밟아 추억의 가치를 스스로 말 소시켜버린 인간이다. 그는 추억조차 소유하려 했고 타인의 추억조차 수집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리하 여 그 어떤 추억의 페이지에서도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그는 누들스의 추억을 욕보이고, 누들스의 꿈조차 영원히 짓밟아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꿋꿋이 살아남아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생의 끝자락에 와서야 누들스에게 공소시효조차 만료되어 버린 용서를 빈다.
맥스는 뉴욕의 기념비적인 골동품을 싹쓸이할 만한 재력을 가졌지만 그 휘황찬란한 수집품들 속에 스 며있는 그 어떤 내밀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그는 그토록 아름다운 여자와 그토록 소중한 친구와 그토록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꿈의 별자리도 그리지 못한다. 그에 비해 누들스는 빈털터리 노신사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향한 존엄을 잃지 않는다. 그는 데보라와의 추억이 스민 음악의 단 한 구절, 그녀를 엿보기 위해 들어올려야 했던 작은 벽돌 조각, 그녀에게 사 랑을 고백하기 위해 암송했던 성경 구절 단 몇 줄만으로도 충분히, 오래 전에 부서져버린 꿈의 별자리를 재구성해낸다. 아주 작은 기억의 파편만으로도,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옛 도시의 끔찍한 ‘폐허’ 속에서조차 누들스는 그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꿈의 별자리를 그려낸다.
|
|
|
|
자신의 위대함에 저 혼자 반해 법석을 떠는 인류는 스스로를 우주라고 믿고,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감옥 안에 살고 있다.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아케이드 프로젝트』, 새물결, 2005, 137쪽.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