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발터 벤야민 ⑪

 

  11. 꿈의 시체로 만든 별자리들 (1)  

 

   
 

   시간은 순간순간 나를 삼킨다. 마치 그치지 않고 내리는 눈이 굳은 몸을 덮듯이.
 - 발터 벤야민

 
   
 
   
   이 사회는 동물처럼 우둔하지만 동시에 동물이 가진 희미한 직관은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들은 맹목적인 대중으로서 온갖 위험, 바로 코앞에 닥쳐온 위험에조차 희생당하게 되며, 개인들의 목표와 다양성은 개인들을 규정하는 힘들의 동일성 앞에서는 사소한 것이 되어버린다.
 - 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일방통행로』, 새물결, 2007, 43쪽.
 
   



   가장 아름다운 것조차 가장 추악한 것 속에 고여 있다. 추악한 것을 도려내는 순간 아름다운 것도 함께 사라진다. 누들스의 삶 자체가 그렇다. 누들스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그의 가장 추악한 기억, 즉 맥스와의 기억과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누들스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 그 무엇도 맥스와 연관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누들스가 사랑한 모든 것이 곧 맥스가 누들스에게서 빼앗고 싶었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삶의 끝자락에 와서야 자신의 비열한 만행을 속죄하려는 맥스. 그가 누들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구했을 때, 누들스에게 떠오른 것은 역설적으로 맥스와 함께 했던 가장 아름다운 추억들이었다. 맥스를 제거하는 것은 곧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고통이었던 것이다.  



   
  맥스: (백발이 성성해진 누들스를 바라보며, 이제 모든 마음의 준비를 끝낸 표정으로) 나는 네 삶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았어.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항상 내가 있었던 거야. 나는 네 모든 걸 빼앗았지. 네 돈을 빼앗았고, 네 여자를 빼앗았지.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네가 나를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었어. 자, 이제 나를 쏴버려.
 -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중에서
 
   




   맥스가 누들스에게 ‘나를 죽여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하는 순간, 누들스에게 떠오른 것은 이제는 누들스의 아련한 기억의 창고 속에서조차 죽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어린 시절의 맥스’였다. 뒷골목을 누비며 온갖 나쁜 짓을 도맡아 저질렀던 어린 시절, 따스하게 울타리가 될 만한 가족도 본받을 만한 어른도 없었던 어린 시절. 맥스는 누들스의 ‘모든 첫 경험’을 함께 했던 친구였다. 여자와 처음 잔 것도, 갱단과의 첫 번째 밀수품 운반도, 첫 번째 감옥행도. 운명을 좌우하는 그 모든 결정적인 순간에는 맥스가 함께 있었다. 맥스는 누들스의 인생 전체의 증인이었고, 길 위의 스승이었고, 혈육보다 애틋한 타인이었다. 맥스를 부정하는 것은 곧 누들스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데보라와 맥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어린 시절의 맥스를 빼다 박았고, 데보라가 누들스에게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그 아들의 얼굴을 마주친 순간 누들스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 잃어버린 삶을 이제 와서 맥스와 데보라에게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맥스는 누들스에 대한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며 자신을 죽음으로 ‘단죄’해주길 바라지만, 누들스는 맥스를 죽일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미 오래전에 그의 마음속에서 맥스는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신은 매순간 셀 수 없는 새로운 천사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무(無)로 돌아가기 전에 신의 옥좌 앞에서 한 순간 신을 찬송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
 - 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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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 2010-07-06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간은 순간순간 나를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