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발터 벤야민 ⑧ 

 

  8. 멜랑콜리의 도시 (1)

   
 

 바로 지금 삶을 구성하는 힘은 신념이 아니라 사실이다.
 -발터 벤야민

 
   

 



   아마도 누들스의 삶을 구성하는 ‘사실’만을 모아, 아무런 은유도 해석도 없이 건조한 다큐멘터리로 만든다면, 그의 삶은 ‘실패한 갱스터의 나쁜 예’에 불과할 것이다. 그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관객의 동경과 누들스 그 자신의 덧없는 기억에 대한 짙은 멜랑콜리다. 동경이 자  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려운 머나먼 존재에 대한 물증 없는 판타지라면, 멜랑콜리는 자신의 것일    수밖에 없는 슬픔에 대한 뼛속 깊은 자기연민이 아닐까.  

 



   누들스가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향한 깊은 멜랑콜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사회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기억에 포박된 인간’이기 때문이다. 기억의 만유인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오직 기억의 힘으로 살아가고 기억의 공격으로 상처받고 기억의 동력으로 삶을 해석하는 인간. 그의 멜랑콜리는 화려했던 한 시대의 몰락, 자기가 창조한 한 세계의 붕괴, 자신이 속한 세계의 궁극적 몰락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자의 뼈아픈 비애다.  




   누들스는 어린 시절 패거리의 막내를 죽인 자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갱단의 일원을 살해하고 감옥에 들 어가 어른이 되어서야 출소한다. 사춘기 소년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의 기억을 오랜 감옥생활 동안 그 대로 간직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누들스. 그에게 시간은 멈춰 있었고, 어린 시절을 향한 그리움은 머나먼 과거를 향한 덧없는 열정이 아니라 바로 어제처럼 생생한 실체였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맥스와 데보라와 친구들이 겪었던 생의 결정적인 사건들, 그 사건의 의미들을 누들스는 알 수 없다. 누들스는 ‘아가서’를 패러디한 데보라의 사랑 고백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암흑가에서 잔뼈가 굵어가던 맥스와의 기 억 또한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는 기억의 힘으로 고된 감옥생활을 간신히 버텼겠지만, 기억으로 꽉 찬 그의 영혼의 창고에는 다른 무엇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는 기억에 사로잡힌 인간, 기억의 블랙홀 속으로 현재와 미래 또한  모조리 흡입해버린 인간이 되어간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데보라만을 생각했고, 데보라를 잃고 멀리 떠나 있을 동안에도 데보라만을 생각했다. 그가 실제로 경험한 사건들은 고향 밖에서 더 많이 일어나지만, 그의 삶을 지배하는 결정적인 기억들은 모두 고향에 있다. 그리하여 그의 일상과 그의 진심은 유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소중한 모든 것은 고향에 있는데, 그를 움직이는 실제 동력은 모두 고향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향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꽃’이라 불렀을 때 우리에게 오는 꽃은 블랑쇼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실제의 꽃⦆이 아니며, 꽃의 이미지도 아니며, 꽃에 대한 기억도 아니고 사실은 꽃의 부재 그 자체’이다. 실제의 꽃이 ‘물질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만 꽃이라는 상징은 사용가능한 무엇이 된다. 말과 사물, 상징과 실체 그리고 문화와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간극이 발생시키는 정조가 바로 멜랑콜리이다. 인간은 사투르누스로부터 경작 배움으로써 자연으로부터 벗어나고 글자를 배움으로써(토성은 글쓰기를 관장한다) 기호를 통해 사물들을 배제시키는 문화인으로 탄생하는 것은 멜랑콜리라는 트라우마를 낳는다.
 - 김홍중, <모더니티와 멜랑콜리> , 《한국사회학》, 200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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