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vs 발터 벤야민 ⑥
 

  6. 기억의 별자리, 그릴수록 희미해지는…… (3)

   
 

한때 파스칼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는 사람만큼 불쌍하게 죽는 사람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억의 경우에도 이 말은 그대로 해당될 것임에 틀림없다. 단지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기억은 상속자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 발터 벤야민, 반성완 편역,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1, 183쪽.

 
   



   누들스의 기억을 촉발하는 세번째 매개체는 ‘돈가방’이다. 도망 중이던 그가 기차역에서 찾아가기로 했던 돈가방. 그 안에는 그의 인생을 걸고 벌였던 커다란 도박판의 승리를 증명하는 돈다발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으로 믿었던 그 돈가방에는 마치 그의 꿈을 조롱하듯 철 지난 신문뭉치 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 돈다발을 가져가버린 것은 둘도 없는 친구 맥스였고, 그 돈가방을 통해 누들 스가 쟁취하고 싶었던 것은 데보라였다.

  누들스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누들스의 초라한 신세를 혐오했던 데보라에게, 누들스는 보여주고 싶었다. 멋지게 성공해서 너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된 바로 그 모습을. 텅 빈 돈가방을 발견하는 순간, 모든 비전 은 산산이 박살난다. 도둑맞은 돈가방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처절했던 실패와 상실의 기억이다. 이제 누들스는 기억의 창고에 꼭꼭 숨겨놓았던 어린 시절의 비밀을 도저히 품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저 생생한 기억의 매개체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기억의 사슬을 끼워 맞추기 시작한다. 

 



   벤야민은 어수선하고 무질서하고 북적이는 거리 위에서, 버려지고 숨겨지고 지워져가는 모든 흔적들 속에서, 문명을 탄생시킨 생성의 힘을 보았다. 무엇이 쓸모 있고 무엇이 쓸모없는가를 구분하는 분별지 가 없는 아이들처럼, 벤야민은 ‘쓸모’의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물을 바라보고자 했다. 그는 ‘길을 찾는 기술’이 아니라 ‘길을 잃는 기술’을 연구했다. 목적지를 향해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친숙했던 모든 것조차 낯설게 만들 수 있는 ‘방황의 기술’을 연구했다.  

 



   진정 길을 잃어버린 산책자는 어린 아이의 눈으로, 마주치는 모든 사물을 향해 새롭게 말을 걸 수 있는 눈빛으로 거리를 바라본다. 사물의 쓸모를 ‘읽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사물에게서도 이 도시를 탄생시킨 욕망의 비밀을 해독해낸다. 이렇듯 ‘창조적으로’ 방황하는 산책자에게 길 잃기는 패배가 아닌 또 하나의 성취가 된다. 아마 벤야민이 길을 걷다가 자신의 고향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누들스를 만났다면, 그는 누들스의 눈동자에서 스며 나오는 방황하는 산책자 특유의 눈빛을 읽어내지 않았을까. 누들스는 이  도시가 제공하는 모든 ‘먹이들’에서 자유로워지자, 즉 이 도시에서 얻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 되자, 비로소 이 도시를 이끌어 온 생성의 에너지를, 나아가 이 도시의 부랑아들(누들스와 그의 친구들)을 관통해온 욕망의 비밀을 알 것만 같다.    

 

 

   
 

 벤야민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현대적 질서 형식이 조용히 보이지 않게 만들려는 이들의 경험들, 즉 ‘주변현상’들이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조롱의 대상들은 구출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배회하는 산책자, 자의식에 넘치는 댄디(멋쟁이), 소리치는 거지, 고통받는 매춘부, 비참한 넝마주이 같은 주변적이고 천대받는 군상들이 벤야민의 도시 기록에 담겨 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은 보이게 되며, 벙어리는 말을 하게 된다. 벤야민의 도시 현상학은 가장 기괴하고 멸시 받은 사례들의 연구를 통해 현대성의 경험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 그램 질로크 지음, 노명우 옮김,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 폴리스>, 효형출판, 2005,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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