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발터 벤야민 ③

 3. 부랑자들, 혹은 비정한 도시의 산책자들 (3)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이미 사냥꾼이 되어 있다. 아이는 사물 속에서 영혼들의 흔적을 냄새 맡고 그것들을 추적한다. (……) 숲으로부터 아이는 전리품을 집으로 끌고 와 그것을 깨끗이 하고 딱딱하게 만들고, 그것들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버린다.
 - 벤야민, 조형준 옮김, <일방통행로>, 새물결, 2007, 90쪽.
 
   

 



   어린 시절 누들스, 짝눈, 팻시, 뚱보는 함께 뒷골목을 어울려 다니며 좀도둑질을 일삼는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인사불성이 된 주정뱅이의 시계를 훔치려던 누들스는 프랑스에서 이제 막 이민 온 낯선 소년 맥스에게 선수를 빼앗긴다. 이 인연으로 친구가 된 누들스와 맥스는 이후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절친’이 된다. 누들스 일당은 맥스와 함께 갱단의 밀수품을 운반하며 그렇게 번 돈을 모아 인근 기차역의 물품보관함에 차곡차곡 모아둔다. 아이들의 좀도둑질과 갱단 도우미(?) 작업은 때로는 악행처럼 보이고 때로는 그저 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누들스가 성장하여 직업적인 갱스터가 되지 않았다면, 놀이와 악행의 구분이 모호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저 ‘아련한 추억’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의 모든 건물과 소품들을 언제 어디서든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전쟁터로도 놀이터로도 이용할 수 있는 아이들의 상상력. ‘그건 좀 도둑질일 뿐이야!’라고 단죄할 수만은 없는, 그 어처구니없이 순수한 놀이의 상상력, 그리고 그 시절을 결코 되찾을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누들스의 회한이야말로 이 영화의 OST <Childhood Memories>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느끼는 감동의 원천일 것이다. 빈곤과 폭력에 상습적으로 노출되어 있던 누들스에게도 그 모든 아픔을 깡그리 잊을 수 있는 행복의 출구가 있었다. 바로 뚱보의 여동생 데보라가 발레 연습을 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는 일.    

 



   각종 잡동사니와 식료품이 가득한 창고에서 혼자 발레 연습을 하는 데보라의 모습을 바라보는 누들스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빛난다. 그저 평범한 창고에 불과한 이 장소는 데보라의 아름다운 춤사위로 인해 이 세상 하나뿐인 멋진 무대가 된다. 단 한 사람의 관객 누들스를 위한, 어린 소녀 데보라가 각본과 연출과 연기 모두를 거뜬히 혼자 해낸 멋진 공연 무대. 누들스가 자신을 엿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새치름한 표정으로 사뿐사뿐 춤을 추는 데보라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춤곡은 <Amapola(양귀비꽃)>다. 이 음악이 나올 때마다 누들스는 연어가 필사적으로 거대한 물살을 거슬러 고향으로 돌아올 때나 지을 법한, 절박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데보라의 비밀 공연을 훔쳐보기 위해 뚱보네 집 화장실 뒤편으로 달려간다.        

 



   아마 어린 시절은 누들스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토록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누들스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폭력, 굶주림과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던 전형적인 빈민가의 아이였다. 그러나 기억은 누들스의 머릿속에서 철저히 재구성된다. 어린 누들스가 미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아직 해석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저장되어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어린 시절 그가 상상했던 미래보다 훨씬 남루하고 비참한 어른이 되어서야, 오랜 시간 억압된 기억의 창고 속에 보관된 그 사건들은 아름답고 애잔한 추억의 성좌를 그린다. 어른이 된 누들스가 아이였던 누들스의 눈으로 뉴욕의 밤거리를 다시 배회하자, 비로소 뉴욕의 뒷골목이 지닌 진정한 매혹이 완성된다. 지금은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이곳은 분명 그의 고향이지만, 누들스는 새삼 ‘어린이’의 눈과 ‘이방인’의 눈이 되어 이 거리를 다시 바라본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스산하면서도 애잔한 거리 풍경이야말로, 그가 잃어버린 시간의 총체였다.  

 

 

   
 

  벤야민은 낯선 도시인 모스크바에서 ‘어린아이’가 된다. 그는 유년시절의 도시인 베를린에서 ‘외국인’이 된다. 그는 독자들이 도시 환경을 친숙함과 습관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첫인상’으로 지각하도록 변화시켜 표현한다. 어린 아이는 보는 사람과 본 것, 주체와 대상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렌즈가 된다.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도시를 관찰하는 것은 망원경을 거꾸로 하여 도시를 보는 것과 같다.
 - 그램 질로크, 노명우 옮김,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효형출판, 2005, 124~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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