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인의 삶>과 한나 아렌트 ⑫

 13. ‘사이’에 존재하는 법 (3)
 

   
   완전한 이해를 포기하는 것, 타자가 타자로서 존재하고 타자로 존재하려고 하는 것을 긍정하는 것,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거리를 줄이지 않는 것, 친밀권은 그러한 타자와의 느슨한 관계의 지속도 가능하게 한다.
 - 사이토 준이치 지음, 윤대석‧루수연‧윤미란 옮김, <민주적 공공성>, 이음, 2009, 110쪽.
 
   





   국가안보부는 끝내 크리스타를 체포하여 그녀가 남편을 밀고하도록 종용한다. 그들은 시작부터 치명적인 발언으로 심약한 크리스타의 감정을 자극한다. “당신은 멍청한 남자와 결혼했어요. 그래서 당신이 누려야 할 자유를 많이 빼앗겼죠.” 크리스타가 불안한 눈망울을 굴리며 신문을 받는 동안, 드라이만은 집안을 수색당하고 있다. 목표물은 바로 드라이만이 <미러>지에 발표한 글을 쓰기 위해 사용했던,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작은 타자기.

   안보부 직원들은 마룻바닥을 뜯을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 채 집안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나서야 드라이만의 집을 떠난다. 크리스타는 그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안보부에 감금된 것이다. 집안을 수색당했다는 드라이만의 말을 듣자 친구들은 단번에 ‘범인’으로 크리스타를 지목한다. “크리스타가 자넬 팔아먹은 거야. 자넬 팔고 어디로 숨어버린 거라고.” 드라이만은 진심으로 크리스타를 변호한다. “크리스타는 아무것도 몰라. 알더라도 말하지 않을 거야.” 그는 아내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만 친구들은 모두 크리스타를 의심한다.    

 



   한편,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24시간 감시했으면서도 ‘동독의 치명적인 비밀’을 서방세계에 유포한 드라이만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죄로 문책을 당한다. 비즐러의 직속 상사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바로 크리스타를 직접 신문하도록 하는 것이다. 취조의 달인, 협박의 달인으로 명성이 드높은 비즐러에게 크리스타를 직접 맡긴 것이다. 상사는 비즐러에게 ‘정체성의 확인절차’를 잊지 않는다. “자네가 어느 편인지는 알겠지? 그럼 마지막 기회를 주지.”

   비즐러는 장시간 취조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크리스타를 바라보며, 자신이 흠모해마지않았던 아름다운 여배우의 처참한 몰골을 눈앞에서 확인하며, 자신이 이 여성의 인격을 붕괴시켰음을 깨닫는다. 비즐러는 술집에서 마주쳤던 자신을 금세 알아보는 크리스타의 떨리는 눈빛을 바라보며, 자신이 이 더러운 정치적 음모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그러나 밖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상사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취조의 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한다. 그는 드라이만은 어떤 경우에라도 구속될 수밖에 없으며, 크리스타만은 드라이만의 비밀을 누설하면 ‘살아날 수 있다’고 협박한다.

 



비즐러 : 사소한 실수로 주연배우를 바꿨으면 좋겠습니까? 관객은 앞으로 당신 이름을 듣지 못하게 될 겁니다. 당신이 협력만 한다면…….
크리스타 : 기사 같은 건 없어요. 타자기도 없어요, 내가 지어낸 거예요.
비즐러 : 그런 게 아니길 바랍니다. 누군가 그 사실을 조사한다면 당신은 위증죄로 적어도 2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겁니다. 당신의 증언이 없더라도 드라이만은 구속됩니다. 우리에겐 이미 유죄를 받아낼 충분한 증거가 있어요. 당신 자신을 생각해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너졌는지 아마 모를 겁니다. 이 나라가 당신에게 뭘 해줬는지 생각해봐요. 당신의 삶은 국가로부터 양도받은 겁니다. 이제 그 보답을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묻는다는 표정으로) 타자기는 어디 있습니까? (회유하는 표정으로) 이 일로 드라이만이 구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은 즉시 풀려나게 될 거고요. 우리가 당신을 보호하겠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당신은 집에 먼저 들른 후에 예정대로 오늘밤 연극무대에 설 수도 있어요. 무대, 조명, 당신을 사랑하는 관객들……. 자, 드라이만이 타자기를 어디다 숨겼습니까? 어서 말해요.
크리스타 :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비즐러의 회유 작전에 완전히 넘어가버린 채) 우리 아파트에 있어요. 침실과 복도 사이의 문턱이요. 문턱에 판자가 있는데 바닥에서 떨어져요.  

 



   비즐러는 이 순간 크리스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빼앗는다. 사랑과 예술. 그녀의 목숨 같은 예술을 볼모로 하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비밀을 밀고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국가는 ‘안보’를 빌미로 하여 한 개인의 인생 전체를 붕괴시키는 데 성공한다. 크리스타는 오늘밤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무대에 설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사랑과 자존과 존엄을 잃은 그녀에게서 훌륭한 예술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마침내 비즐러는 존재의 결단을 내린 것인가. ‘안보부의 하수인’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 사람의 관객’이 될 수도 있었던, 새로운 변신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인가.  

 

 

   
 

   친밀권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으로서, 특히 그 외부에서 부인 혹은 멸시의 시선에 노출되기 쉬운 사람들에게는 자존 혹은 명예의 감정을 회복하고, 저항의 힘을 획득‧재획득하기 위한 의지처일 수도 있다. 친밀권이 공공적 공간을 향한 커밍아웃을 지지하고, 발화하는 사람을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함을, 우리는 예를 들면 ‘종군위안부’ 여성들의 행위 등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친밀권은 담론의 공간임과 동시에 감정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 그것은 공포를 느끼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감정, 거기서 물러날 수 있다는 감정, 거기에서는 자신이 여러 번 느낀 감각이 이해받을 수 있다(받을지도 모른다)는 감정, 즉 배척되지는 않는다는 감정이다.
 - 사이토 준이치 지음, 윤대석‧루수연‧윤미란 옮김, <민주적 공공성>, 이음, 2009, 11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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