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⑥

   6.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가 (2)

   
 

 검은 신이여 저 묘지에서 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 파괴된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검은 바다에서 연기처럼 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내부에서 사멸된 것은 무엇입니까
 1년이 끝나고 그 다음에 시작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쟁이 뺏어간 나의 친우는 어디서 만날 수 있습니까
 슬픔 대신 나에게 죽음을 주시오
 - 박인환, <검은 신이여> 중에서

 
   





   어김없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잠 못 이루는 밤, 트루디는 뜬금없이 남편에게 춤을 춰보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녀가 늘 입는 오렌지 빛 기모노 잠옷을 입은 채로, 그녀는 마뜩찮아 하는 남편의 손을 잡아 부토를 춘다. 마치 그들의 저물어가는 사랑을 향한 진혼곡처럼, 발틱 해변으로 몰아치는 사나운 파도소리를 반주 삼아.“한밤중에 춤을? 딴 사람들 다 자는데.”영문을 모르는 남편 루디는 아내의 때 아닌 진지함에 놀라지만 아내의 몸짓이 자못 단호하여 할 수 없이 그녀가 이끄는 대로 부토의 춤사위에 서툴게 몸을 맡긴다. 이상하리만치 길었던 밤이 지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죽음을 앞둔 남편 루디가 아니라, 남편의 예정된 죽음을 아파하던 아내 트루디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무런 질병의 징후도 없었던 트루디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그제야 온 가족이 한꺼번에 모인다. 일본에서 일하느라 몇 년 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막내아들 칼까지, 실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트루디가 누워 있는 관 앞에 모였다. 모두들 믿을 수 없는 표정들이다. “저렇게 관 속에 누워계시다니.” “난 한동안 엄마를 보지도 못했는데, 이젠 다시 볼 수도 없다니. 찾아뵙지 못하면, 도쿄에 모시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잠시 동안 어머니의 죽음을 추모하지만, 곧바로 아버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고심한다. “이제 아빠는 어쩌지? 우리가 뭘 어떻게?” 자식들은 아버지가 무슨 귀찮은 짐짝이나 되듯이, 혹시나 아버지를 모실 책임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전가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자식들은 모두 저마다 바쁘다며 발인에도 참석하지 않고 각자의 갈 길로 흩어져버린다. 엉뚱하게도 딸의 여자친구 프란치가 홀로 아내를 땅속에 묻어야 하는 루디 곁을 지켜준다. 하관 기도를 해주실 신부님은 이 아가씨가 둘째딸 카롤린이냐고 물어보지만, 루디는 쓸쓸히 대답한다. “카롤린은 베를린에, 막내는 일본에 있습니다.” 평생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했던 트루디였지만, 그녀가 땅속에 묻히는 날 정작 트루디가 그렇게도 애틋하게 챙겼던 자식들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당황한 신부님이 장남 크라우스는 어디 있느냐고 묻자, 루디는 대답한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결국 딸의 여자친구가 없었으면 홀로 아내를 땅 속에 묻을 뻔했던 루디. 루디는 프란치를 집으로 데려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내의 죽음조차 믿을 수 없는데, 그의 곁을 지켜주는 자식조차 한 명도 없다.




 루디 : 그 사람 베를린에서는 너랑 같이 본 그 부토 공연이 제일 좋았다고 하더구나. 너처럼 좋은 아인 처음 봤대.
 프란치 : 그렇지도 않아요……. 트루디 아주머니가 저한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얼마나 춤이 추고 싶었는지. 당신이 다른 무엇보다 얼마나 부토 무용수가 되고 싶어 했었는지. 그걸 배우러 얼마나 일본에 가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모든 것이 어떻게 틀어져버렸는지요. 잘 살아왔지만……. 어머님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어머님 안에 아무도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어머님이랄까. 그걸 제가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루디 : (강렬한 메이크업과 심플한 의상을 입은 채 부토 공연을 하고 있는 아내의 옛날 사진을 보여준다.)
 프란치 : (트루디의 춤사위가 그려내는 멋진 실루엣에 감탄하며) 이 모습이 정말 어머님이세요?
 루디 : 난 싫어했어. 너무 과격해서. 당황스러워서. 난 아내가 춤을 그만뒀으면 했지. (죄책감이 밀려드는 표정으로) 우린 그 사람을 여기 가뒀던 거야.
 프란치 : 그래도 어머님은 여기서 행복하셨어요, 분명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자리는 우리가 항구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고통과 상처에 개방적일 수 있을 정도만큼만 그 자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자기나 타자의 파괴로 인한 사랑의 상실은 대상 상실의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것은 통렬하고 분화된 후회의 아픔으로 느껴질 수 있다. 후회를 고통스러워할 수 있는 능력은 고통을 자학적으로 즐기는 상태가 아니며(……) 슬픔을 씻어내고 떠나보낼 수 있는 능력을 발생시키는 요소이다. 그것은 애도하는 고통이요, 고통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견디는 것이다. (……) 자기가 분열에 의해 봉인되거나 억압에 의해서 닫혀버린다면, 진정한 비탄은 발생할 수 없다.
- 수잔 캐버러-애들러, 이재훈 옮김, <애도>,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9, 2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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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mi 2010-03-30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누군가 떠나간 후에야 깨닫게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