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람직한’ 이별은 가능할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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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보통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 즉 조국, 자유, 어떤 이상 등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똑같은 종류의 상실감이 애도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 프로이트, 윤희기 · 박찬부 옮김,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열린책들, 2004,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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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후지산과 벚꽃을 그와 함께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남편 없이 구경하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그건 구경도 아닐 테니까. 그이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남편 루디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선고를 들은 날, 아내 트루디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의사는 이미 치료시기를 놓쳤음을 알리고, 남편과 함께 여행이나 작은 모험을 시도해보라고 충고한다. “남편은 모험을 싫어해요.”
트루디는 남편의 취향과 습관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모험은커녕 아주 작은 변화도 싫어하는 남편은 20년 동안 딱 한 번 독감을 앓은 것 빼고는 아픈 적조차 없었다. 남편 루디는 우체국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폐기물 관리국장으로 장기근속 중이다. 남편의 회사에는 폐기물 관리국에 딱 어울리는 캐치프레이즈가 붙어 있다. “재활용은 좋은 것이고 재사용은 더욱 좋다.” 루디의 성격은 바로 이 문장에 딱 들어맞는다. 그는 아무것도 버릴 수 없고,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만 같은, 지나치게 빈틈없는 사람이다. 그는 뼈아픈 상실과는 거리가 먼,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아내 트루디가 평생 가고 싶어 했던 일본은 막내아들 칼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그녀의 잃어버린 꿈 ‘부토(舞踏 Butoh)’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죽음의 춤, 폐허의 춤, 그림자의 춤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의 현대 무용 부토는 아내 트루디가 평생 꿈꾸던 이상이었다. 트루디는 남편에게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후지산을 보고 싶지 않느냐고 간절한 표정으로 묻는 아내 앞에서 남편은 지나치게 심드렁하다. “후지산은 그냥 산일 뿐이야.” 그래도 막내아들을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더욱 무뚝뚝하게 대꾸한다. “녀석이 이쪽으로 오는 게 돈이 덜 들걸.” 남편은 모든 것을 ‘퇴임 후’로 미룬다. 아직 자신의 몸 상태를 모르는 남편은 언제나처럼 모든 일을 ‘다음’으로 미룬다. ‘다음’이 없음을 아는 트루디의 마음은 무너진다.
차마 남편에게 ‘당신에게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대요’라고 말할 수 없는 아내의 눈에서는 남모르는 눈물이 그렁하다. 그녀는 무사태평인 남편의 등 뒤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남편의 옷을 다리다가, 아들에게 전화해 심상하게 안부를 묻다가, 자신도 모르게 툭툭 눈물을 흘린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힘겹게 포기했던 자신의 오랜 꿈, 그 꿈보다 사랑했던 남편을 잃는다는 생각에 그녀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가 없는 삶을 결코 상상할 수 없는 트루디. 그녀는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듯, 감각의 마비 상태에 빠진다. 그를 잃는 것은 곧 나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애도’ 자체는 병리적이지 않으며 지극히 ‘정상적’인 슬픔의 극복 과정일 뿐 아니라 상실을 극복하는 발전적 행위이기도 하다. 반면 우울증은 자기를 파괴하는 부정적 에너지로 작용한다. 애도와 우울증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자기애의 소멸’이다. 우울증자는 사랑하는 대상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상에게 집중되던 리비도를 철회하지 못하고 차라리 현실에 등을 돌리며 사라진 대상에 집착한다. 프로이트는 ‘고통의 경제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울증은 물론 애도 또한 ‘효율적’이지는 않다고 진단한다.
프로이트는 현실의 명령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타협이 왜 그토록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고통을 우리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엄청난 감정의 ‘낭비’를 겪는다 해도, 일단 ‘애도’의 과정을 극복한 자아는 언젠가는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다시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고, 불면증에서 놓여나며, 웃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울증은 ‘대상의 상실=자기의 상실’이 되어버릴 뿐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까지 치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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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의 특징은 심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낙심,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의 중단,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 모든 행동의 억제,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자기 비하감을 느끼면서 급기야는 자신을 누가 처벌해주었으면 하는 징벌에 대한 망상적 기대를 갖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 프로이트, 윤희기 · 박찬부 옮김,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열린책들, 2004,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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